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근기자] 11일 국회는 10개 상임위원회 전체회의를 동시에 개최했다. 2015년 정부 예산안에 대한 결산 심사가 목적이다. 그러나 전체 상임위를 통틀어 이날 주인공은 사드(THAAD)였다. 지난 8일 정부가 주한미군과 함께 사드 배치를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이날 하필이면 정부의 발표 당시 강남의 모 백화점에 머물던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불과 3일 전 대정부질문 당시 사드 배치에 대해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던 일을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눈치 빠른 인사들은 정부 내 안보의 핵심 축인 외교부와 국방부가 사드 배치를 둘러싼 공식 논의에서 배제된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주무 부처 장관을 제쳐두고 청와대가 사드 배치를 결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사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드 배치 지역까지 잠정 결정된 마당에 두 장관의 이같은 엉뚱한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혹시 이들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국민들 앞에서 연기를 한 것일까? 그렇다면 정부는 장관들에게 '개콘식' 슬랩스틱 코미디를 시킨 셈이다. 국민 입장에선 물론 하나도 안 웃기지만···.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함께 경제 부처들을 감독하는 정무위원회에선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이 집중적인 질타 대상이 됐다. 그 주된 소재는 최근 공정위가 발표한 대기업 집단 지정기준 상향안이 마련되는 과정이다.
지난달 공정위는 현행 5조원인 대기업 집단 지정기준을 10조원으로 인상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하위 법령에 해당하는 시행령 개정만으로 대기업 집단은 현재 65개에서 28개로 대폭 줄어든다. 대기업 집단 지정기준에서 빠져나간 기업들은 상위 법인 38개 규제 법률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한다. 이 법률들을 제정한 국회 입장에선 대노할 일이다.
정재찬 위원장은 이같은 시행령 개정안이 기재부 중심의 부처간 태스크포스(TF)팀을 통해서 마련된 것이라고 항변했다. 자신들의 결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은 현 정부 경제 실세로 통하는 청와대 안종범 정책수석을 통해 확인했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국내 대기업 집단들의 건의를 토대로 청와대가 이를 검토했다고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작 대기업 규제상 주무 부처인 공정위가 정책 논의 과정에서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내용이다.
공정위는 국내 방송통신 정책만이 아니라 국내 기업결합 사상 한 획을 그을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 향방이 그것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이후 장장 7개월간 심사를 통해 이번 M&A에 대해 불허라는, 업계의 예상을 크게 뒤집는 결론을 내렸다. 공정위는 조만간 최종적으로 M&A에 대한 입장을 확정한다.
이번 M&A에 대한 찬반 논의는 일단 제쳐두자. 공정위는 이번 M&A의 실질적 심사와 최종 인가를 담당할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를 이미 훨씬 앞서 나갔다.
지상파 3사가 사회적 파급력이 큰 자사 뉴스 프로그램을 앞세워 공공연히 M&A 반대논리를 설파한 마당이다. 청와대가 이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공정위의 이번 심사에 개입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청와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상파 챙기기에 나섰다는 내용이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에 불과하다. 지상파 출신인 홍보수석과 대변인 등 인사들이 거론되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이같은 풍문은 공정위의 이번 결정이 그만큼 큰 관심을 끌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청와대가 임기 4년차로 접어들면서 정말 레임덕으로 빠져드는 것일까. 정부의 굵직한 결정마다 사사건건 이른바 '외풍' 의혹이 꼭꼭 따라붙는다. 모쪼록 공정위가 그같은 의혹의 희생자가 되지 않길 하는 바람이다. 그만큼 이번 M&A에 대한 공정위의 신중한 판단을 기대한다.
조석근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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