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현재도 우리 기업과 기업인들은 수천 가지의 죄목 앞에 살얼음 판을 걷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무섭고 강력한 중대재해법이 정치적 고려만으로 단기간에 입법화된다면 그 부담을 고스란히 안게되는 우리 기업과 기업인들은 어떡하란 말입니까."
거대 여당이 최근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 '기업규제 3법'을 독단적으로 처리한 데 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까지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경제계가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중대재해법이 인과관계 증명도 없이 사업주와 기업인의 책임·처벌에만 집중돼 있는 등 과잉 규제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보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견기업연합회, 대한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등 7개 경제단체들은 22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중단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영윤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반원익 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정병윤 대한건설협회 상근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손경식 회장은 "우리보다 산업안전정책 수준이 높은 선진국은 정부와 민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예방활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예방활동은 소홀히 한 채 CEO 처벌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며 "현행 사후처벌 중심의 정책으로는 사망사고를 효과적으로 감소시키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도 산업안전정책의 기조를 사전예방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 단체들은 '기업규제 3법'과 관련해 그 동안 각각의 목소리를 내왔으나, 국회에서 거대 여당이 경제계 의견을 거의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국회 본회의 통과를 강행하자 큰 실망감을 느꼈다. 여기에 여당이 과반 의석 확보를 무기 삼아 기업 활동에 치명적인 '중대재해법' 처리마저 내년 1월 10일 임시국회 회기 종료 전까지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 법안은 이르면 오는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 상정될 예정으로, 여당의 강행 의지가 커 적용범위나 유예기간 등을 조율하는 선에서 연내 법안이 통과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날 참석자들은 "기업이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일자리 창출에 매진할 수 있도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중단해줄 것을 호소한다"며 "중대재해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는 데는 우리 경영계도 깊이 공감하고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안은 경영계가 생각하기에 매우 감당하기 힘든 과잉 입법"이라고 밝혔다.
앞서 강은미 정의당 의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보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인 중대재해법을 발의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14일 기존에 발의됐던 4개 법과 기본 골격은 비슷하나 위헌 지적이 있었던 부분을 보완한 중대재해법을 발의했다.
기존 산안법은 사업장 안전·보건 책임을 책임자나 관리자에게 위임하는 경우가 많아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면 과실에 따른 산업재해 사망 사고 발생 때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은 최소 2년에서 5년까지의 징역에 처해진다. 이는 6개월 이하 징역형인 미국, 일본 보다 높고, 특히 중대재해법의 모태인 영국 법인과실치사법에서 사업주 처벌이 아닌 법인 벌금형을 부과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도 과하다는 평가다. 여기에 최대 매출액의 10%도 벌금으로 내야 하고, 영업허가 취소·정지 등의 제재도 받는다.
이에 경제계는 여당의 반기업법 관련 입법이 폭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대재해법마저 제정될까 불안에 떨고 있다. 또 이 법의 처벌 범위가 현행 산안법보다 넓어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하는 과도한 규제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현행 산안법은 사업주의 의무 규정만 1천222개에 달한다.
손 회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사망사고 발생 시 처벌 형량(7년 이하 징역)은 선진국 중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사업주 처벌을 강화한 개정 산안법이 지난 1월 시행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만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필요성 여부는 개정 산안법의 효과를 평가한 후 중장기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참석자들 역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그 발생책임을 모두 경영자에게 돌리고 있다"며 "대표자 형사처벌, 법인 벌금,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 등 4중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대재해법까지 제정되면 기업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된다"며 "특히 법안의 최대 피해자는 대기업도 있지만, 원하청구조 상황에서 결국 중소기업이 안전에 관한 1차적 책임을 지기 때문에 663만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경제단체들은 정부가 중소기업 현실을 반드시 고려해 법안 제정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단체들은 "99%의 중소기업이 오너가 곧 대표"라며 "재해가 발생하면 중소기업 대표가 사고를 수습하고 사후처리를 해야 또 다른 산재를 예방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재해 문제는 처벌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만큼, 기업현장의 특성을 이해하고 원인에 맞는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며 "현재 처벌 위주로 되어 있는 산업안전 정책을 계도와 예방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 급선무로, 우리 경영계도 산업안전에 관심과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안전한 일터 만들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전에 열린 한국산업연합포럼(KIAF)에서도 중대재해법 입법 중단을 요구하는 기업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 포럼에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바이오, 철강 등 15개 업종 단체들이 참여했다.
정만기 KIAF회장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움직임과 관련해) 대부분 업종별 단체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며 "사고 발생과 경영자 책임 간 명확한 인과관계도 없는데 처벌하는 경우 억울한 사람이 나올 수 있고, 이러한 우려로 인해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는 점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유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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