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안세준 기자]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수탁자 책임활동)'.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가 책임 있는 투자를 끌어내도록 하는 주주권 행사 준칙이다.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적극적으로 나서 투자자 재산을 관리해야 한다는 데서 출발했다. 한 마디로 투자자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기관투자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겠다는 일종의 자율 지침이다.
◆재무 실적·주주가치 상승세인데…'스튜어드십 코드' 내건 국민연금
KT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KT 이사회의 최고경영자(CEO) 후보 결정 과정에 제동을 걸었다. 경선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며 수탁자 책임 활동을 예고했다. 오는 3월 열리는 KT 정기 주주총회에서 구현모 KT 대표이사 연임에 대한 반대 의결권 행사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이 민영기업 경영에 간섭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두고 '연금 관치' 등 비판이 일고 있다.
국민연금이 주장하는 책임투자란 재무적 요소와 투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재무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투자를 뜻한다. 그러나 최근 KT·포스코 등 사례를 보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에는 재무적 요소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라는 비재무적 요인만으로 대표이사 연임 등에 개입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의 속내가 무엇이든 KT는 재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KT는 지난해 연결 기준 실적으로 매출 25조6천500억원, 영업익 1조6천901억원을 기록했다. 구현모 KT 대표 취임 이후 실적이 개선되면서 사상 첫 매출 25조 시대를 연 것이다.
주주 가치도 상승했다. 구 대표 취임 초기인 2020년 3월 20일 기준 주가는 1만7천250원이었지만 3년이 지난 10일 오전 기준 3만3천500원으로 94.2% 성장했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내세워 KT 경영권에 훈수를 두는 것은 모순적이라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은 최근 들어 KT 지분 매도·매수를 이어왔다. 지난해 12월 2일 KT 주식 약 4만주를 매수했다가 같은날 34만여 주를 매도하면서 KT 보유 지분을 9.99%로 낮췄다. 2021년 말 기준 국민연금의 KT 보유 지분율이 12.68%였던 점을 감안하면 1년새 2.7%p 남짓 줄었다. 최대주주 매도라는 리스크가 발생하면서 이날 KT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3.85%(1천300원) 하락한 3만2천500원에 장을 마쳤다.
◆스튜어드십 코드 하겠다더니 보유 지분 '사고 팔기'…학계도 "어불성설"
스튜어드십 코드를 포함한 기관 행동주의(액티비즘)는 기본적으로 바이앤홀드(Buy & Hold, 매수 후 보유) 전략을 원칙으로 한다. 해당 종목에 가해지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변화에 안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발동하면서 KT 지분은 사고 파는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 단순히 스튜어드십 코드의 목적이라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학계도 의문을 품는다.
김우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든 어느 연기금이든 스튜어드십 코드를 포함해 기관 액티비즘을 하는 행위는 (그들이) 보유 지분을 쉽게 시장에 팔 수가 없어서다. 보유 지분을 많이 갖고 있는 상태에서 특정 회사에 문제가 있다며 지분을 매도한다면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바이앤홀드 전략을 취할 때 성립하는 것이 스튜어드십 코드이고 기관 액티비즘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목적은 투자 대상 회사의 밸류업"이라며 "반면 거래 행위를 지속한다면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전제 자체가 없어지게 된다. 지분을 사고 팔면서 액티비즘을 하겠다는 것은 웃긴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회사 주인은 주주…국민연금, 정치적 목적 개입해선 안돼"
국민연금의 최근 행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인 없는 기업'에 대한 지배구조 문제를 거론한 것이 발단이라는 됐다는 관측인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정부가 경영에 관여하는 것이 적절치는 않으나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를 만들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특정한 의도를 갖기 보다는 원론적인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어떤 이유에서든 민간기업의 경영 개입 등에 나서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KT의 사례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회사의 주인은 주주이고, 주주가 누구를 대리인으로 선택할지도 주주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진 교수는 "(같은 소유분산기업인) 포스코의 경우 사장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외압 등으로 임기 중간에 CEO가 관두게 되는 악순환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세준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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