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주 기자] 지난 2008년 IPTV 도입 과정은 우리 미디어 시장의 규제 틀을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IPTV가 선을 보이자 케이블TV 진영은 IPTV가 디지털케이블TV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방송법으로 규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KT 등 IPTV 사업자들은 IPTV는 통신서비스의 연장이라며 통신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맞섰다.
인터넷망, 케이블TV망(HFC), 무선통신망, 유선통신망 등이 제각각이던 그때까지만 해도 네트워크와 플랫폼, 서비스가 각각의 패키지 구조였기 때문에 별도 규제가 가능했다. 유선으로 TV를 시청하기 위해서는 케이블TV 외에 다른 수단이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망(IP)을 활용해 TV를 시청하는 기술이 나오면서 방송과 통신 진영이 혼란에 빠졌다. 네트워크가 인터넷망이니 인터넷서비스라는 주장과 망이 무엇이든 콘텐츠는 TV 프로그램이니 방송이라는 시각이 대립한 것.
업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국회는 방송법이 아닌 인터넷멀티미디어법률(IPTV법)을 별도로 만들어 IPTV 서비스를 허용했다. 기존 유료방송(케이블TV, 위성방송)과 뉴미디어(IPTV 등)를 아우르는 통합 미디어법(통합방송법)을 만들기 전까지 임시체제를 운영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케이블과 IPTV를 통합하는 방송법은 제자리걸음만 반복한 채 갈등만 양산하고 있다.
◆신기술, 규제완화로 진입문턱 낮춰
시청자들이 쉽게 알 수 있듯 케이블TV와 IPTV는 닮은 꼴 서비스다. 실시간 TV시청, 다시보기(VOD), 수십~수백개의 채널, 일부 양방향 서비스. 인터넷과 이동통신 연계상품, 약정상품으로 가입이 좌지우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되돌아보면 IPTV법은 통신사들이 IPTV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규제 문턱을 낮춘 측면이 많다. 이를테면 유료방송사는 외국인 지분 총합이 49%을 넘을 수 없다. 기간산업인 통신사 역시 외국인 지분 49%를 넘길 수 없지만, 계산방식이 다르다. 통신사의 경우 1% 미만 지분을 소유한 외국인을 총 지분을 포함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계산을 한다면 0.9%씩 100명이 지분을 소유해 90%의 지분을 가지더라도 외국인 지분이 0%로 집계된다. 실제로 국내 통신사들의 외국인 지분이 정확히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다.
케이블TV의 경우 77개 권역(방송구역) 가운데 3분의 1까지 권역별 독점을 주는 대신 케이블TV 시장 매출의 3분의1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반면 IPTV는 권역별 3분의 1, 전체 유료방송 시장 가입자 3분의1 까지 가입자 모집을 허용하되 전국면허를 줌으로써 대기업 진출에 따른 파이를 보장했다.
당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현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는 기술발전과 미디어 경쟁을 통한 활성화를 목표로 통신사에도 미디어의 문호를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단,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접사용채널을 허용하지 않는 조항을 달았다.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의 조건
업계에서는 기술발전에 따른 미디어 환경변화에 발맞춰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동일서비스 동일규제는 어떤 것을 말할까. 케이블TV와 IPTV 사업자의 규제를 물리적으로 같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권역제한과 권역별 규제를 받는 케이블TV와 전국면허를 가진 통신사에 대한 규제가 똑같을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미디어의 사회적 영향력, 자본의 집중도, 연계서비스 등을 고려해 형평에 맞는 규제 틀을 갖추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디어 업계 전문가는 "경쟁을 활성화해 시청자들의 편익을 극대화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케이블TV 진영의 M&A나 권역별 규제를 풀어 IPTV 사업자와 유사한 규제 틀을 갖추거나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IPTV 사업자의 규제를 케이블TV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라며 "후자가 규제를 강화한다는 측면을 본다면, 전자를 풀어 규제수준을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방송통신위원회는 케이블TV 규제를 완화하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는 케이블TV사업자(SO)의 M&A 확대, 프로그램제공사업자(PP)의 M&A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한미FTA 시대를 맞아 국내 케이블TV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규제 틀 변화를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IPTV 업계는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할때 IPTV 규제도 함께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권역별 3분의 1인 규제를 전체 방송시장의 3분의 1로 바꾸고, 직접사용채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초 권역별 3분의 1로 제한한 것은 '매출 높은 지역(ex. 수도권, 대도시)'에서만의 영업을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이미 미디어 경쟁체제가 굳어졌으니 과도한 규제라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CJ E&M 등 일부 사업자를 위한 특혜라는 일부 주장에 막혀 법제화되지 않고 있다. 이계철 방통위원장은 국회에 출석해 "유료방송 시장 활성화를 위해 이미 수평규제 도입 논의 때부터 추진해온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미디어 업계의 이해관계에 부딪혀 진전되지 않고 있다. 방송법 시행령과 연계된 IPTV 법안 역시 서랍 속에 머물러 있다.
◆균형 잡힌 규제정책 되려면
전문가들은 네트워크의 융합, 플랫폼 및 콘텐츠 다변화 시대를 맞아 출현할 각종 서비스에 대비하려면 이른바 '수평규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평규제란 네트워크(망), 플랫폼, 콘텐츠를 계층별로 구분하고 계층별 경쟁을 활성화하되 계층간 지배력 전이를 막는 것을 말한다.
망이 케이블이든 인터넷이든 구분하지 않고 케이블TV 사업자들이나 IPTV 사업자들이 망 간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지만, 망을 가진 사업자가 그 지배력으로 플랫폼과 콘텐츠 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것만 차단하는 것을 근본원리로 삼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망사업자들은 망에 대한 경쟁을, 플랫폼과 콘텐츠 사업자들은 망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품질 경쟁을 펼 수 있게 된다.
이용자들의 경우 현재는 인터넷 이용자들이 IPTV서비스(올레TV, BTV, U+TV)를 따로 구입할 수 없지만, 초고속인터넷은 SK브로드밴드를 쓰면서 TV서비스는 올레TV를 볼 수 있어야 경쟁이 더욱 활성화된다는 얘기다.
IPTV 도입당시부터 정부가 수평규제 도입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아직까지 진행상황은 더디기만 한 실정이다.
그러는 사이 N스크린, 스마트TV 등 융합복합화 하는 서비스들은 기존 체제로의 규제로 감당하기가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일례로 N스크린, 스마트TV, IPTV의 VOD는 같은 VOD라도 내용심의 등 상이한 규제가 적용된다.
업계에서는 전송수단(위성-IP)이 결합된 융합상품 'DCS', 올레TV스카이라이프결합상품(OTS) 등이 등장해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방통위는 유료방송 시장의 현재 이원화된 시장점유율 규제와 전송수단 융합상품 도입을 위한 제도 개선 및 연구에 나선 수준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궁극적으로 통합방송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현재는 방송제도 연구반, 스마트미디어 포럼 등을 운영하고 있다"며 "DCS같은 융합상품이 등장함에 따라 다양한 측면을 고려한 법제도적 개선, 스마트미디어 등장에 따른 유료방송 역차별을 해소해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미디어미래연구소 이종관 연구위원은 "수평규제 도입은 현행 방송법의 체계를 완전히 뜯어 고치는 것"이라며 "우선 급한 불인 IPTV법과 방송법의 통합부터라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주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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