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가 삼성전자의 애플리케이션 장터 '삼성앱스'를 이 회사 스마트TV에서 접속할 수 없도록 차단했다가 5일만에 원상회복시켰다. 삼성전자가 KT 망을 통해 스마트TV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망에 심각한 부하를 초래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삼성전자는 반발했다. KT의 일방적 제한조치가 부당하다며 법적 대응을 추진했다. 양사의 갈등은 고스란이 이용자들의 피해로 돌아갔다. 두 회사는 14일 오후5시30분을 기해 '향후 조속한 논의'를 조건으로 접속 제한 사태를 해결하는데 합의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해결해야할 중요한 과제를 남겼다. 양사의 갈등은 스마트TV를 중심에 둔 이른바 망중립성 논의에 다시 시선을 모은다. KT가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를 감수하면서 까지 무리수에 가까운 일방적 조치를 취한 것도 사회적 시선을 끌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양사의 갈등이 내포한 스마트TV의 망중립성 문제를 긴급 진단한다.
[편집자주]
[강은성기자, 김현주기자] KT와 삼성전자의 대립으로 촉발된 이번 스마트TV 논쟁은 '이용자가 인터넷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권리'와 '통신사가 합리적으로 트래픽을 관리할 권리'를 명시한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교롭게도 KT의 스마트TV 접속 제한 행위가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려줄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은 이 논의에 대한 부분을 '유보'해 놓은 상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올해 1월1일부터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고 있지만 논란의 핵심이 되는 스마트폰 무료인터넷전화(mVoIP)에 대한 부분은 정책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추후 논의하겠다며 유보한 바 있다.
이번에 차단 사태까지 부른 스마트TV에 대한 부분 역시 '시장이 활성화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규제를 선행하기는 어렵다'며 논의를 연기해놓은 상황이다.
하지만 KT와 삼성전자라는 국내 최대 기업들의 이번 갈등은 스마트TV에 대한 망중립성 논의에 불을 지필 전망이다. 당장 15일 오후2시 첫 회의를 시작하는 방송통신위원회 망중립성 정책자문위원회의의 최우선 과제는 스마트TV가 될 것으로 보인다.
◆KT "트래픽 관리 위해선 어쩔수 없어"
KT 김효실 상무는 삼성전자 스마트TV 접속제한에 대해 "일부 이용자에게 불편을 끼친 점은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하지만, 이는 더 많은 이용자의 편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강조했다.
KT는 스마트TV가 트래픽 과부하를 유발하는 만큼, 제조사와 제대로 된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스마트TV의 지속적인 보급이 이뤄지면 안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 같은 극약처방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항변한다.
김 상무는 "콘텐츠를 다운로드 받아 재생할 때 IPTV의 평균 속도는 8Mbps이지만 스마트TV는 최대 25Mbps까지 발생시킨다"면서 "더구나 KT는 IPTV 서비스 품질과 인터넷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1조3천억원의 설비투자를 통해 19개 노드에 다운로드 부하를 미리 분산시켜 놓았지만, 스마트TV는 어떤 대비도 하지 않고 직접 KT의 백본망에 부하를 일으켜 전체 인터넷 이용자의 품질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스마트TV가 이 같은 많은 부하를 일으키는 만큼 망중립성에서 보장한 '망 사업자의 합리적 트래픽관리에 대한 권리'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KT경제경영연구소 김희수 상무는 "교통 혼잡을 야기하는 측이 시설물 소유자에게 경비 일부를 납부시키는, 이른바 도로교통법 상 '교통유발분담금' 제도를 이번 문제에 적용해야 한다"면서 "고용량 트래픽을 제어하는 방법은 (통신사업자가) 물리적으로 막거나 통행료(망 이용료)를 징수하는 것이며, 많이 이용하는 사람이 많이 부담하는 형식이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사각지대'였던 스마트TV 논의, 수면위로
이처럼 과대 트래픽을 일으키는 스마트TV에 대해 '합리적 트래픽관리' 측면에서 살펴봐야 함에도 현재 스마트TV가 망중립성 논의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에 '도리가 없다'는 것이 KT의 주장이다.
KT 관계자는 "현재 시행하고 있는 망중립성 가이드라인은 '이용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합리적 트래픽 관리를 인정한다'는 원칙 차원의 담론에 불과하다"며 "KT가 접속제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스마트TV 논쟁은 계속 수면 아래에서만 논의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스마트TV가 천만대, 2천만대 보급되면 트래픽 관리 자체가 어려워지는데 정책 당국이 이를 '판단 유보'하면서 사업자 역시 소극적인 태도로 협상에 임하도록 방조했다"고 지적했다.
방통위는 KT와 삼성전자의 스마트TV 분쟁 합의를 중재하면서 부랴부랴 '스마트TV 세부분과'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효실 상무는 "우리는 삼성전자가 협상에 임하기로 한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제부터 망이용대가와 설비투자 분담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KT의 접속제한 조치는 스마트TV의 보급이 늘어나고 이로 인한 폭발적 트래픽증가를 예상한 '선제적 대응'이 어느 정도 먹혀 든 셈이다.
◆접속제한 조치, 망중립성 대원칙 '위배'
하지만 이번 KT의 스마트TV 접속제한은 망중립성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는 올 1월1일부로 '망중립성과 합리적 트래픽 관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고 있다.
망중립성이란 '합법적 서비스와 단말기에 대해 망 사업자가 함부로 차단하거나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통신사는 긴급한 경우 일부 제한이 허용되지만 이를 사전에 알리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아울러 이 원칙을 투명하고 성실하게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망중립성 정책자문위원회 소속 한 전문위원은 "KT의 조치는 망중립성 잣대를 적용하면 엄연한 '차별금지'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마트TV는 이용자가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개방형 서비스로, KT가 이를 제한한 것, 특히 모든 스마트TV가 아닌 삼성전자라는 특정회사의 제품만을 접속제한한 것은 이용자 차별이며 망사업자라는 지위 남용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망중립성 전문가 역시 "통신업계의 논리대로라면 스마트TV가 망 대가를 지불하면 향후 인터넷에 연결되는 모든 기기는 망 대가를 내야 한다는 것과 다름아니다"면서 "이는 결국 소비자들에게 요금인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통위 통신정책국 석제범 국장은 "KT에서 스마트TV 접속을 제한하는 행위는 망중립성 원칙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사회적 합의가 조속한 시일 내에 이루어지는 것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면서 "위원회에서는 접속차단행위에 대한 전기통신사업법상의 이용자의 이익침해행위 등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강은성기자 [email protected]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