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강지용 기자] "충전기마다 전기트럭이 모두 점령하고 있었다. 단거리용이니 고속도로 진입 못 하게…"
최근 코나 일렉트릭을 타고 회사 업무로 평택을 방문했던 A씨는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충전 때문에 휴게소를 찾았다가 난감한 일을 겪었다. 시흥의 한 휴게소에 충전기 4기가 설치돼 있었는데, 모두 1톤 전기트럭이 충전을 하고 있었던 것. 문제는 이 같은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기자동차 운전자들 사이에서 '고속도로를 이용할 때 전기트럭 때문에 충전에 애를 먹는다'는 불만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15일 국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고속도로 전기차 충전소 상황'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1톤 전기트럭 여러 대가 줄을 지어 충전기를 이용하는 사진과 함께 올라온 이 글은 22만6천회의 조회수와 621개의 댓글 수를 기록하는 등 큰 주목을 받았다. 누리꾼들은 "휴게소에 갈 때마다 화가 난다", "단거리용 포터EV를 장거리용으로 쓰는 차주의 문제다", "전기차는 충전 때문에 시기상조다" 등 전기차의 충전 인프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댓글로 남겼다.
◆ 정부, 전기차 보급 대수 확대에만 '급급'
문제는 정부의 보조금 정책이다. 매년 사업용 전기트럭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전기차를 자가용으로 이용하는 운전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전기차 보급 대수 확대에만 급급하고 정작 중요한 차량 성능을 고려하지 않아 충전 난민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9일 정부와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전기차 보급 지원대수를 늘리기 위해 총 26만5천대 분의 보조금을 풀기로 했다. 이 중 5만대가 전기트럭이다. 전기트럭은 현재 전국에 8만1천236대가 등록돼 도로를 누비고 있다.
환경부는 포터EV가 출시된 2019년 12월 이후 전기트럭 보급 대수를 매년 큰 폭으로 늘려왔다. 2004년 이후 신차에는 허가되지 않던 영업용 번호판을 무상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현재 전기트럭 보조금은 대당 2천여만원에 달한다. 보조금 지급대수가 판매에 직결되는 점을 감안하면 올 연말까지 전기트럭 운행 대수는 13만여대로 62% 증가할 전망이다.
◆ 전기트럭, 하루에 2회는 충전해야
또 다른 문제는 역부족인 국내 충전 인프라와 함께 전기트럭의 배터리 성능이다. 통상 한 차례 충전으로 약 400km를 주행하는 전기차(현대 아이오닉5 423km, 기아 EV6 445km)와 달리 1톤 전기트럭은 주행거리가 대부분 200km 안팎이다. 업계 여건상 무거운 화물을 싣고 달린다면 주행거리는 현저히 짧아질 것이고, 에어컨을 켜는 여름철, 히터를 가동하는 겨울철은 배터리 소모가 눈에 띄게 빠를 게 불 보듯 뻔하다. 일부 운전자들은 '한겨울에 짐을 실으면 주행거리가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는 후기를 전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교통연구원 화물운송시장정보센터의 2020년 통계에 따르면 1톤 이하 화물차는 하루에 적재 시 138km, 미적재 시 74km를 합쳐 총 212km를 평균적으로 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술적으로 전기트럭 이용자들이 하루에 두 번은 충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충전 회수가 자가용 운전자 대비 10배 이상이다.
전기트럭 충전은 주유소에서 연료를 넣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급속 충전기로도 1시간 이상이 걸리고, 다수를 차지하는 완속 충전기로는 완충에 8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충전기를 독점하고 있는 전기트럭을 보며 충전 수요자들은 발만 동동 구르는 악순환이 생길 수밖에 없다.
◆ 전기트럭, 경유 화물차 대체 효과 미미
결국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출시된 1톤 전기트럭은 장거리 화물운송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대기오염 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기존 경유 화물차를 줄이려 성능이 역부족인 전기트럭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한 것은 정부의 패착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사업용 전기트럭 구매자가 기존 보유 차량을 폐차하는 비율은 2020년 5.8%에서 2021년 8월 말 2.7%로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전기트럭의 경유 화물차 대체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한국전기자동차협회 관계자는 "정부의 전기 화물차 보조금 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며 "'되팔이' 등 악용을 막기 위해 택배·퀵서비스·이사(근거리 배송) 등 실수요자 중심으로 구매 보조금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장거리 사업용은 전기트럭보다 LPG나 수소차가 더 적합하다"고 덧붙였다. 2021년 기준 LPG 화물차 지원사업 신청자 중 조기 폐차 차량 소유자 비중은 74%에 이른다. 전기트럭보다 노후 경유차 대체 효과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다.
◆ "국내 급속 충전 인프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아울러 늘어나는 전기차 수요에 부합하는 충전 인프라 확충도 과제다. 산업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 새로 만들어진 전기차 급속충전기는 417대다. 이를 포함해 전국에 2만여개의 충전기가 설치돼 있다. 전체 전기차 보급대수는 지난해 말 기준 38만98천55대. 올해 40만대를 넘어섰을 가능성이 높다. 전기차 19대 중 충전기 한 대꼴이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전기트럭의 충전기 독점 문제를 가볍게 봐선 안 된다"며 "충전 스트레스 때문에 자가용 전기차 이용자까지 내연기관차로 다시 돌아가는 움직임까지 감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업용 전기트럭 부문에 과도기적으로 중국의 '배터리 스와핑(Battery Swapping, 배터리 교환)' 방식의 도입도 검토해 볼만 하다"면서 "그러나 결국에는 급속 충전 인프라의 획기적인 개선만이 해법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지용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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