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기자] 내달 1일부터 시행되는 일괄 약가인하를 둘러싼 정부와 제약업계의 소송전이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한 쪽으로 승부의 무게추가 급격히 기우는 양상이다.
제약사들이 소송 승패 여부를 떠나 실익이 없다는 판단 아래 소송 자체를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8월 보건복지부의 약가인하 정책이 발표된 직후부터 줄곧 소송불사 방침을 밝혀왔던 제약업계가 정부와 제대로 붙어보기도 전에 완패를 인정한 셈이다.
16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약가인하 소송의 마지노선으로 지목됐던 오늘(16일) 오후까지 기존 소송을 제기했던 4개 제약사들 외에는 단 1건의 소장도 접수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복지부를 상대로 약가인하 취소 소송과 고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제약사는 일성신약, KMS제약, 다림바이오텍, 에리슨제약 등 단 4곳에 불과하다.
통상 법원의 가처분 신청 수용여부가 2주 정도 소요되는 점을 감안한다면, 내달 1일 약가인하 고시 효력 발생 전 소송을 제기할 시점은 16일이 사실상 마지막인 셈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소장 접수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제약협회는 지난 14일 '대리 접수' 카드까지 꺼내들며 소송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회원사들을 소집했지만, 제약사들의 참가 부족으로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업계에서는 윤석근 한국제약협회 신임 이사장의 선출을 놓고 갈등을 빚은 상위제약사들이 이날 대거 소장을 제출할 것으로 관측했었지만, 이들 업체들의 경우 이미 소송에서 발을 뺏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상위제약사들의 경우 수익처가 다변화 돼 있어 약가인하에 따른 타격이 중소제약사보다 상대적으로 덜한 데다, 오는 5월 혁신형제약사 선정을 앞두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봤자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위제약사 중 한 곳인 A사 관계자는 "로펌을 통해 소송 준비를 해왔지만 내부 검토 결과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며 "다른 상위제약사들도 같은 입장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B사 관계자는 "현재 검토 중"이라면서도 "굳이 소송에 참여해 정부와 관계를 껄끄럽게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게 내부 분위기"라고 사실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방침을 피력했다.
이에 대해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약가인하 시행 직후 혁신형 제약기업을 선정한다는 정부의 계획이 상위제약사들이 몸을 사리게 하는 이유"라며 "혁신형제약기업 선정 가능성이 높은 상위제약사들이 불이익을 감수하고 소송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회사의 존폐 여부가 달린 일부 영세제약사를 제외하고는 중소제약사들의 소송 제기도 높지 않을 전망이다.
소송 제기로 복지부를 비롯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공단 등 관계 정부 부처들로부터 미운 털이 박힐 경우 향후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복제약이 많은 국내 제약업계의 특성 상 소송에서 승소한다고 해도, 신약 가격은 내려가고 복제약만 예전 가격을 유지하는 '가격 역전' 현상이 일어나 오히려 매출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신약을 대거 보유한 다국적제약사들은 소송에 참여하지 않을 방침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품목이 약가인하 대상에 포함된 중소제약사들은 내주라도 소송을 제기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약가인하에 해당된 품목 수나 품목당 매출 등이 제약사별로 전부 다르고, 업체 규모에 따라서도 손실액이 달라진다"며 "제약사들마다 각자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집단적인 소송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기수기자 [email protected]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