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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KT를 떠도는 유령


[아이뉴스24 이정일 기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하나의 유령이 KT를 떠돌고 있다. ‘정치적 외풍’이라는 유령이다. 이 유령의 배후는 짐작만 할 뿐이다. 짐작되는 그 배후가 노리는 목적은 몹시 노골적이다. ‘최고경영자(CEO)를 우리 사람으로 채우겠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유령의 출몰. 그때마다 흔들리는 KT.

이야기는 작년 말로 거슬러간다. KT 이사회는 12월28일 구현모 현 대표를 차기 대표로 단독 추천했다. 사실상 연임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KT가 지난해 매출 25조원을 처음 돌파하고 빌빌대던 주가도 3만원을 훌쩍 넘는 경영성과를 높이 산 결과다. 구 대표가 ‘낙하산’이 아닌 ‘KT 출신’이라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날 국민연금이 반발했다. “CEO 후보 결정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국민연금은 KT의 최대 주주(10.35%)다. 투자기업의 경영활동에 참여하는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명분도 있다. 그런 국민연금의 엄포에 여당까지 가세하면서 KT 이사회는 한발 물러섰다.

차기 CEO 선임 절차는 결국 개방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난 2월20일 34명이 후보군에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그중에는 ‘정치권 낙하산’ 딱지가 한둘이 아니다. ‘여권 인사가 절반’이라는 관전평도 씁쓸하다. 어쨌거나 레이스는 시작됐고 1차와 2차 평가를 거쳐 3월 중 최종 1인이 결정된다. 과연 누구일까. 당장은 그 ‘누구’에 관심이 쏠리지만, 누가 된들 KT가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돌아보면 과거의 그 ‘누구’들도 하나같이 정치적 외풍에 시달렸다. 공기업이었던 KT가 민영화된 2002년 5월 이후 CEO를 역임한 이는 이용경, 남중수, 이석채, 황창규. 이용경은 단임에 그쳤고 남중수와 이석채는 연임을 노렸다가 낙마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눈엣가시가 된 탓이다.

2005년 취임한 남중수 전 사장은 2008년 연임에 성공했지만 얼마 못 가 배임 혐의로 물러났다. 그 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다. 2009년 1월 취임한 이석채 전 회장도 연임을 노렸지만 2013년 말 하차했다. 2013년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해다. 2014년 취임한 황창규 전 회장은 연임에는 성공했지만 문재인 정부 내내 ‘박근혜 게이트’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KT는 ‘소유분산기업’이지 ‘오너기업’이 아니다. 오너가 없는 그 틈을 정치권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공신들에게 전리품이 돌아가야 하는데 KT는 0순위다”는 말도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주인이 없다’는 정치권의 그릇된 인식이 낳은 병폐를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꼬집었다. “소유분산 기업은 주인이 없는 기업이 아니다. 주인이 없다는 잘못된 인식이 무분별한 개입을 부른다.”

그뿐인가. 정치적 외풍이 몰아칠 때마다 KT 임직원들은 일손을 놓기 일쑤고 주가도 흔들린다. 그러고 보면 KT CEO 수난사는 KT 조직의 문제이자 주주들의 손해로 이어지는 총체적 리스크다.

유령이라고 하면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에도 등장한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1948년) 공산주의는 그러나 자유주의 시장경제 앞에 무너졌다. <빅히스토리> 저자 데이비드 크리스천은 “소련의 계획경제 사례처럼 정부가 지나치게 통제하면 자본주의 세계 혁신의 원동력인 기업가의 창의성을 질식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자유시장경제의 밑천은 주체적인 기업경영이다. 낙하산 인사나 정치적 외풍은 기업을 망가뜨린다. 그런데도 KT를 떠도는 저 유령은 질기고 노골적이다. 언제까지라도 그럴 것처럼. 자유시장경제를 비웃으면서.

/이정일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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