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성기자]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한창 들뜬 2010년 12월 어느 겨울날. 이제 말을 배우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줄 아는 세살배기 아이들이 시간나면 아빠에게로 전화를 걸어온다. 혀짤배기 목소리로 "아빠 언제 오세요?"하고 물을 때면 마음 한켠이 아려오지만 그래도 이 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
모두가 퇴근하고 인기척마저 없는 일산 모처의 실험실에서 전정현 KT 매니저는 이날도 혼자 실험을 하고 있다. 조금만 더 파보면 알 것 같은데 한달여 계속된 실험에도 도무지 윤곽이 잡히지 않는다.
"2009년 12월 KT가 아이폰을 처음 출시하고 난 후 꼭 1년이 되던 때, KT의 데이터 트래픽은 무려 1천200%가 증가한 사상 초유의 데이터 폭발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그 원인이 무엇일까, 저는 그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직장인, KT 전정현 매니저는 당시의 일을 이렇게 되돌아보았다.
기하급수적으로 데이터량이 늘어나고는 있었지만, 단순히 스마트폰 이용량의 확대라고 보기에는 무언가 다른 문제가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이를 알아내기 위해 전 매니저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됐다.
"이런 (데이터 폭증) 현상은 전에 경험한 적도 없었고, 그러니 당연히 사내에 전문가나 담당팀 같은 게 있을리 만무했죠. 저는 당시 무선사업부 단말품질담당이었는데 이 트래픽이 KT 망의 문제인지, 단말기의 문제였는지조차 원인 규명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의 문제인가, KT 망의 문제인가. 흑백으로 명쾌하게 나뉘지 않는 궁금증이 전 매니저를 계속 괴롭혔다.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는 것만 같았다.
단말기 구동 정밀실험을 계속하던 어느날, 전 매니저의 눈 앞에 번쩍하며 떠오르는 한가지 현상이 보였다.
"우연치 않게 앱을 설치하고 나서 시스템 로그와 단말 로그를 확인하니 이용자가 앱을 직접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다 구동조차 시키지 않았는데도 해당 단말기에서 데이터 통신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전 매니저는 처음에 모바일 바이러스나 유해한 패킷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내 보안 전문가를 총동원해 보안 검토만 하기를 수차례. 그러나 시스템 로그를 정밀분석 하다보니 스마트폰에 설치한 앱에서 스스로 트래픽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알게 됐다.
휴대폰 문자처럼 메시지가 왔을 때 대기 상태인 휴대폰 화면에 메시지를 띄워주기 위해 앱 스스로가 '살아있는' 상태인지를 확인하려 했고, 이를 위해 앱과 통신 기지국이 끊임없이 '호신호'를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미량의 트래픽이었다. 평소 같으면 감지하기조차 어려운 수준의 아주 작은 데이터 통신량이었지만 몇개월을 로그기록만 들여다보던 전 매니저의 눈에는 분명 이전의 패턴과는 다른 신호였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동영상을 볼 때 발생하는 트래픽은 '예측'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에 설치 해 놓은 애플리케이션(앱)이 늘어날 수록 예측할 수 없는 트래픽이 발생하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스마트폰 이용자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는 SNS 앱 설치가 늘어날 수록 이같은 현상은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이용자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는 각종 SNS 앱을 하나씩 설치했다 삭제해 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단말 로그와 시스템 로그를 반복 실험, 비교를 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사용하지 않아도 앱이 스스로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앱 자체의 서버에 문제가 있거나 신호가 집중될 경우, 앱 스스로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통신 기지국에 연결 신호를 더 많이 보내는 것이 확인됐다. 그 순간 기지국은 수십만, 수백만 대의 동일한 앱 신호를 한꺼번에 받게 되면서 트래픽 부하가 수직 상승하는 것이 눈앞에 드러났다.
회사에서도 전 매니저의 발견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단 한명의 사원이 회사의 명령도 아닌데 스스로 연구해 망부하의 큰 고민 중 하나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회사 차원에서 전담대응팀이 꾸려졌고 보다 대규모의 정밀한 연구 분석이 시행됐다. 전 매니저의 이론과 연구가 맞다고 판단되자 이를 경감시킬 수 있는 대응책 마련에 돌입했다.
앱 개발시 동일한 성능을 내면서도 통신망 부하를 줄일 수 있는 보다 편리한 개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개발자와 해당 회사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유명 SNS를 운영하고 있는 업체와 개발자들을 직접 찾아가 그 앱이 통신망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처음엔 그분들도 자신들의 앱이 통신망에 그처럼 큰 영향을 주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미세한 셀프 호신호일 뿐인데 거대 통신망에 무에 그리 영향을 주겠냐며 잘 믿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설득하며 실험 결과를 제시했고, 그들도 납득해 KT와 함께 망에 최적화된 앱 개발에 협력하게 된 것입니다."
KT는 전 매니저의 발견이 비단 KT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경쟁사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마찬가지로 트래픽 폭증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었고 이같은 문제에 대해 공유했다.
국제 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에도 이 현상을 보고했다. 전세계 어느 통신회사나 스마트폰 이용자 증가와 함께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KT의 이같은 보고서는 데이터 트래픽 폭증 해결의 새로운 물꼬를 트는 단초가 됐다.
GSMA 내에 전담 TF가 조직됐고 전세계 이동통신사들이 함께 참여해 문제 해결에 나섰다.
표현명 KT 개인고객부문 사장은 이번 201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앱의 셀프 호신호와 데이터 트래픽 폭증의 관계'에 대한 주제 강연을 하기도 했다.
최근 전정현 매니저는 이석채 KT 회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이같은 발견을 통해 회사의 고민을 해결한 것은 물론, 회사측의 명령이 아닌 스스로의 열정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 한우물만 파는 스타일이어서요, 무얼 하나 발견하면 끝을 보는 타입이거든요."
상받은 사실을 묻자 머리를 긁적이며 쑥쓰럽게 답하는 전 매니저. "지난해는 온통 이 일에 매달려 있다보니 아이들에게도 소홀하고 가정에도 충실하지 못했어요. 올해는 주말에 아이들과 제대로 놀아주고 아내와도 시간을 보내야죠."
하지만 여전히 주말에도 KT의 '스마트워킹' 시스템을 이용해 일에 푹 빠져 있다는 그다. 스마트 시대가 급격히 진전되고 LTE 시대가 다가오면서 드러나는 어떤 새로운 '문제점'이 그의 머릿속을 점령할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강은성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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