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기자] 검찰이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52) SK그룹 회장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를 적용해 징역 4년을 구형했다.
동생인 최재원(49) 그룹 수석부회장에게도 같은 혐의를 적용해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법정구속되는 등 재벌 오너에 대한 법원의 양형기준이 과거보다 엄격해진 가운데, 검찰이 이번 공판에서 최 회장에게 어느 정도의 구형을 선고할 지에 대해 재계의 이목이 집중됐었다.
검찰은 "SK 계열사들에게 피해가 미치는 등 범죄 규모가 크고 2003년 분식회계로 문제가 된 전력이 있는 등 최근 양형기준안에 적시된 불리한 양형요인 10여개가 최 회장에게 해당된다"며 "동종 전과가 있는 데다가 증거인멸의 시도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직적인 혐의 은폐시도가 극에 달했으며, 계열사들이 입은 실질적인 손해가 커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검찰이 구형 과정에서 이처럼 양형요건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최 회장 형제의 혐의를 입증했다는 데 주력했다. 검찰은 변호인 역시 적극적인 증거 자료 인멸과 증인들의 위증에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SK계열사들이 투자한 펀드 중에서 선입금된 450억원이 김원홍씨 계좌로 입금되는데 최 회장이 관여했으며, 펀드 출자 역시 최 회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특히 "(최 회장 등) 피고인들과 변호인들은 대책회의를 통해 김준홍의 단독 범행으로 만들기 위해 증거와 진술을 조작, 조직적으로 검찰의 조사를 방해하는 등 대한민국 법 위에 군림하려는 재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며 "(최 회장 등이) 법정에서 한 위증과 허위진술은 법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앞서 최 회장이 최재원 부회장과 함께 주요 SK그룹 계열사가 창업투자사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투자한 2천800억원 중 450억원을 김원홍씨에게 투자하는 방법으로 모두 497억원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최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최 회장은 또 2005~2010년 계열사 임원들에게 매년 성과급을 과다 지급한 후 이를 SK홀딩스로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139억5천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뒤 개인경비 등으로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하지만 SK 측은 그동안 공판 과정에서 베넥스에 송금된 497억원 가운데 김 전 고문에게 송금된 450억원과 비자금 139억5000만원에 대해서 "최 회장은 관여한 바 없다"고 계속 주장해왔다.
SK 측의 이 같은 대응은 횡령 혐의에 대한 공모 관계를 부정해 최 회장의 개인 비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최 부회장이야 어쩔 수 없더라도 그룹 오너인 최 회장이 실형을 받게 되는 최악의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다.
최 회장이 4년여만에 재차 실형을 선고받게 될 경우 기업 경영에 적지 않은 타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앞서 지난 2008년 5월 1조5천억원의 분식회계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최 회장은 이후 78일 만에 사면됐었다.
이날 검찰의 구형에 따라 선고 공판에서 실형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재판부는 증거기록과 법리 검토 여부를 거쳐 이르면 내달중 1심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이날 최 회장 등에 대한 검찰의 구형에 대해 SK그룹은 "검찰 구형은 재판 과정의 일부분"이라며 "잘 소명될 것"이라는 짧은 입장을 밝혔다.
SK그룹 관계자는 "검찰 구형은 재판 과정의 하나로, 그 결과에 대해 딱히 뭐라고 언급하기 어렵다"며 "변호인단을 통해 최태원 회장의 무관성이 소명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선고 공판에서 잘 소명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SK 계열사들의 펀드 출자금을 최 회장 형제의 옵션투자 관리인인 김원홍씨에게 송금하는데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에게는 징역 5년을, 당시 SK그룹 재무실장으로 일했던 장모 씨에게는 징역 3년을 각각 구형했다.
정기수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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