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숙기자]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10일 자신이 최초 제안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이 입법 과정에서 수정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날 오전 자신이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서강대학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영란법 원안은 제가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입법예고했던 것인데 일부 후퇴한 부분이 있어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전 위원장이 문제를 제기한 부분은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 조항 제외 ▲100만원 이하 금품 수수 시 과태료 처분 ▲법 적용 대상 중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로 축소 ▲부정청탁 유형을 15개로 열거 등이다.
◆"이해충돌 방지 함께 시행했어야"
당초 김 전 위원장이 제안한 김영란법 원안은 부정청탁 금지, 금품 등 수수 금지,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 등 3개 영역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러나 공직자가 자신과 4촌 이내의 친족과 관련된 업무를 할 수 없도록 직무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이해충돌 방지 조항은 입법 과정에서 제외됐다.
부정청탁이나 금품 수수처럼 공직자가 적극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적용받는 것이 아닌 어떤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공직자와 친인척 관계라는 사실만으로도 적용을 받게 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은 이에 대해 "이 조항은 장관이 자신의 자녀를 특채 고용한다거나 공공기관이 자신의 친척이 운영하는 회사에 공사를 발주하는 등 사익 추구를 금지하는 것"이라며 "반부패 정책의 중요한 부분으로 함께 시행돼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분리됐다"고 꼬집었다.
김 전 위원장은 또 공직자가 100만원 이하의 금품을 수수했을 경우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입증됐을 때에만 과태료 처분케 한 조항에 대해 "현행 형법 상 뇌물죄는 직무관련성이 있으면 대가성을 묻지 않고 유죄로 인정한다"며 "결국 이 조항은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을 과태료 처분케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부정청탁 영역과 관련해서도 "근본 취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무슨 일만 생기면 유력자 등 제3자를 찾아가 청탁하고 이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풍조를 근절하기 위함이었다"며 "원안에는 부정청탁을 포괄적으로 규정했는데 국회를 통과한 법에서는 이를 삭제하고 15개 유형 열거 방식을 취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부정청탁 예외규정에 '선출직 공직자의 제3자 고충 민원 전달'이 포함된 것을 두고는 "제3자 고충 민원이라 하더라도 내용적으로 이권 청탁, 인사 청탁이 있을 수 있다"며 "자칫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의 브로커화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족 범위 '배우자' 축소 아쉬워…민간 확대는 위헌 아냐"
김 전 위원장은 법 적용 가족의 범위가 민법 상 가족(배우자·직계혈족·형제자매,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에서 배우자로 축소된 데 대해서도 실효성 문제를 제기했다.
김 전 위원장은 "원안에서 민법 상 가족으로 규정한 것은 공직자 본인이 (금품을) 받은 경우와 동일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배우자 외 같이 사는 장인, 장모, 시부모, 아들, 형제자매는 제외시킨 부분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전직 대통령 자녀들, 형님들이 많이 문제돼 왔지 않느냐"라며 "이렇게 축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다만 법 적용 대상이 언론과 사학관련 직원 등으로 확대된 것에 대해서는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원안에서는 공직사회 반부패 문제에 대한 혁신적인 접근을 위해 대상을 공직자나 공직기관으로 한정했던 것으로 이 때의 개인적 생각은 우리 사회 부패를 혁신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공직 분야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우선 공직 분야의 변화를 추진하고 다음 단계로 민간 분야로 확산할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전 위원장은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 확대를 시도한 것이어서 평등권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우리 국민 69.8%가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까지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 것에 대해 바람직하다고 평했다는 언론 조사 결과를 보면 과잉입법이나 비례의 원칙을 위배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언론에 대해서는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헌법 상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예컨대 수사 착수를 일정한 소명이 있을 경우에 한다든지, 수사 착수 시 언론사에 사전 통보를 한다든지 하는 등의 장치"라고 강조했다.
김영란법이 지난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마자 정치권 내에서 수정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최초 제안자인 김 전 위원장이 직접 입장을 밝힘에 따라 향후 법 개정 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윤미숙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조성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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