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 창의적인 인터넷 서비스가 늘어나고 이용자들이 편리한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망 관리와 이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용자들이 차별과 차단이 없는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같은 논의는 당초 유선인터넷 분야로부터 시작됐다. 논점의 요지는 유선 포털이나 유튜브 등의 콘텐츠를 통신사들이 차단하거나 제어해도 되는가였다. 스마트TV가 등장하면서 트래픽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다른 곳과는 달랐다. 유선보다 무선 분야에서 논란이 거셌다. 당면 과제의 해결 역시 더욱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스마트폰 가입자가 2천만 명을 넘어서면서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무선 분야의 트래픽 증가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데이터 이용량 어쩌나
통신사들과 콘텐츠 사업자들을 갈등으로 내모는 첫째 원인은 단연코 트래픽 폭증이다. 우리나라에 아이폰이 시판되기 시작한 후 지난 2년여 동안 한국의 무선 인터넷 이용량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폭증했다.
OECD 조사에 따르면 국가별 인터넷 트래픽 유발량은 미국이 6천337페타바이트(1페타바이트는 100만 기가바이트)로 가장 많다. 전세계의 31%를 차지한다. 미국 다음은 한국이다. 우리나라의 인터넷 트래픽 유발량은 2천196페타바이트로 전세계 트래픽의 10%에 달한다. 일본은 3위다.
하지만 이를 1인당 트래픽 유발량으로 환산하면 세계 1위는 단연코 한국이다. 인구비율별로 살펴보면 우리는 인구 10만명당 트래픽이 4천555테라바이트(1테라바이트는 1천기가바이트)에 이른다. 2위인 캐나다의 2천288테라바이트의 두 배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스마트TV에 대한 걱정도 만만치 않다. 스마트TV가 아직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지만 앞으로 폭발적인 트래픽 증가를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는 판단에서다. 고화질(HD)의 대형 스크린을 가득 채우려면 데이터 사용량은 폭발적일 수밖에 없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2015년까지 국내 유선 인터넷 트래픽이 현재의 4배, 무선인터넷은 35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클라우드서비스와 인터넷방송, 카카오톡, 마이피플 등의 모바일 메신저처럼 N스크린 시대가 도래하면서 각종 창의적 서비스들도 속속 등장, 데이터 트래픽은 예측 불허의 폭증을 예고하는 실정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나성현 박사는 "스마트폰이 중심이 돼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고, 그동안 PC를 통해 이용했던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를 모바일로 이용하면서 무선 트래픽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웹 공간에 '저장소'를 두고 언제 어디서나 내 컴퓨터 드나들듯 인터넷을 이용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나, PC TV 휴대폰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고화질 동영상까지 감상하는 N스크린 서비스, 이용자가 직접 방송까지 제작, 송출하는 인터넷 방송은 무선 네트워크 과부하의 주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통신사들은 비상 상황이다. 투자를 늘려 망을 고도화시켜야 하고 일부 구간은 데이터 용량을 늘려야 한다.
SK텔레콤은 2011년 상반기 무선네트워크 부문(이동통신망) 설비투자에 총 8천590억원을 투입했다. 2010년 같은기간에 비해 130.3%를 늘린 것이다. KT도 총 8천204억원의 비용을 투자, 전년 동기대비 135.1% 늘렸다.
통신사들의 걱정은 '투자를 늘려도 늘려도 과연 끝이 보이는가'이고 '투자비는 어디서 거둘 수 있느냐'에 있다. 투자는 통신사가 하지만 이를 사용하는 것은 비단 통신 사업자의 고객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땅 파서 장사하나?" vs. "이미 지불한 것"
통신 사업자들의 걱정은 트래픽 폭증에만 있지 않다. 사업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다양한 서비스들의 등장도 골치거리다. 사업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힘들게 돈 써서' 망을 잘 깔아 놓았더니 '그 망을 이용해 위협을 가해 오는 새로운 서비스'들이 등장하는 모양새다. 남 좋은 일만 시킨 셈이다.
