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웅서기자] 늦었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소니 'RX1'을 이제야 만났다. 사용기를 쓰려고 소니코리아에 계속 제품을 요청했는데 그 때마다 "물건이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국내 확보된 물량이 적은 탓도 있지만 또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족족 팔려나갈 만큼 인기가 많아 리뷰용 제품이 없다는 것이 소니측 설명이었다.
많이 팔릴 거라고 예상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하기야 349만원짜리 '똑딱이'를 망설임 없이 살 사람은 별로 없을테니 말이다. 콤팩트 카메라 주제에 값이 왠만한 DSLR을 훌쩍 뛰어넘는 이유는 이 제품이 내부는 풀프레임 센서로 채우고 밖에는 명품 칼자이즈 렌즈를 두른 까닭이다.
쉽게 말하면 이 제품은 전문가용 플래그십 DSLR 카메라의 축소판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크기가 작아졌다'고만 설명할 수는 없다. 크기가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똑딱이', 조작성은 '필름 카메라' 닮아
소니 RX1은 겉보기엔 그냥 똑딱이다. 외관 디자인은 영락없는 콤팩트 카메라지만 여러 조작 다이얼들은 과거 필름 카메라 구조를 연상시킨다.
RX1은 기존 RX100처럼 단순한 생김새다. 제품 색상도 블랙 한 가지뿐이다. 바디와 렌즈 접점에는 소니 풀프레임 카메라를 상징하는 주황색 테가 둘러져 있다. 그립부는 돌출 없이 오른쪽 앞뒤 손이 닿는 부분을 가죽으로 덧대 미끄럼을 방지했다.
버튼이 꽤 많다. 전문가들이 많이 찾는 제품답게 여러 다이얼과 버튼으로 수동 조작성을 높였다. 제품 윗면에는 촬영모드 다이얼과 노출 보정 다이얼, 전원 레버, 셔터 버튼이 있다. 뒷면에는 3인치 디스플레이와 함께 별도의 조작 다이얼과 컬트롤 휠이 눈에 띈다. 제품 앞 렌즈 옆으로는 초점모드를 바꿀 수 있는 포커스 모드 다이얼도 있다.
◆35mm 단렌즈, 줌 기능 없어 불편하지만 화질은 '대만족'
소니 RX1의 외관에서 눈에 띄는 부분을 찾아보자면 렌즈 정도가 될 것이다. RX1의 렌즈는 일반 콤팩트 카메라와 달리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것도 일반 DSLR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소형화된 크기다. 원래 카메라는 센서가 클수록 빛을 전달해주는 렌즈도 커질 수밖에 없다. RX1에 탑재된 풀프레임 센서(35.8x23.9mm)는 평범한 보급형 DSLR의 APS-C 센서(23.5x15.6mm)보다 두배 이상 크다. 그럼에도 렌즈가 이 정도 크기인 것은 놀랄만한 수준이다.
RX1에는 칼자이즈 조나 T* 35mm F2 렌즈가 장착됐다. 소니와 독일 칼자이즈가 공동 개발한 작품이다. 이 렌즈 하나만 해도 100만원의 값어치는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직접 사진을 찍어보니 줌 기능이 없는 단렌즈라 불편한 감이 있지만 그만큼 밝은 조리개와 선명한 화질을 제공해 결과물은 매우 뛰어났다.
렌즈에는 모두 3개의 링이 달려 있다. 앞에서부터 포커스, 초점거리, 조리개를 조절하는데 쓰인다. 초점거리의 경우 '0.2-0.35m'와 '0.3m-∞' 두 가지 설정이 있다. 접사 촬영과 일반 촬영을 생각하면 된다. 피사체가 20cm(0.2m)에서 35cm(0.35m) 사이 근접한 거리에 있을 때는 초점거리를 '0.2-0.35m'로 해야 초점이 잡힌다. 나머지 평소에는 '0.3m-∞'으로 해두면 된다.
