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성기자] 2년동안 논의를 거듭하던 '망중립성' 원칙의 윤곽이 드러났다. 인터넷을 이용할 때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주요한 내용이다.
이해관계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무엇하나 구체적으로 정해지진 않았다. 그러나 인터넷 이용에 관한 정책 방향성을 정했다는 큰 틀에서 이 첫걸음은 의미가 깊다.
방송통신위원회는 5일 은행회관에서 '스마트시대의 망중립성과 인터넷 트래픽 관리'라는 주제로 망중립성 정책방향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지난 5월 구성, 7개월간 운영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작성한 '망중립성 가이드라인' 초안이 공개됐다. 가이드라인은 통신사의 '합리적인 트래픽 관리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방통위는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또는 망에 위해가 되지 않는 기기 또는 장치를 차단해서는 안되는 '차단 금지' 조항과 해당 트래픽을 불합리하게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불합리한 차별금지' 조항도 못박아뒀다.
그러나 이 두가지 차별금지 조항에도 '다만 합리적인 트래픽 관리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조건을 달아 통신사가 트래픽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차단-차별금지 '원칙' 속 통신사 입장도 배려
망중립성 단어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자면 '인터넷으로 전송되는 데이터 트래픽을 그 내용, 유형, 제공사업자, 부착된 단말기기 등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 이용자의 권리와 이익에 충실한 개념이자 통신사업자의 의무를 극단적으로 강조한 부분으로, 인터넷 접속료를 낸 이용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말하자면 '자유이용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방통위가 내놓은 초안은 이같은 원칙을 기본적으로 수용하면서도 '합리적 망관리'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적인 정책방향으로 평가받을 지 관심이 모인다.
방통위가 운영한 망중립성 포럼에도 직접 참여한 박재천 인하대 교수는 "망중립성은 단순히 인터넷 이용에 관한 규칙을 천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공정경쟁, 비용분담 등의 비즈니스 이슈와 개방성, 인권, 표현의 자유 등 시민 사회적 가치가 복합적으로 결부돼 있는 아주 복잡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복잡한 망중립성 논쟁이 '네트워크 관리'라는 공통 분모를 찾아내 해결을 위한 첫 단추를 끼웠다는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권남훈 건국대 교수도 "망중립성 원칙이 오히려 거대 사업자의 수익을 보전해주고 일반 이용자나 힘없는 개발자를 착취할 수도 있다"면서 "메일만 확인하는 소량 이용자가 망 트래픽을 혼자 점유하는 초과량이용자(헤비유저)의 비용을 보전해주거나 자본력 있는 거대 사업자와 1인 개발자가 동일한 망이용 조건을 받는다는 것은 오히려 불합리 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단순히 차별금지라는 번지르한 말만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 망관리'를 할 수 있는 구체적 조항이 나와야 한다"면서 "인터넷에 있어서는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유럽보다 오히려 선진국이므로 이들이 정하지 않은 원칙이라고 우리 역시 몸을 사릴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기본 원칙 찾다가 현안은 언제 해결하나"
그러나 '기본 원칙', '공통 분모'를 찾는데 몰두한 나머지 당장 현실에서 충돌하고 있는 현안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선언적 의미에 그쳐, 미흡하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박재천 교수는 망중립성 원칙 선언의 첫걸음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내년에 설립될 정책자문기구를 통해 세부적인 것은 논의가 계속 돼야 한다"면서 "현재 진행중인 mVoIP(모바일 인터넷전화)라는 이슈에 대해서는 무엇하나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녹색소비자연대 전응휘 이사는 "망중립성 원칙을 수립하면서 모든 사업자와 심지어 정부당국까지 '공정경쟁'이라는 말 한마디 넣는 것을 두려워하더라"면서 "개방 공간인 인터넷을 '공정한 경쟁을 통해' 이용하자는 원칙 수립이 어렵더냐"며 날선 비판을 가했다.
실제로 이 mVoIP 이슈는 토론회 현장에서도 뜨거운 주제가 됐다.
정태철 실장은 "다음 마이피플의 가입자가 1천500만명을 넘었는데 이는 LG유플러스보다 많고 카카오톡 가입자는 SK텔레콤보다 많다"면서 "이들이 이렇게 많은 가입자에게 통신사업자와 상당히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동일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에 따라 규제를 받고 투자를 해야 비로소 공정경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NHN 한종호 이사는 "통신사들이 주장하고 있는 '심각한 망부하'가 과연 정말 심각한가, 매출 감소 및 수익 급감이 사실인가 그 사실증명이 필요하다"면서 "모바일 데이터 활성화 측면에서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 정상적인 것 일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토론회를 지켜본 방송통신위원회 통신경쟁정책과 이창희 과장은 "망중립성 정책은 이해관계자 뿐만 아니라 소비자 단체, 관련 학계 전문가도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결과물"이라면서 "포괄적 의견수렴을 거치다 보니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가면서 정책을 형성해 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이런 중대한 이슈일수록 사회적 합의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면서 "(정부가 독단적으로 정책을 수립하면) 당사자들의 정책준수 노력이 부족하게 되고, 깊이 공감하는 정책이어야 준수하려는 노력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에 이번 망중립성 원칙 역시 상호 공감대의 출발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과장은 "이같은 공감대를 중심으로 앞으로 발족하게 될 정책자문위원회와 함께 선진적인 망중립성 정책방향을 수립하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강은성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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