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가장 힘들었다'는 말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지만 한국 게임업체들의 2014년은 혹독했다. 각종 규제와 부정적 인식, 구조조정과 인수 합병들이 이어지며 게임업체들은 우울하면서도 치열한 한 해를 보내야만 했다. 해외 시장도 예전같지 않아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게임사들은 시행착오는 눈물겨웠다.
하지만 대한민국 게임은 대표적 한류 콘텐츠로서의 위용을 과시하며 희망찬 날개짓을 하고 있다. 수년간 개발해 온 역작들이 공개하며 의욕을 다지는가 하면 모바일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 사례들을 학습하며 수익 모델 발굴과 시장 개척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2014년 숱한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고 2015년 어두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나서는 한국 게임 시장을 진단한다. [편집자주]
[문영수, 류세나 기자] 국내 게임산업 전반에 걸쳐 위기감이 고조됐던 2014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연이은 규제 시도와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 치열해진 시장 경쟁으로 그 어느때보다 힘들었던 한 해였다고 게임사들은 입을 모은다.
답답한 1년이기도 했다. 누구나 모바일게임과 글로벌 시장 개척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결실을 제대로 거둔 게임사는 손에 꼽힐만큼 적었다. 푸른 꿈을 안고 모바일게임사 창업에 나선 이들은 설립 1년도 채 안돼 회사를 폐업했고 대형 게임사들은 구조조정을 통해 일부 게임 사업부 를 정리하는 홍역까지 치러야 했다.
무난히 도달할 것으로 관측되던 게임시장 10조 원 규모 달성도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10월 발간한 '2014 대한민국게임백서'에 따르면 2013년 한국 게임시장은 전년대비 0.3% 감소한 9조7천198억 원에 머물며 사상 첫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2014년 이후에도 9조 원대에서 소폭 등락을 거듭할 것이란 관측이다. 2008년 이후 해마다 10% 이상 성장세를 거듭해 온 한국 게임산업에 분명한 위기 신호가 감지된 것이다.
그러나 주저앉을 수는 없는 법.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 급부상한 게임산업은 이렇듯 유례를 찾기 힘든 위기에 직면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게임사들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다가오는 2015년을 앞두고 한국 게임업체들은 '생존 동력'을 마련하겠다며 희망을 쏘아 올리고 있다.
◆규제·부정적 인식에 외세의 손길까지, 치열했던 2014년
2014년은 국내 게임산업에 규제로 인한 직접적 피해가 드러난 시기였다. 생존의 위협을 느낀 게임사들의 합종연횡이 이어진 한 해 이기도 했다. 한국의 우수 개발인력을 유치하려는 외국의 시도도 잇따랐다. 업계 안팎의 압박이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온 2014년이었다.
게임을 알코올·도박·마약과 함께 치유해야 할 4대 중독물질로 규정하는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게임 중독법)과 게임물 중독 치유 명목으로 게임사 매출 1%를 수금하는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 등이 지난 2013년 발의된 데 이어 올해 6월에는 콘텐츠 산업 진흥을 위해 모든 게임사 매출 5%를 걷겠다는 '콘텐츠산업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 2월 24일에 시행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 이른바 웹보드게임 규제는 국내 게임산업에 엄청난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웹보드게임이 주요 매출원인 NHN엔터테인먼트·네오위즈게임즈와 같은 게임사들은 실적에 즉각적인 타격을 입었다. 월게임머니 구입과 회당 게임머니 사용 한도를 제한하는 규제가 시행되면서 웹보드게임 이용률이 급감한 탓이다.
NHN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분기 매출이 전기대비 21.3% 하락하고 창사 처음으로 영업적자가 발생했다. 이 회사는 규제 시행 일주일 만에 26개 웹보드게임이 서비스가 중지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정부의 게임 규제는 그동안 잠잠하던 게임사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조용하던 게임사들은 행정소송(네오위즈게임즈)과 헌법소원 심판(NHN엔터테인먼트)까지 청구하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국내 게임시장 경기는 게임사간의 이합집산을 야기시키기도 했다.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고자 게임사들은 '빅딜'도 마다하지 않았다. 몸집을 불리거나 회사를 분할하는 등 체질 개선에 주력하는 사례도 여럿이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곳은 1조게임 '크로스파이어'로 유명한 스마일게이트다. 이 회사는 올해 3월 '애니팡'으로 유명한 선데이토즈 지분 약 20%를 1천200억 원에 사들이며 업계를 놀라게 했다. 일각에서는 캐주얼 역량을 갖춘 선데이토즈 이용자풀을 활용하기 위한 회사 측 전략이 아니냐는 게임업계의 분석도 제기됐다.
국내 최대 모바일게임사 넷마블게임즈의 출범도 2014년의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올해 8월 CJ E&M으로부터 물적분할된 CJ 넷마블은 개발 지주사 CJ게임즈와 합병하며 넷마블게임즈를 등장시켰다. 보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사업 전개를 위한 선택이라는게 회사 측 설명이다.
같은 기간 다음커뮤니케이션의 게임사업 부문이 독립법인 다음게임으로 출범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국내 최대게임사 넥슨은 올해 10월 엔씨소프트 지분률을 소폭(0.4%) 늘리며 기업결합 승인 심사 대상인 지분율 15%를 넘겼다.
겹겹 규제와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며 위기에 봉착한 게임업계는 한국의 우수 게임 인력을 흡수하려는 세계 각국의 시도까지 보태져 더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
독일·룩셈부르크·중국 등 주요 국가들은 각종 세제 혜택과 개발 인프라를 앞세워 한국의 유망 개발사 유치에 나섰고 갈수록 척박해지는 국내 개발 환경을 벗어나려는 유망 인력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자칫 '엑소더스' 현상이 벌어지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 '예전같지 않은' 해외 게임 시장, 산업 위축 가중
달라진 해외 게임 시장의 판도도 국내 게임산업 위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그동안 '텃밭'으로 불리던 중국 게임시장이 예전같지 않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국내 게임사들은 한국 시장에서 이렇다할 상업적 성과를 거두지 못해도 중국에 게임을 수출해 이를 만회해 왔다.
