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날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반도체 업황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지속적인 투자에 고삐를 당긴 모습이다. 위기를 기회 삼아 '초격차' 기술 확보하고 달라질 시장 환경에 맞서 선제 대응하려는 분위기다.
7일 삼성전자가 공시한 2022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설비투자 비용은 53조1천153억원으로, 사상 최대치였던 전년(48조2천억원)보다 10.2% 증가했다.
이 중 반도체(DS) 부문에만 전체의 90.1%인 47조8천717억원이 투입됐다. 연구개발 비용도 전년 대비 10.3% 늘어난 24조9천292억원이 집행됐다. 연구개발의 결실로 특허 보유 수도 22만5천910건을 기록, 전년 대비 9천506건 늘었다.
삼성전자는 올해도 시설투자와 연구개발 투자액을 예년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최근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차입한 바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가 지분 85%를 가진 자회사다.
차입 기간은 2025년 8월 16일까지로, 이자율은 연 4.60%다. 삼성전자는 향후 반도체 업황 개선이 예상되는 만큼 여유 현금이 생기면 이번 차입금을 조기 상환한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매년 50조원 안팎을 벌어서 이 중 대부분을 반도체에 투자해왔던 것을 고려하면 올해 영업이익 감소로 반도체 투자 재원도 일시적으로 부족할 듯 하다"며 "'맏형' 삼성전자가 이례적으로 자회사로부터 20조원을 단기 차입하기로 한 것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투자 축소·감산 기조에도 반도체 투자를 축소하지 않고 계획대로 실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의 올해 전체 투자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메모리의 경우 작년과 유사한 수준의 투자가 집행될 것으로 예상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도 지난 1월 31일 컨퍼런스콜에서 "최근 시황 약세가 당장 실적에 우호적이지는 않지만 미래를 철저히 준비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결론적으로 올해 시설투자(캐펙스·CAPEX)는 전년과 유사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역시 첨단공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평택과 미국 테일러 공장의 생산 능력 확대를 중심으로 투자를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DS 부문 및 SDC 등의 첨단공정 증설·전환과 인프라 투자를 중심으로 시설투자가 이뤄졌다"며 "올해 시장 불확실성 속에서도 차세대 기술 경쟁력 확보 및 미래 수요 대비를 위한 투자를 지속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실 있는 성장을 위한 투자 효율성 제고에도 집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이번에 확보하는 20조원의 자금으로 평택 3·4기 인프라 투자와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등 첨단 기술 투자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또 연구단지 조성을 비롯한 인프라 투자도 병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이 회장의 '기술 경영' 기조와 맞닿아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취임 직후 취임사를 대신해 사내게시판에 남긴 메시지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앞서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며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앞서 같은 해 6월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도 이 회장은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고 피력했다. 이후 8월 기흥캠퍼스 차세대 반도체 R&D 기공식에서는 차세대뿐만 아니라 차차세대 제품에 대한 과감한 R&D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초격차 기술 확보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외불확실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라며 "삼성전자의 이례적 차입은 반도체 투자를 위한 과감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장유미 기자([email protected])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