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사고로 직원이 다쳐 대표가 감옥에 가야 한다는 건 기업 운영을 하지 말라는 소리 아닙니까. 산업재해 원인을 차단하는 예방 중심 정책을 마련해야지 기업들만 규제한다고 될 일인지 모르겠네요."
174석을 확보하고 있는 거대 여당이 최근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 '기업규제 3법'을 독단적으로 처리한 데 이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집단소송법·징벌적손해배상법 등 '징벌 3법'까지 밀어붙인 뒤 나온 재계의 울분이다.
이미 반(反) 기업법 쓰나미로 숨 쉴 틈이 없어진 기업들은 내년 1월 10일 임시국회 회기 종료 전까지 이를 저지하고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당이 기업 규제 입법에 혈안돼 있어 쉽지 않을 전망이다.
15일 재계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4일 근로자의 사망⋅상해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와 기업인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1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에 오는 17일에는 정책의원총회를 열어 당내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앞서 강은미 정의당 의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보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인 중대재해처벌법을 발의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14일 기존에 발의됐던 4개 법과 기본 골격은 비슷하나 위헌 지적이 있었던 부분을 보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
기존 산안법은 사업장 안전·보건 책임을 책임자나 관리자에게 위임하는 경우가 많아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과실에 따른 산업재해 사망 사고 발생 때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등은 3년 이상 징역에 처해진다. 최대 매출액의 10%도 벌금으로 내야 한다. 영업허가 취소·정지 등의 제재도 받는다.
이에 경제계는 여당의 반기업법 관련 입법이 폭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마저 제정될까 불안에 떨고 있다. 또 이 법의 처벌 범위가 현행 산안법보다 넓어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하는 과도한 규제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현행 산안법은 사업주의 의무 규정만 1천222개에 달한다.
경제계 관계자는 "산업 재해의 모든 책임을 사업주에게 넘긴다는 것은 과잉 규제일 뿐 아니라 기업에게 큰 불안감을 줄 우려가 있다"며 "처벌규정은 이미 개정 산안법(일명 김용균법)으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만큼, 사고 원인을 차단하는 예방 중심 정책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망 사고를 효과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산업안전 정책을 사전예방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은 개정 산안법 적용 상황을 중장기적으로 평가한 이후에 논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일부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전체적으로 안전원리나 법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또 재해예방 실효성이나 현장 작동성과도 거리가 있고, 비교법적 관점에서 봐도 보편성과 체계성이 결여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일본, 미국, 영국 등 주요국들과 비교해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상으로도 대표를 7년 이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데, 이번에 발의한 법안들은 대표를 2년, 3년, 5년 이상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며 "이는 6개월 이하 징역형인 미국, 일본보다 높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대재해법의 모태인 영국 법인과실치사법에는 사업주 처벌이 아닌 법인 벌금형으로 돼 있는 것에 비해 너무 가혹하다"며 "기업 처벌이 능사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학계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사고 예방이라는 본질을 외면한 채 반기업 정서에만 기댄 과잉 입법"이라며 "산업 재해 사고의 핵심을 벗어난 것으로, 처벌을 하기보다 숙련된 기술자 양성과 그에 걸맞은 급여 시스템 도입, 책임자 권한과 책임 부여 등 공정 전반에 걸친 노력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경제계는 이 같은 호소에도 여당의 움직임에 큰 변화가 없자 오는 16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다시 한 번 제정 중단을 거듭 촉구할 계획이다. 이 자리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대한건설협회 등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근로자의 안전을 위한다는 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장 사고 책임자는 물론 법인과 대표까지 3중으로 처벌하는 너무나 가혹하다"며 "중소기업의 99%는 오너가 곧 대표인데 중소기업의 현실에 맞게 대표는 경영활동이 가능하도록 (법을) 완화해야한다"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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