하지만 최근 사정은 예전같지 않다. 국내 게임 수출 규모는 지난 2007년 이후 매년 상승하고 있으나 대중국 수출 점유율은 2010년 이후 매년 감소세를 거듭하고 있다. 2010년 37.1%를 점유한 중국 수출 점유율은 2013년 33.4%까지 하락한 상황이다.
2000년대만 하더라도 중국 게임사들은 앞다퉈 한국 게임을 모셔가기 바빴지만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중국의 개발력이 진화하면서 내수 게임만으로 시장 수요를 충족하는 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한때 '산자이'(모방)의 대명사로 통했던 중국 게임들은 이제 한국 게임 못지않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을 주름잡던 '크로스파이어', '던전앤파이터' 이후 더이상 중국 게임 시장을 뒤흔드는 국산 게임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낳는 대목이다.
'블레이드앤소울' 개발 총괄을 맡은 배재현 엔씨소프트 부사장은 지난 해 4월 열린 넥슨개발자컨퍼런스에서 "던전앤파이터와 크로스파이어가 중국시장에서 잘되는 것이지, 한국게임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며 "이 두 게임이 몇 년 뒤에 사라진다면 새로운 한국게임이 이 정도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 글로벌로 날아서 '성공은 시작됐다'
해외 시장 진출은 어려웠지만 2014년 글로벌을 향한 게임사들의 고군분투는 눈물겨웠다. 특히 최대 게임 시장으로 알려진 중국 진출을 위해 게임사들은 용의주도하면서도 치열한 노력을 거듭했다. 글로벌 공략 없이는 미래도 없다는 위기의식이 게임사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는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블레이드앤소울'의 글로벌화에 주력했다. 지난해 말 중국 시장에 선보인데 이어 5월에는 일본, 11월에는 대만에도 진출하며 개발 역량을 선보이고자 노력했다.
올해 3월 텐센트로부터 5억 달러(약 5천300억 원) 규모의 외자를 유치했던 넷마블게임즈도 중국 모바일게임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한 후 몬스터길들이기, 모두의마블 등 주력 모바일게임으로 중국에서 성과를 냈다.
국내 최대 게임사 넥슨은 서구 시장 매출 견인을 위해 올해 10월 넥슨아메리카 산하의 신규 조직 '넥슨XP'까지 설립했다. 북미·유럽 퍼블리싱을 담당하는 넥슨아메리카와 넥슨유럽에 대한 개발 지원 및 부분 유료화 노하우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다.
중국과 서구는 물론 신흥 게임시장으로 각광받는 동남아시아 공략을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동남아시아는 아직까지 시장 대부분을 점유한 주도적 사업자가 없어 일찌감치 깃발을 꽂으려는 국내 게임사들의 러쉬가 이어져 눈길을 끌었다.
유명 모바일게임사인 게임빌(대표 송병준)은 지난 10월 싱가포르, 대만 지사를 연이어 설립했다. 현지 시장 공략를 위한 본격 행보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넷마블게임즈도 지난 2012년 대만·인도네시아·태국 지사를 마련한데 이어 지난 4월 필리핀에 글로벌 서비스센터를 세웠다.
이같은 노력들이 빛을 발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사례도 나왔다. 컴투스가 자체개발한 모바일게임 '서머너즈워'가 대표적이다.
올해 6월 글로벌 시장에 동시 출시된 서머너즈워는 5개월만에 누적 다운로드 2천만 건을 달성하고 '빅 마켓'으로 분류되는 미국과 일본, 중국에서도 흥행에 성공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넷마블게임즈가 7월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통해 태국에 선보인 모두의 마블 역시 출시 13일만에 현지 구글 마켓 1위에 오르며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했다.
◆ 생존 넘어 성장으로… 대한민국 게임 희망으로 날아오르다
2014년 총체적 난국에 직면한 한국 게임산업은 그러나 지속적인 노력과 도전으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겠다는 각오를 새기고 있다. 우수 개발력을 확대하고 양질의 인재 채용에 나서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동력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도 불태운다.
실제로 국내 게임사들은 유례를 찾기 힘든 불황 속에서도 양질의 게임을 선보이고자 연구개발(R&D)에 아낌 없이 투자하고 있다. 엔씨소프트 등 국내 주요 게임 상장사 10곳이 올해 3분기까지 연구개발비로 지출한 금액은 전년대비 55.5% 늘어난 약 2천463억 원 규모로 나타났다. 한국 게임산업에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는 최선의 방법은 결국 양질의 게임 개발이라는 '정공법'을 선택한 셈이다.
지난 11월 성황리에 폐막한 국제 게임전시회 지스타2014 또한 한국 게임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숨죽여 기다려왔던 게임 '잠룡'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자 게임업계도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으로 들뜨고 있다.
MMORPG 명가로 불리우는 엔씨소프트는 유·무선 연동으로 즐길 수 있는 '리니지이터널'을 선보였고 스마일게이트가 선보인 '로스트아크'는 지스타 폐막 이후로도 화제다.
비싼 수업료를 내며 체질 개선을 마친 게임사들은 다가오는 2015년에도 '금맥'을 캐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계획이다. 국제 게임전시회 '지스타2014'의 슬로건처럼 게임은 끝나지 않았고(Game is not over) 생존과 성장을 향한 날개짓으로 게임사들은 희망으로 날아오르고 있다.
문영수기자 [email protected] 류세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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