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의 올해 시장 점유율이 작년보다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재판 출석 등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적극 나서지 못한 영향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어 경제계에선 반도체 위기 극복을 위해 이 부회장을 사면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연일 높이고 있다.
26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 TSMC가 56%의 점유율로 1위 자리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TSMC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53%에서 올해 56%로, 3%포인트 늘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대만 정부의 전폭적으로 지원에 힘입어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선 영향이 크다. TSMC는 최근 1조 엔(약 9조6천억원)을 투자해 일본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한 데 이어 추가 투자 계획도 속속 내놓고 있다. 지난해 이후 건설 중인 신규 공장만 6개다.
삼성전자도 올해 16%의 점유율로 2위 자리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점유율이 전년 대비 2%포인트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 부회장이 옥중생활에 이어 취업 제한으로 여전히 경영 전면에 나서지 못하면서 글로벌 경쟁사들에 비해 투자가 위축된 영향이 컸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결정한 미국 테일러시 반도체 공장에 대한 약 20조원 규모의 투자 이후 이렇다 할 반도체 투자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의 다른 축인 기업 인수합병(M&A)도 사실상 어려운 상태다.
국가별로 비교했을 때도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기가 감지됐다. 대만은 TSMC의 선전과 함께 UMC(7%), VIS(2%), PSMC(1%) 등 자국 내 다른 파운드리 기업들까지 정부 지원에 힘입어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을 키운 덕분에 시장 점유율이 66%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021년 점유율 64% 보다 2%포인트 높다.
중국 역시 공격적인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반도체 굴기'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반도체 자급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세계 반도체 생산 장비까지 싹쓸이 하는 모습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지난 2018년만해도 반도체 장비 구입에 131억1천만 달러를 썼던 중국은 지난해 두 배가 넘는 296억 달러를 지출해 2년 연속 장비구입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덕분에 중국은 매출액 기준으로 올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전년 동기 대비 1%포인트 늘어난 8%의 점유율을 기록할 전망이다. 중국은 지난 2020년 기준 반도체 자급률이 15.8%에 그쳤지만, 2025년에 7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로 반도체 굴기를 추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이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자주적 반도체 생태계 구축, 공급망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는 분위기"라며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활동 제한으로 K-반도체 초격차 확보에 제동이 걸린 사이 대만과 중국은 공격적인 정부 지원 덕분에 한국의 점유율을 야금야금 뺏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점유율은 지난해 18%에서 2022년 17%로 1%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의 중국 반도체 규제가 시작되기 전·후의 주요국 중국 반도체 수입시장 점유율 변화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타격도 가장 컸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18년 대비 지난해 대만의 중국 반도체 수입시장 점유율은 4.4%포인트, 일본 1.8%포인트 각각 늘어난 반면, 한국은 5.5%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점유율 감소폭은 미국(0.3%포인트) 보다도 컸다. 앞서 미 상무부는 2019년 4월부터 2020년 9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중국 화웨이, SMIC 등을 상대로 미국 반도체 소프트웨어·장비를 활용해 생산된 반도체의 공급을 규제한 바 있다.
중국의 반도체 수입이 늘어난 시기에도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로 그 수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수입은 4천686억 달러로 미국의 중국 반도체 공급규제 개시 직전년도인 2018년 대비 37.2% 늘어났다. 대만, 일본에 대한 반도체 수입은 각각 57.4%, 34.8% 증가했다. 미국의 제재로 중국 토종기업과 중국내 외국인 투자기업이 함께 미국 반도체 구매가 막히면서 대만산 반도체 칩 수입을 늘린 결과로 분석된다.
반면 중국의 한국 반도체 수입은 6.5% 증가에 그쳤다. 이는 미국의 규제에 따른 화웨이의 한국산 메모리 구매 중단, 메모리반도체 가격 하락 등의 여파로 중국이 메모리 전체 메모리 수입을 0.7% 줄였기 때문이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본부장은 "2019년 미국의 대 중국 반도체 공급규제 이후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인 중국에서 시스템반도체 강국인 대만과 전통 반도체 강자 일본이 약진했다"며 "반면 메모리반도체 위주의 K-반도체는 중국 내 위상이 크게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9년 만에 한국을 앞지를 것이란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도 나왔다. GDP가 국가의 한 해 경제 성과를 측정하는 주요 척도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전망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IMF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1인당 GDP가 3만4천990달러, 대만은 3만6천 달러대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는 지난달 24일 "대만의 1인당 GDP는 2003년 한국에 역전된 이후 줄곧 뒤처져 있었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크게 변했다"며 "대만 정부 싱크탱크인 중화경제연구원은 대만이 이미 지난해 한국을 근소한 차이로 추월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왕지안 대만 중화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이 매체를 통해 "대만이 역전하는 것은 한국 경제가 벽에 부딪혀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재벌 기업은 규모의 경제라는 점에서는 우수하지만 경기가 나빠지는 국면에서는 대응이 늦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선 올해 세계 파운드리 매출이 전년 대비 20%가량 증가한 1천287억8천400만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한국은 부진한 모습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TSMC에 대한 글로벌 기업들의 러브콜이 이어지면서, 삼성전자와의 점유율 격차가 향후 더 벌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와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 대유행과 지정학적 혼란으로 인한 칩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대만 (파운드리) 기업들은 전 세계 정부가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유치하고 싶어하는 (칩 제조) 파트너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삼성전자의 부진이 가시화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자 경제계에선 이 부회장의 '사면'이 간절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삼성전자가 과감한 투자에 나서는 것밖엔 대안이 없다고 판단해서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경제5단체는 다음달 8일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단행되는 '특별 사면'에 이 부회장이 포함돼야 한다고 최근 청와대에 재차 요청했다. 경제계에선 매년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을 요청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진 5번의 사면에서 번번이 제외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시계가 멈춰선 것도 이 부회장의 사법리스크에 따른 오랜 부재의 영향 때문"이라며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형기 만료는 오는 7월로, 만약 만기 출소하게 되면 5년 간 취업제한을 받게 돼 정상적 경영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이번에 사면 결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이번에 사면된다고 해도 매주 목요일마다 합병 관련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는 점도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달부터는 3주에 한 번 금요일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심리도 병행한다. 이에 따라 3주에 한 번꼴로 주 2회 법정에 출석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발이 묶이면서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 발굴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파운드리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삼성이 대규모 M&A나 투자를 안 하면서 최근 상당히 침체된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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