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법 자체가 모호해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일단 위반 사례 '1호'만 되지 말자고 임직원들에게 신신당부하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 지 몰라 불안하기만 하네요."
안전·보건 관리를 소홀해 인명사고가 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27일 시행되면서 재계가 반발하고 있다. 모호한 법 규정으로 인해 산업 현장의 혼란과 우려가 큰 상황에서 보완 입법 없이 그대로 강행된 탓에 각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여전히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지난 2020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를 계기로 제정된 중대재해법은 사망사고를 포함한 중대재해 발생 시 기업인 1년 이상 징역형, 법인에 대한 벌금, 징벌적 손해배상책임까지 중첩해 부여하고 있다. 이미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이 웬만한 재해 예방에 대한 규정을 정해놓고 있는 만큼 재계에선 중대재해법을 두고 '경영 책임자를 위한 처벌'이라고 해석하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산안법은 사고 발생 시 대표자, 대리인, 사용인, 종업원 등 관련자를 모두에게 책임을 지우는 개방적 구조라면 중대재해법은 오직 경영책임자에게만 처벌을 가하는 폐쇄적 구조"라며 "안전·보건 의무 미이행이라는 부작위(不作爲)에 대한 벌금·징역형인 만큼 준수 범위가 방대할 뿐만 아니라 사고 발생 시 수사 과정에서 인과관계를 추정할 때 논란도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경영 책임자를 CEO(최고경영자) 또는 CSO(최고안전관리책임자)로 특정하지 않고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한 부분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다. 경영 책임자 개념에 대한 모호성 때문에 CSO가 있더라도 CEO 면책이 어려울 수 있고 더 나아가 기업의 실제 소유주 처벌까지도 열려 있어서다.
재계 관계자는 "법령 자체가 갖고 있는 불명확성이 너무 커 의무주체와 의무이행방법 등에 대한 정부의 자의적 해석이 많을 가능성이 높다"며 "근로자들이 부주의로 현장에서 사고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모든 책임을 기업이나 CEO가 다 져야 하는 애매한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보여 앞으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을 듯 하다"고 밝혔다.
여기에 어느 정도 조직과 인력, 예산을 갖춰야 하는 지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은 점도 기업들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가 각 사업장의 규모나 특성을 고려해 적정한 전담조직을 갖추라고만 안내하고 있어 '적정한'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두고 논란이 많다.
전경련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이 마련되고 해설서가 배포됐지만 산업현장에서는 여전히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법률의 모호성을 해소하고 과도한 처벌 수준을 완화해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부분의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의 개정 또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코스닥협회가 지난 20일 국내 71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법 시행 후 개정 또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94.6%에 달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가장 큰 애로사항은 '모호한 법조항(43.2%)'을 꼽았다.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 처벌 규정이 과도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과도하다'는 의견이 77.5%(다소 과도 43.7%, 매우 과도 33.8%)였다. 또 과도하다고 답한 응답자의 94.6%는 추후 법 개정 또는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입법 보완 없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많은 기업인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은 현실에 맞도록 수정해야 하고 재해의 예방 활동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두고 대기업들은 수십억원을 들여 로펌의 컨설팅을 받는 등 차분히 대응하는 분위기지만, 중소기업은 관련법 문구 해석도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라며 "현장의 과도한 불안함과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산업재해 예방이라는 법 제정 취지를 살리려면 사업주 처벌 수준을 완화하고 의무사항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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