◆확실한 배경흐림…초보가 찍어도 '작품'
풀프레임 센서는 큰 크기만큼 더 많은 빛을 받아들여 고화질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초보 사용자인 기자는 '아웃포커싱'에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아웃포커싱은 초점이 맞은 피사체는 선명하게 하고 나머지 배경은 뿌옇게 처리하는 것을 말하는데 센서 크기와 조리개 밝기, 피사체와 배경 사이의 거리 등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풀프레임 센서는 어느 상황에서나 원하는대로 아웃포커싱이 가능하게 한다. 배경흐림은 특히 사진이 잘 나온 것 같은 인상을 준다. RX1으로 사진을 찍으니 기자가 찍어도 마치 전문가가 촬영한 것 같은 작품사진이 나왔다.
조리개를 열고 촬영하니 미세하게 원하는 부분에만 초점이 맞았다. 주변 배경이 그리 멀지 않아도 아웃포커싱이 확연하게 구현됐으며 배경이 멀리 있는 경우에는 흐림 정도가 더 심해졌다.
◆브래킷 촬영, 플래시 촬영도 전문가급
소니 RX1은 전문가가 사용해도 손색 없을 수동 모드를 제공한다. 일단 PASM 수동 촬영은 물론 각 사용자가 직접 세팅한 촬영 환경을 3개까지 저장할 수 있다.
드라이브 모드에서는 연속 브래킷, 단일 브래킷 외에 화이트밸런스, DRO 브래킷 등을 설정할 수 있다. 화이트밸런스도 사용자 정의로 3개까지 지정이 가능하다. 플래시 기능도 저속동기, 후막동기, 무선 등 전문가용 설정을 제공한다.
고감도 촬영도 우수하다. RX1은 ISO 100부터 최대 25600까지 지원하며 확장 모드 적용 시 ISO 102400까지 사용할 수 있다. 다른 카메라보다 감도 폭이 넓기 때문에 어두운 환경에서도 흔들림 없이 촬영이 가능한 것은 물론 1600 이상 고감도로 설정해도 노이즈가 확연히 적었다.
소니 알파 NEX 시리즈에서 이어진 '사진 효과' 기능은 카메라에 개성을 더해준다. ▲토이 카메라 ▲팝 컬러 ▲포스터 ▲레트로 ▲소프트 하이 키 ▲컬러 추출 ▲하이컨트라스트모노 ▲소프트 초점 ▲HDR 그림 ▲리치톤 모노크롬 ▲미니어처 ▲수채화 ▲일러스트레이션 등 13가지를 지원한다.
이중 일부 효과는 더 미세하게 조절된다. 예컨대 토이 카메라는 차갑게, 따뜻하게, 녹색, 자홍색 등 원하는 색감을 표현할 수 있다. 미니어처 효과의 경우 위, 중앙, 아래, 오른쪽, 왼쪽 등으로 원하는 위치에 강조를 줄 수 있다.
각 버튼도 원하는 기능으로 지정할 수 있다. 셔터 버튼 옆의 C버튼, AEL(측광) 버튼을 비롯해 컨트롤 휠의 각 방향에 기능을 부여할 수 있다.
◆'휴대성'과 '고성능'의 결합…사진 자주 찍게 해
며칠 동안 소니 RX1을 가지고 다녔다. 렌즈 때문에 외투 주머니에는 안 들어가지만 작은 가방에 넣어 다니거나 끈으로 어깨에 메고 다녀도 될 정도로 부담이 적다. RX1의 크기는 113.3x65.4x69.6mm, 무게는 482g이다.
중요한 것은 RX1이 평범한 DSLR 이상의 성능을 갖췄다는 점이다. 높은 휴대성에 만족스런 결과물은 사용자가 사진을 더 자주 찍게 하는 요인이다.
비싼 가격은 아쉬운 대목이다. 349만원은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구매를 결정하기 망설여지는 고가다. 덕분에 RX1의 희귀성은 높게 유지되겠지만 그만큼 대중화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다행히 소니는 지난해 11월 RX1을 국내 론칭하면서 현장에서 100대의 제품을 모두 완판했다. 국내 판매가로 단순 계산해도 약 3억5천억원 가량의 매출을 단숨에 올린 셈.
스마트폰에 밀리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소니가 고가의 프리미엄 분야를 개척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박웅서기자 [email protected] 사진=정소희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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