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성기자, 김현주기자] 새 정부에서 '망 중립성' 뿐만 아니라 플랫폼 중립성, 나아가 단말 중립성 관련 정책까지 수립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용자가 자유롭게 서비스나 애플리케이션(앱)을 선택할 수 있도록 최대한 보장하자는 의미인데, 업계는 또 다른 '규제의 신호탄'이 될까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특히 일명 '카카오톡 대항마'라고 불리는 통신3사의 공동 커뮤니케이션 표준 '조인'이 단말 중립성에 위배된다는 발언이 직접적으로 나와 주목된다.
◆"앱 선탑재, '끼워팔기'와 다를바 없어"
박근혜 당선인의 대선 캠프에서 공약 개발을 담당했던 윤창번 전 국민행복추진단 방송통신추진단장은 지난 3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창조경제와 ICT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박 당선인의 공약에 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아울러 당선인의 공약 실천 의지도 함께 설명했다.
이날 윤 전 단장이 강조한 것은 ICT 생태계 조성이다.
그는 "ICT 최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네트워크,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당연하기까지 하다"면서 "이에 더해 최고 수준의 인프라 기반 위에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플랫폼이 꽃을 피울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다양한 공약을 당선인은 내세웠다"고 설명했다.
윤 전 단장은 "특히 중요한 것은 '중립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해 카카오 보이스톡을 기점으로 업계를 뜨겁게 달궜던 망중립성은 물론 플랫폼 중립성, 나아가 디바이스(단말기) 중립성까지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전 단장은 "통신3사가 지난 12월말 '조인'이란 것을 발표했는데, 통신사업자들이 보조금을 줘서 소비자에 파는 단말기에 (조인을 미리)탑재해 팔면, 이것이 디바이스 중립성 해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단말 중립성은 이용자 입장에서 망중립성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통신사나 제조사가 선탑재 해 제공하는 앱은 수준도 높고 편리하지만, 이를 소비자가 선택해 이용할 수 있는지, 다른 대안을 선택할 여지는 있는지 여부는 또 다른 가치이기 때문이다.
윤 전 단장은 이에 대해 "구글만 하더라도 구글 기능을 안드로이드 폰에 다양하게 설치해 뒀지만 이를 이용자가 사용하도록 강제하지 않았다. 선택권을 줬다"면서 "(제조사나 통신사 등)사업자가 만든 앱이 사전적으로 탑재하는 것은 문제다. 이용자 선택권이 보장된 '중립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 ICT 전문가는 "과거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익스플로러와 메신저인 MSN을 운영체제 윈도에 포함시켜 판매한 것이 시장 독점적 지위를 남용한 끼워팔기라는 유럽연합의 철퇴를 맞은 바 있다"면서 "윤 전 단장이 강조한 단말 중립성은 바로 이같은 부분을 강조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전문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끼워팔기가 소비자 입장에선 편리했는지 몰라도, 결국 넷스케이프가 몰락하고 인터넷익스플로러가 웹브라우저를 장악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용자도 이에 익숙해져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할 때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이용자의 선택이 보장될 수 있는 단말 중립성이 '손 안의 컴퓨터'인 스마트폰에서도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업체들 "차별화 노력 의지마저 꺾으란 얘기"
그러나 당선인의 공약에 이같은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전 공약개발 담당자의 발언에 대해 통신업계와 휴대폰 제조 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는 그대로 새 정부의 새로운 '규제 패러다임'으로 적용될 수도 있는 문제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이나 KT, LG유플러스 모두 조인을 비롯해 모바일 고객센터 앱, 통신사 자체 앱장터 앱(T스토어, 올레마켓, 유플러스마켓 등), 내비게이션 앱 등 자신들의 서비스 편의를 위한 다수의 앱을 스마트폰에 미리 탑재해 판매하고 있다.
여기에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제조사들도 유사한 각종 자체 앱을 선 탑재 하는 상황.
때문에 일부 소비자들은 "선 탑재 앱이 20개 가까이 된다. 쓰지도 않는 앱인데 삭제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메모리만 잡아먹어 휴대폰의 '버벅'현상을 가중시킨다"는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가 이같은 자체 개발 앱 선탑재를 '단말 중립성 위배'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니 업체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현재 회사 공식 입장을 무엇이라고 언급하기 조차 조심스럽다. 다만 내부적으로도 매우 당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통신사 고위 관계자는 "조인의 경우,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가 통신사 수익 모델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말 '육참골단(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의 고통스러운 결정을 통해 개발해 내 놓은 서비스"라면서 "그만큼 통신사들의 위기감이 높다는 증거가 되기도 하며 살아보려는 몸부림인데, 그마저 '중립성'을 들어 규제한다면 정말 통신사업자는 단순 망사업자로 전락하는 길 밖에 없다"고 전했다.
휴대폰 제조사들은 국내 시장이 아닌, 세계 시장을 무대로 하기에 정부의 이같은 기조에 우려를 나타냈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로 수출되는 거의 모든 단말에 해당 국가 이동통신사앱과 자체 앱을 탑재하고 있다며, 국내 모델만 제재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세계 145개국 269개 이동통신사를 통해 단말기를 출시하고 있으며 통신사 모델별로 탑재된 콘텐츠가 다르다. 이통사가 요구하는 대로 앱을 넣어 최적화해주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LG전자, 팬택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제조사 관계자는 "말 그대로 속이 텅텅 빈 레퍼런스폰 형태로 출시하라는 건데, 이렇게 되면 구글이라는 동일한 운영체제를 탑재하면서 제조사만의 차별적인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업계는 "중립성을 지킨답시고 천편일률적인 규제를 하기 보다는,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고 차별화된 서비스와 앱으로 경쟁을 유도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강은성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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