[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전 세계가 지진, 한파, 가뭄 등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반도체 업계가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울상을 짓고 있다. 24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반도체 공장의 특성상 단기간의 가동 중단에 손실액도 수백억~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돼 실적에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면서 반도체 품귀난과 이에 따른 가격 인상도 더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1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오스틴에너지는 지난달 16일(현지시간) 삼성전자를 비롯해 NXP, 인피니언 등 다수의 반도체 제조업체들에게 전력 공급의 어려움을 전하면서 전력 사용을 줄이거나 이를 멈춰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은 같은 날 오후 4시부터 생산을 멈췄다. 전력 부족으로 오스틴 공장 가동이 중단된 것은 1998년 설립 후 처음이다.
이곳에선 14나노미터(㎚, 1㎚=10억분의 1m)급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라인을 운영 중으로, 지난해 3조9천131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를 감안하면 가동 중단에 따른 삼성전자의 일평균 매출 손실은 107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지난달에만 1천억원이 넘는 피해를 입었다. 삼성전자 내부에선 이달 24일까지 가동하지 못할 것이란 가정 아래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번 일 때문에 검토하고 있던 오스틴 반도체 공장 증설 논의도 보류했다.
삼성전자 외에 NXP, 인피니언 등 인근 반도체 제조업체들도 미국 한파 영향으로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이에 업계에선 반도체 공급난이 더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생산라인은 수백 단계를 거치는 미세 공정 특성상 잠시라도 가동을 멈추면 생산 과정에 있던 제품들은 대부분 폐기하고 다시 생산해야 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며 "반도체 초호황기와 맞물려 반도체 품귀난이 벌어진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 다른 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업계 전반에 심각한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같은 정전 사태는 수급을 악화시키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에선 지진으로 반도체 업체들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지난달 13일 일본 동북부에 규모 7.3 지진이 발생하면서 차량용 반도체 생산 3위 업체인 '르네사스'와 반도체 필수 소재인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하는 '신에츠' 등 일부 공장이 멈춘 것이다. 이들은 같은 달 16일에 생산을 재개했지만 지진 발생 이전의 생산능력을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대만은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물 부족 사태로 반도체 생산이 압박을 받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대만 정부는 가뭄이 심각해지자 지난달 25일부터 신주시 등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공업용수 절수 비율을 7%에서 11%로 높였다. 신주시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TSMC를 비롯한 IT 관련 공장 및 기업이 몰려 있는 곳으로, 이 지역 인근 댐의 저수량은 10% 수준으로 낮아진 상황이다.
이에 TSMC는 지난달 23일부터 대만 북부, 중부, 남부에 있는 공장에 급수차를 보내 급한 불 끄기에 나섰다. TSMC가 급수차 물을 이용해 반도체 생산에 나선 것은 2015년 이후 처음이다. 다만 TSMC 대만 공장은 하루에 20만t가량의 물을 사용하지만, 급수차 1대로 운반할 수 있는 물은 20t에 불과해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태다.
TSMC는 지난해 12월 지진 피해도 입었다. 대만 북동부 해역에서 발생한 진도 6.7의 강진 여파로 반도체 제조라인이 일시적으로 가동을 멈춘 것이다. 이 때 D램 생산업체인 난야 등도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미국 마이크론 대만 D램 생산시설은 정전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12월 3일 1시간 동안 전기공급이 끊겼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전체 마이크론 D램 생산량의 약 30%, 글로벌 D램 생산의 8.8%가량의 D램이 생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웨이퍼 투입량 기준 월 12만5천 장 규모다.
이처럼 반도체 업체들의 물량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자동차, 가전 등 다른 산업군에 속한 업체들도 발을 동동 굴리고 있다. 현재 포드와 폭스바겐, 도요타, GM 등은 차량용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 감산 결정을 내린 상태다. 테슬라 역시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 가동 중단 여파로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프리몬트 공장의 가동을 약 2주간 중단시켰다. 삼성전자는 테슬라에 자율주행 칩을 공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 삼성전자 등 주요 스마트폰 제조업체와 소니 등 게임업체도 반도체 공급 문제로 제품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디스플레이 드라이버 집적회로(DDI·Display Driver IC)를 비롯해 모니터와 TV에 사용되는 반도체들이 품귀현상 조짐을 보이면서 TV·디스플레이 업체들도 불안감에 떨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컴퓨터부터 스마트폰, 전자시계까지 모든 전자기기에 필요한 핵심 부품"이라며 "다만 지역적으로 기후 위험이 높아지는 지역에 집중돼 있어 공급망에 많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어 "기후변화로 인한 공급 중단으로 오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중으로 아웃소싱하거나 공급 업체의 탄력성을 확대하는 등 대비가 필요하다"며 "각 업체들이 공급망과 재고 관리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분위기 탓에 올해 반도체 가격 상승 속도는 더 가파를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주요 파운드리 업체는 공급 부족 현상이 당분간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최근 생산단가 인상 추진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글로벌 파운드리, UMC, 뱅가드 등은 지난해 말 10~15% 수준의 단가를 올렸고, TSMC는 올해부터 할인 정책을 폐지한 상태다.
삼성전자도 최근 8인치(200mm) 웨이퍼 반도체 원가 인상을 암시했다. 또 업계에선 UMC 등이 올해 생산단가를 30~40% 이상 올릴 것으로 관측했다.
D램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이미 현물시장에서 D램 거래 가격은 단기간에 4달러 선을 넘어서며 확연한 '공급자 우위'로 돌아섰다. 지난달 D램 고정거래가격은 전달보다 5.26% 올랐고, 이달에도 전달 수준을 유지했다. 또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2분기 서버 D램 고정거래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8~13%에서 10~15%로 상향 조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D램 제조사들이 올해 대부분 증설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도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며 "코로나 언택트(비대면)에 따른 PC 등의 수요가 견조하고 여기에 모바일과 서버 시장까지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가격 상승 분위기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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