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미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허울뿐이라고 지적을 받고 있는 동반성장 정책에 고삐를 죄고 나섰다.
김동수(사진) 공정거래위원장은 16일 오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김순택 삼성 부회장,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 강유식 LG 부회장, 김영태 SK 대표이사 사장 등 4대그룹 대표와 '공생발전'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하고 비계열사의 경쟁입찰 확대를 주문했다.
이에 삼성그룹과 현대차, LG, SK 등 4대 그룹이 시스템통합(SI)·광고·건설·물류 분야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자제하고 독립 중소기업에 경쟁입찰 기회 제공을 내용으로 하는 자율적인 공생발전 계획을 앞 다퉈 발표하고 나섰다.
◆4대그룹 경쟁입찰 시행…30대 그룹으로 확대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모두 발언을 통해 "각 그룹이 2분기부터 상장법인을 중심으로 외부 독립 중소기업에 사업참여 기회를 주기로 했다"며 "이들 그룹의 모범사례를 30대 기업에도 알려 이를 활용하도록 권장할 예정이다"라고 강조했다.
또 "필요하면 그룹별 실천방안을 모니터링해서 혜택이 독립 중소기업으로 조속히 전파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SI·광고·건설·물류 등 분야에는 그간에 (일반 중소기업이) 아예 응찰할 기회를 찾기 어렵다는 불만이 있었다"고 꼬집었다.
이 분야의 경쟁입찰 도입은 독립 중소기업에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줄뿐더러 계열사 물량에 안주해온 일부 대기업에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는 설명도 했다.
그는 "작년 세계 아홉 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는데 대기업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최근 대기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46개국 국민에게 사업기회가 얼마나 있다고 느끼는지를 조사했더니 우리나라가 45번째로 최하위권이었다는 작년 말 이코노미스트지 기사를 인용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경쟁입찰을 통해 독립 중소기업에 똑같은 기회를 줌으로써 대·중소기업 간 공생 생태계 조성, 사업 기회 확대를 통한 기업가 정신 발휘, 역동적인 경제·지속적인 경제성장 등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4대 그룹 '일감 몰아주기' 자제 선언
이번 간담회에 대해 재계에서는 정부의 동반성장 정책을 공정위가 지원에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동반성장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자율협의를 기반으로 하면서 허울뿐인 동반성장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에 공정위가 우선 4대 그룹을 중심으로 대기업의 내부거래 문제에 칼을 댄 것 아니냐는 것이다.
삼성그룹과 현대차, LG, SK 등 4대 그룹은 이날 간담회 이후 구체적인 계획을 속속 발표하며, 정부에 뜻에 화답했다.
우선 삼성그룹과 LG그룹이 SI 부문과 광고, 건설, 물류 업종 등에 대해 경쟁입찰을 확대해 실시한다. 두 그룹 모두 올해 2분기부터 신규 계약시 경쟁입찰을 확대하고 비계열 독립기업에 사업 기회를 확대할 예정이다.
삼성은 업종별로 ▲SI 업종은 일부 보안상 불가피한 분야를 제외한 신규개발 프로젝트 ▲광고는 개별 기업 이미지 광고와 매장 광고 ▲건설은 사옥 등 일반 건축 ▲물류는 일부 수직 계열화된 물류 이외의 전분야를 개방 대상으로 정했다.
LG의 경우 ▲SI 분야에서는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을 제외한 분야 ▲광고 분야에서는 이벤트, 홍보물 제작 분야 ▲건설 분야에서는 제품 생산 공장 및 연구개발 시설 이외의 공사 분야 등을 경쟁입찰 대상으로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역량 있는 비계열 독립 중소기업의 사업참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경쟁입찰과 독립 중소기업에 대한 직발주를 활성화한다.
기업의 효율성이 저해되지 않는 경우, 상장사에는 오는 2분기부터 시스템통합(SI), 광고, 물류, 건설 분야를 대상으로 경쟁입찰을 점진적으로 활성화한 후, 하반기 이후는 일정한 규모 이상의 비상장사에도 확대할 예정이다.
SK그룹은 계열사들의 SI(시스템통합), 광고, 건설 분야의 신규 거래업체를 선정할 때 경쟁입찰을 확대해 중소기업들의 신규 사업 참여기회가 늘릴 계획이다. 또 내부 계열사간 거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현재 4개 계열사에 설치한 내부거래위원회를 다른 2개 계열사에 추가로 설치한다.
하반기엔 경영여건을 고려해 준비를 하고 규모를 갖춘 비상장 계열사로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으로, 파트너로 적합한 중소기업의 발주를 확대할 계획이다.
4대 그룹의 공생발전 정책이 생색내기 논란에 그쳤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에 종지부를 찍고 상생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은미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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