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기자] SK그룹이 오너 형제가 동시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다.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 선고를 받고 법정구속된 최태원(53.사진) SK(주) 회장은 27일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도 실형 선고를 받았다.
이날 재판부의 선고 강행에도 일부 감형을 통해 적어도 집행유예 선고를 내심 기대했던 SK그룹은 최 회장의 원심과 같은 실형 선고로 충격에 빠진 기색이 역력하다.
당초 SK는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이 국내송환되면서 최소한 선고가 연기돼 추가변론 기회를 얻게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실제 최 회장 측은 이날 오전 재판부에 변론재개를 신청했으나 재판부는 "판결을 선고할 만큼 충분히 심리가 됐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판결을 선고할 만큼 실체적 진실은 이미 심리를 통해 충분히 밝혀졌다"면서 "김 전 고문을 증인으로 채택할 필요는 없다"며 예정대로 선고를 강행했다.
게다가 1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던 동생 최재원 부회장에게도 실형이 선고, 법정구속됐다. 최 부회장은 형인 최 회장을 대신해 글로벌 경영의 공백을 메워왔다.
이에 따라 SK그룹은 창사 이래 최장의 총수 부재 상황으로 경영공백의 장기화가 불가피해 경쟁력 저하가 우려되는 한편, 오너 형제가 모두 수감생활을 하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하게 됐다.
SK는 이날 판결에 대해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사실상 대법원에 상고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관계자는 "법적 판단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없다"면서도 "다만 이 정도 수준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을 아꼈다.
이어 "상고 여부에 대해서는 법무팀과 협의할 예정이지만 대법원에 가는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장기적인 경영 공백은 물론, 그룹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토로했다.
다만 이날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1심과 같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았으나, 법원 안팎에서는 김 전 고문의 증언 없이 선고가 이뤄져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 상고심에서 심리 미진 등을 이유로 파기환송될 가능성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사안은 다르지만 지난 26일 대법원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배임죄에 대해 상고심에서 유무죄를 다시 판단하라며 파기환송한 바 있다.
하지만 상고심을 간다고 하더라도 대법원 재판절차가 종료될 때까지 상당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총수의 경영공백이 그룹 경영에 미칠 차질은 불가피하다는 게 재계의 지배적인 전망이다. 이미 최 회장은 지난 1월 31일 구속돼 수감 생활만 만 7개월을 넘기고 있다.
현재 SK그룹의 경영은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의장을 비롯해 구자영 SK이노베이션 대표와 하성민 SK텔레콤 대표 등 그룹 내 최고경영자(CEO) 6인으로 구성된 수펙스추구협의회가 이끌고 있다.
현재까지는 수펙스추구협의회가 통신, 에너지 등 주력 사업을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오너만이 해결할 수 있는 미래 성장동력 발굴이나 굵직한 글로벌사업 추진은 사실상 '올 스톱' 상태다.
SK그룹 관계자는 "집단경영체제가 실행되고 있어 자율 경영의 책임이 커진 만큼 주요 계열사 경영과 일상적인 사업 전개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동안 최 회장의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한 해외 사업 추진이나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지장을 초래하게 될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실제 SK종합화학과 중국 최대 국영 석유기업 시노펙이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대규모 석유화학공장을 합작해 건설하는 우한프로젝트도 최 회장의 주도 아래 7년간 협상과 사전준비 작업을 거쳤다.
SK종합화학과 시노펙은 지난 6월말 우한에틸렌 합작법인 설립계약을 체결했다. 당초 연초에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었으나 최 회장의 부재로 계약 체결 시기가 6개월여 연기된 바 있다.
특히 이번 실형 선고에 따라 최 회장의 경영복귀가 수년 이상 걸릴 경우, 오너리스크 장기화에 따라 SK그룹이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해외사업 추진이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대규모 투자는 그룹 총수의 역할이 절대적인 만큼, 최 회장의 경영공백을 메우지 못할 경우 SK가 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최 회장 형제가 동시에 징역형을 선고받아 SK그룹 전체에 미칠 타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기수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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