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웅서기자] '있으면 좋을 거 같긴 한데,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요즘 나오는 최신 생활가전제품의 스마트 기능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국내 대표기업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제 세계 가전 시장에서도 내로라하는 업체들이다. 그런 이들이 작년부터 밀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스마트 가전'이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스마트폰에 대고 "전원 꺼"라고 말하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세탁기가 작동한다. 냉장고에 부착된 작은 디스플레이에서는 부족한 식료품을 온라인 주문할 수 있다. 로봇청소기는 탑재된 카메라를 통해 스마트폰에 집안 상태을 보여준다.
신기하다. 허나 유용하진 않다. 이게 현재 스마트 가전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멀리서 음성으로 작동하는 세탁기를 보자. 어차피 세탁기는 한번 작동시키면 빨래가 끝날 때까지 켜 두는 것이 보통이다. 빨래가 끝나면 세탁기로 가서 빨래를 꺼내 널어야 한다. 멀리서 스마트폰으로 세탁 현황을 보거나 전원을 끌 필요가 거의 없는 것이다.
냉장고도 그렇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못 사는 것이 없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식료품 등 먹거리는 시장이나 마트에 직접 가서 보고 사는 경우가 많다.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발품을 파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안심하기 위해서다. 상황이 이런데 하물며 냉장고 앞에 서서 작은 화면을 들여다 보며 주문을 하겠는가.
집을 자주 비우거나 아이를 혼자 둬서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면 CCTV 역할을 하는 로봇청소기에 관심이 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지 그 때문에 로봇청소기를 구입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청소기의 핵심 기능이 청소가 아니라 보안으로 역전된 꼴이다.
생활가전의 본고장 유럽에서는 '스마트 가전'에 대한 인식이 국내와 다르다. 지난 8월31일부터 9월5일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진행된 국제가전박람회 'IFA 2012'에는 유럽 시장에 자리를 잡고 있는 많은 업체들이 생활가전제품을 선보였다.
이 자리에도 '스마트 가전'은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얘기하는 스마트 가전은 '스마트폰'과 관련된 가전이 아니라 '친환경'쪽에 방점이 찍혀 있다. 스마트폰 제어를 내세우는 가전이 없지는 않았지만 주요 제품들의 핵심 기능은 스마트 그리드 등 에너지를 절감하는 기능이 진짜 '스마트'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실제로 보쉬, 지멘스, 일렉트로룩스 등 유럽 가전업체들은 올해 IFA에서 에너지 효율성 'A+++'를 강조한 세탁기와 냉장고를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밀레는 태양열 충전 시스템을 적용한 식기세척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가전업계 한 관계자는 "가전은 다른 제품 대비 에너지를 많이 쓰는 제품"이라며 "이번 IFA에서도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오븐 등 모두 에너지 효율성이 강조됐다"고 설명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통해 휴대폰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놨다. 단순히 새로운 '기능'을 하나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용도'를 다시금 창조했다. 생활가전 업계에도 이런 창의성이 있었으면 한다.
스마트폰으로 세탁기를 끌 수 있게 됐지만 소비자들은 왜 꼭 그렇게 꺼야 하는지를 모른다. 이것을 혁신이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웅서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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