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DB하이텍이 소액주주들의 강한 반발 속에서도 팹리스(반도체 설계) 물적분할 안건을 통과시켰다. 분할 후 신설 자회사가 상장되면 기업 가치가 하락할 것이란 소액주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표심이 사측으로 기울면서 물적분할을 무리없이 추진할 수 있게 됐다.
DB하이텍은 29일 경기도 부천시 본사에서 '제70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하고 가장 관심을 끌었던 브랜드 사업부 물적분할 안건을 통과시켰다. 소액주주들의 반대표가 쏟아졌음에도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이 사측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DB하이텍의 주요 주주(작년 말 기준)는 ▲DB Inc. 및 특수관계인 17.85% ▲국민연금 7.94% 등이다. 지분 1% 미만 소액주주는 전체의 77% 안팎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물적분할 안건과 관련한 사전투표에서 찬성은 53%, 반대는 7.3%가 나왔다. 참석 주주들의 경우 참석 87.1%, 반대 12.0%의 표를 받아 예상보다 무난히 통과됐다.
브랜드 사업부는 비주력인 팹리스 사업을 담당하는 곳으로, 2007년부터 모바일·TV 디스플레이 화소를 조절해 색상을 표현하는 DDI 등 일부 제품을 직접 설계해 자체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 DB하이텍은 이를 자회사로 떼어낸 후 순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로 전환해 고수익 전력반도체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DB하이텍은 지난해 한 차례 물적분할을 추진했다가 주주들의 반대로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이후 이달 초 이사회를 열고 물적분할 안건을 재의결했다.
DB하이텍이 내세운 순수 파운드리는 TSMC, UMC 등 글로벌 파운드리 업계의 전략 방향이기도 하다.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의 TSMC는 창업 이래 '고객(팹리스)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경영모토를 기반으로 시장 지배력을 꾸준히 높여가고 있다. 또 다른 대만 파운드리 기업인 UMC 역시 설계사업부서를 미디어텍과 노바텍으로 분사한 후 본업인 파운드리 사업에 집중함으로써 사업규모를 10배 가까이 늘렸다. 증권업계에선 세계 2위 파운드리인 삼성전자도 '파운드리 분사 및 미국 증권시장 상장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DB하이텍은 "신설법인을 100% 자회사로 두면 신설법인의 실적을 모두 반영 받게 돼 분사로 인한 매출 감소가 발생치 않는다"며 "오히려 기존 브랜드사업으로 인해 진출하지 못했던 고부가가치 제품군으로 사업을 확대할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 신설법인의 신규사업 진출에 따른 실적 개선도 기대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신설법인도 DB하이텍을 모회사로 둠으로써 안정적인 파운드리 공급망을 확보하는 등 시너지를 높일 수 있다"며 "진입장벽이 높은 팹리스 시장에 안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적분할로 분사되는 신설 법인 사명은 DB팹리스(가칭), 분할 기준일은 5월 2일이다. 분할되는 신설법인은 상장을 추진하지 않을 예정으로, 불가피하게 상장할 경우 모회사인 DB하이텍의 주주총회를 통해 주주들의 동의를 반드시 거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할 방침이다.
DB하이텍 관계자는 "분할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사업 전문성 강화에 있다"며 "과거 핵심사업 물적분할 후 곧바로 상장해 일반주주들의 권익 훼손 논란을 불러 일으킨 사례들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은 여전히 못마땅해 하고 있다. 분할 후 신설 자회사가 상장돼 기업가치가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특히 분할계획서에 분할된 날로부터 5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신설 자회사를 상장하고자 하는 경우 DB하이텍 주주총회 특별결의로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한 점을 문제삼고 있다.
또 소액주주들은 '5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을 언급한 것은 사실상 5년 뒤 상장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고 봤다. 이 때문에 소액주주들의 모임인 DB하이텍 소액주주연대는 '5년 이내' 조항을 삭제할 것을 촉구해왔다. 하지만 이달 중순 진행된 회사와의 미팅에서 별다른 진전이 없자 주총에서 반대표를 행사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에 DB하이텍은 주총을 하루 앞두고 지난 28일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내놓으며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또 먼저 분할 자회사 상장계획이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더불어 DB하이텍은 ▲모회사의 사내이사 1인 이상을 자회사 이사회 구성원으로 참여시키고 모회사 감사위원회에 자회사 경영상태 조사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과 ▲모회사 분기 사업보고서에 자회사의 주요 변동사항을 공시하는 등 자회사 경영현황에 대한 모니터링 체제를 확립해 나가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여기에 ▲올해 주당 배당금을 배당성향 10%에 해당하는 1천300원으로 늘리면서 향후 배당성향 10%를 정책화하고 ▲올해 안에 자사주 비중을 10%까지 확대하고 2024년에는 15%까지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덕분에 DB하이텍은 이날 물적 분할 안건을 포함한 대부분의 안건이 무리없이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사내이사에 조기석 사장과 양승주 부사장이 선임됐고, 사외이사는 김준동 법무법인 세종 상근고문, 정지연 경북대학교 생태환경대학 부학장이 맡게 됐다.
다만 소액주주들이 제안한 배당금 확대 등의 안건은 모두 부결됐다. 소액주주들은 한승엽 홍익대학교 경영대학 조교수의 사외이사 선임 건, 집중투표제 도입 건 등을 앞서 제안한 바 있다.
이날 주총에 참석한 최창식 DB하이텍 부회장은 "올해 글로벌 경기 침체 영향을 받아 반도체 시장이 역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으로, 미·중 갈등 심화, 러·우 전쟁 장기화 등으로 공급망 불안과 고물가가 지속되고 있다"며 "내부적으로는 가동률 하락과 가격 인하 압박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어 실적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파운드리는 고객 상충 이슈를 해소해 거래선과 제품군을 확대해나가고, 브랜드는 전문 경영인 영입과 독자 경영체제 구축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자 한다"며 "최근 반도체 업계를 둘러싸고 투자 축소, 감산 등의 암울한 이슈들이 쏟아져 나오고는 있지만 DB하이텍은 2023년을 또 하나의 성장 스토리를 써 나가는 원년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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