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일부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 대만 TSMC 등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들이 향후 전략에 어떤 변화를 줄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각 업체들은 지난해 코로나19 이후 자동차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스마트폰, PC 등 IT 제품용 반도체 비중을 늘려나간 반면, 차량용 반도체는 낮은 마진 탓에 생산 비중을 점차 줄였던 상태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자동차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돼 차량용 반도체가 수급 불일치로 품귀 현상을 빚자 최근 자동차 업체뿐 아니라 주요국 정부까지 합세해 증산 요청에 나서고 있어 난감해 하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국 정부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TSMC가 있는 대만 정부에 이례적으로 반도체 증산을 요청했다. 각 국가별 주요 자동차 생산기지에서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 붕괴로 자동차 생산량을 잇따라 감축하고 나서고 있어서다.
실제로 미국 자동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다음주부터 한국 부평2공장을 비롯해 미국 캔자스주 페어팩스, 캐나다 온타리오주 잉거솔, 멕시코 산 루이스 포토시 등 전 세계 4개 공장에서 생산량을 줄인다. 부평2공장은 오는 8일부터 50%만 가동키로 했다.
한국지엠은 "현재 부품업체들과 긴밀히 협력하며 부품업체들의 반도체 수급에 대한 방안을 찾고 GM과 한국지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부품 수급에 대한 유동성으로 인해 해당 공장에 대한 운영은 매주마다 상황을 살펴 생산계획을 확정해 운영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GM 외에도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잇따라 감산 결정 소식을 알렸다. 지금까지 알려진 곳은 포드, 스바루, 도요타, 닛산, 폭스바겐, 마즈다, 스텔란티스 등으로, 각 사마다 차량용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 답답해하고 있다. 다만 현대·기아 등 국내 업체들은 지난해부터 물량을 미리 확보해 둔 덕분에 큰 영향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올해 1분기 전 세계 자동차 생산량도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IHS마켓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자동차 생산은 예상보다 67만2천 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오토포캐스트 솔루션스는 지금까지 자동차업계가 실제 감축한 규모는 56만4천 대로, 올해 총 96만4천 대 물량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관측했다. 업계에선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올해 3분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가 주력 산업인 일부 국가들의 경우 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 확보는 자국 경제의 생사가 달려있는 중요한 문제"라며 "한 대에 수백 개의 반도체가 필요한 자동차 산업에서 반도체 확보에 실패하면 산업 생태계 붕괴까지 초래할 수 있는 만큼 각 완성차 업체들이 물량 확보전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차량용 반도체는 다른 산업용 반도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마진이어서 파운드리 업체들이 그동안 생산 비중을 낮게 유지해왔다"며 "업계 1위인 TSMC 마저 전체 매출 중 차량용 반도체 비중은 3%에 불과한 데다 당장 업체들이 관련 생산라인을 증설해 생산량을 늘리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MCU), 전력관리용 칩, 마이크로 전자 기계 시스템(MEMS) 등 차량용 반도체는 8인치 웨이퍼 공정에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삼성전자 등 주요 업체들의 생산 라인은 수익성이 높은 12인치 공정에서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에 파운드리 업체들이 당장 8인치 생산라인을 증설하거나, 12인치 공정에서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기엔 수익성이 맞지 않아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이 해결되기 위해선 8인치 웨이퍼 공정용 생산라인이 늘어나는 것이 급선무"라며 "하지만 반도체 업체들 입장에선 부가가치가 12인치 웨이퍼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8인치 및 차량용 반도체에 대한 생산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일단 주요 국가 정부의 요청을 받은 대만 측은 조만간 미국 측과 화상회의를 열고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독일 정부에는 최근 반도체 증산의 대가로 코로나19 백신 구매를 도와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 TSMC는 최대 15%가량 차량용 반도체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 물량 확보전이 치열해지면서 반도체 파워를 앞세운 대만의 외교적 위상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은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선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이같은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해결책 마련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그동안 차량용 반도체에 대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파운드리 업계 2위인 삼성전자도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선 매출 점유율 기준으로 24위에 머물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완성차 업계의 차량용 반도체에 대한 해외 의존도도 상당히 높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NXP과 독일 인피니온이 각각 21%, 19%로 업계 1, 2위를 다투고 있으며 르네사스(15%), TI(14%), ST마이크로(13%)가 5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다만 전기·전자·IT 기업들이 차량용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면서 주요 5개사 차량용 반도체 시장점유율은 2017년 73%에서 2019년 49%로 줄었다. 전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2019년 418억 달러에서 2022년 553억 달러, 2024년 655억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 품귀 대란이 지속돼 그동안 낮게 책정됐던 마진이 크게 높아진다면 업체들의 공급 계획도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며 "올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할 것이란 전망도 업체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삼성전자를 필두로 국내 반도체 업계는 중앙처리장치인 AP와 TCU(차량용 통신 장비) 등 일부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 새롭게 진출하며 시장 확대 기회를 노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8년 차량용 반도체 브랜드를 출시했으며 차량용 AP인 엑시노스 오토를 아우디에 공급한 바 있다. 반도체 설계 전문회사 텔레칩스는 2011년부터 제네시스 등 현대·기아 차량에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AP를 공급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는 조만간 116조 원의 실탄을 무기로 NXP와 ST마이크로, TI, 르네사스 중 한 곳을 인수합병(M&A) 할 것이란 업계의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율주행·파워트레인 전동화·전장부품 확대 등으로 자동차는 움직이는 종합 IT 기기로 진화했다"며 "차량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수와 종류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인 만큼 관련 업체들이 이를 노리고 기존 라인의 공정 변경보다 M&A를 통해 수급 해결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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