통신 사업자들은 이런 서비스 기업들을 '무임승차하는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은 통신사의 문자메시지 매출을 위협했고 마이피플은 통신사의 음성통화 매출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통신사 관계자는 "가입자의 월평균 통화량이 가시적으로, 그리고 꾸준히 줄어들고 있고 문자매출도 마찬가지"라면서 "이에 비례해 가입자당 월평균 매출(ARPU)도 1년째 감소세"라고 말했다.
KT의 경우 지난 1년간 지속적으로 ARPU가 하락해 3분기에는 3만원대가 무너졌다. KT의 2011년 3분기 ARPU는 2만9천609원으로 '3만원대'가 무너진 것은 2009년 3분기 KTF와의 통합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SK텔레콤의 ARPU도 3분기 청구기준으로 3만3천210원을 기록했다.전년 동기대비 1천437원 감소한 수치다. LG유플러스도 LTE로 반전을 꾀하고는 있지만 사정은 다르지 않다.
통신사들의 성적표를 놓고 보면, 줄어든 수익이 콘텐츠 사업자들로 넘어갔을 공산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인터넷 사업자들은 통신사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이병선 본부장은 "인터넷 사업자들은 통신사에 회선요금, 네트워크 요금 등 지금도 해당 비용을 지불하는데 트래픽의 과다에 대해 이용대가를 또 내라는 것은 이중과금"이라며 "이용자들이 내는 인터넷 이용료는 어디에 쓰이는 것이냐"며 반박했다.
NHN 한종호 이사는 "폐쇄적 서비스에 따라 기존 트래픽이 너무 없다보니 현재의 트래픽증가가 폭증하는 것으로 보이며, 투자여력이 없다는 통신사들의 수익은 여전히 천문학적"이라고 말했다.
◆이용대가 등 전면적 통신정책 재검토 촉발
망중립성 원칙은 약자나 소수라고 해서 정보의 접근이 차단되면 안된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차별과 차단이 없어야 한다는 점은 '흐르는 데이터가 어떤 것인지 구분하면 안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전문가들은 이런 의미를 잘 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정보의 접근에 차별과 차이가 많았던 과거와 달리, 지금 우리의 인터넷환경은 정보의 차별보다 대다수의 자유로운 이용자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대두된 것이 '관리'의 필요성이다.
검열식 망관리가 아니라면 트래픽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투명하게 망을 관리할 필요가 있고, 이것이 인터넷 이용에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나성현 박사는 "합법적인 인터넷 서비스에 대해 이용자가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고 이용할 권리는 우선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면서도 "그러기 위해 (정부가) 통신사업자의 트래픽 관리를 할 수 있는 합리적 범위와 감독체계를 잘 수립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 제시된 해법은 통신사들에게는 '관리의 권한'을 부여하되 그 내용과 범위를 이용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확인하는 것이었다. 망을 관리하되 '이러저러하게 데이터가 폭증해서 요모조모로 조치했다'는 명분과 근거를 명확히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확실한 해법으로 인식되지는 않고 있다. 망중립성의 문제는 결국은 사업자간 '망이용대가'로 귀결될 수밖에 없어서다. 망 설비와 투자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에 대한 풀이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이 문제를 2012년 과제로 삼고 있다. 통신사업자와 인터넷 업계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할 전망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망이용대가와 같은 난제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이피플같은 인터넷 전화가 촉발한 망이용대가 문제는 사업자간 이권다툼이 아니라 국민의 통신이용 환경 변화에 따른 것이므로 정책 전반을 고려해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강력한 규제 권한을 앞세워 사업자들이 통신망을 구축하도록 하고, 대신 사업자들의 일정 수익을 보장해 주는 통신정책을 써왔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는 기존 방식으로는 통신사업도 안정적인 사업모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통신과 서비스의 재편이 가속화되는 인터넷 시대를 맞아 대한민국은 전면적 통신정책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망 중립성은 발단이기도 하고 그 논의의 중심에 있다.
특별취재팀(안희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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