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웅서기자] '스마트 가전'이 실종됐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가전 제품의 새로운 변신 방향은 '스마트'였다. 삼성 LG 등 제조사들이 가전 제품에 각종 스마트 기능을 탑재해 이슈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새 이런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최근 냉장고 신제품을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그러나 두 업체는 이들 제품이 세계 가전업계 사상 최초로 900리터 용량을 넘어선 초대용량 제품이라는 것만 강조할 뿐 스마트 기능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과거 스마트 기능이 이슈가 됐던 것은 사실 제조사들의 노력 때문이었다. 스마트폰이 큰 인기를 얻자 제조사들은 각종 전자제품에 '스마트' 기능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특히 가전 제품은 마진이 높지 않은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 기능'을 추가한 프리미엄 제품군으로 수익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생활가전에 채용된 스마트 기능은 ▲저렴한 전기시간을 골라 스스로 제품이 작동하는 스마트 그리드 ▲스마트폰을 이용해 원격으로 제품을 조종하는 스마트 제어 ▲관리기사를 부르지 않고 가정에서 제품 이상유무를 확인하는 스마트 진단 등이 있다.
또 각 제품별로 ▲모자란 식료품을 바로 주문하는 e커머스 기능(냉장고) ▲카메라로 집안 상태를 파악하는 홈 모니터링 기능(로봇청소기) ▲바깥 날씨를 분석해 집안 온도를 자동 조절하는 기능(에어컨) 등도 가능하다. 물론 각 기능의 명칭은 업체별로 약간씩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올해는 별다른 스마트 가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냉장고 신제품들을 보면 오히려 예전처럼 다시 단순 크기 경쟁으로 돌아간 모양새다.
"소비자들이 (스마트 기능에) 별 반응이 없다"는 게 가전 업계의 속사정.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생활가전제품의 스마트 기능이 아직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소비자들에게 스마트 가전은 아직 가깝지 않은 개념이다. 대표적인 스마트 그리드 기능은 정부에서 시간이나 계절별로 전기료에 차이를 두는 지능형 전력망(스마트 그리드) 구축을 완료해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소비자 중심의 광역단위 구축은 2020년, 국가단위 구축은 2030년 목표로 하고 있어 아직 갈 길이 멀다.
차린 건 많았지만 먹을 건 별로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로봇청소기 등 각 제품에 채용된 스마트 기능은 많았지만 소비자들이 '자주 쓰는' 기능은 거의 없다는 것. 더군다나 각 제품별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 따로 퍼져 있어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문제도 있다.
이 밖에 스마트 기능이 아직 보급형 모델로 퍼지기 전이었다는 사실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생활가전 분야에서 스마트 기능은 아직 최고급 프리미엄 모델 위주로만 적용돼 왔다. 이 때문에 보급형 제품을 사용하는 많은 소비자들은 아직 '스마트 가전'을 접할 기회조차 없었다.
내가 쓰는 냉장고, 세탁기에선 스마트 기능을 찾아보기 어렵고, 비싼 돈 주고 스마트 가전을 구입해도 별로 쓸 일이 없는 것이다.
가전업계 관계자들은 "너무 빨랐다" "아직 이른 것 같다" "더 기다려야 한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쯤되면 의욕이 충만한 제조사들이 긍정적인 시장 전망만 믿고 너무 앞서 나가다 제풀에 지친 격이다.
박웅서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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