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심지혜 기자] 유료방송 업계 관행인 '선공급후계약'을 바로잡기 위한 법안에 대해 업계 이견이 엇갈리고 있다.
대체적으로 '선공급후계약'이 콘텐츠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어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플랫폼으로서의 유료방송 사업자와 콘텐츠 제작사인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다.
최근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 등 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자의 공세에 따라 'K-콘텐츠'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콘텐츠에 대한 제작과 투자가 선행돼야 된다는 주장과 갈수록 경영이 악화되고 있는 케이블TV 사업자와 콘텐츠까지 섭렵하고자 하는 IPTV사업자의 협상력 유지를 위한 일종의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닿아 있는 것.
PP업계에서는 '콘텐츠 제값받기'라는 명분을, 유료방송사업자는 시장 경쟁을 위한 규제 완화를 내걸었으나, 모두 콘텐츠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 요소로 자리잡은 상황이라 이에 따른 조율이 어려운 상태다.
◆ 시장자율계약은 어려울까…콘텐츠 업계 어려움 '가중'
'선공급 후계약 금지법'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정필모 의원(더불어민주당)과 정희용 의원(국민의힘)이 방송법 개정안으로 이미 대표 발의한 상태다. 업계는 여야가 유사한 법안을 내놓음에 따라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는 판단이다.
정필모 의원은 방통위 가이드라인으로 유료방송사업자에게 연매출 50억원 미만의 중소PP에 대해서는 채널 계약 만료 전 차년도 계약을 완료하도록 재허가 조건을 부과하고 있음에도 선공급 후계약 관행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법에서 정하는 금지행위 유형에 '선공급 후계약'을 포함시켰다. 강제성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같은 '강제성'은 사업자간 계약 체결임을 고려했을 때 계약 자유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
조경식 과기정통부 2차관은 "계약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했으며, 김현 방통위 부위원장은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적용 사업자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는 등 논의가 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문제는 시장자율에 맡겨서는 오래된 관행을 끊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해당 법안이 치열한 논쟁을 낳는 이유이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 투자 선순환 구조를 갖기 위해서는 선계약후공급이 당연한 수순이기는 하나 구조 자체를 뒤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난제"라며 "플랫폼과 콘텐츠의 경쟁이라는 틀만 놓고 보기 보다는 콘텐츠 생태계 활성화라는 대전제에 기대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콘텐츠 제작비용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가령 드라마의 경우 지난 2013년 지상파3사 드라마는 회당 평균 제작비 3억7천만원 수준이었으나 지난 2016년 tvNN 드라마 '도깨비'의 경우 회당 제작비가 약 9억원이 이른다. 지난해 SBS '더 킹 : 영원의 군주'의 경우에는 회당 제작비가 20~25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플랫폼으로부터 콘텐츠 제작사들이 회수 또는 투자 받는 비용은 제작 원가의 3분의 1 수준이라는 것이 PP업계의 지적이다. 지난해 방통위 재산상황공표집에 따르면 종편4사를 포함하고 홈쇼핑을 제외한 전체PP의 제작 투자비는 2조4천749억원이지만 플랫폼으로부터 벌어들인 프로그램 사용료는 33.4%인 8천279억원에 그친다. 이같은 콘텐츠 투자 회수는 차기 제작으로 이어지면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
PP업계 관계자는 "협찬, 광고 없이는 이익을 내기는 커녕 제작비도 못 뽑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선 국내 플랫폼 사업자들이 전향적으로 콘텐츠 투자 비율 개선에 나서야 한다"라며, "방송사는 투자재원의 안정적 확보가 어려운 구조에서 공격적 투자에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 케이블TV, 줄어드는 협상력…형평성 맞춰줘야
유료방송업계 역시 선공급후계약에는 공감하나 대형PP와 플랫폼 간 힘의 불균형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케이블TV의 경우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방통위에 따르면 2008년에는 PP의 적정프로그램사용료 지급 보장을 위해 케이블TV 수신료매출액의 25%를 프로그램사용료로 지급하도록 했으나, 지난해에는 이 비율이 55.6%로 높아졌다.
특히 전체 유료방송 사업자가 전체 PP(146개 법인)에게 지급하는 전체 프로그램사용료 중 상위 5개(CJ ENM, MBC Plus, KBS N, SBS 미디어넷, SPOTV)는 전체의 47.6%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CJ ENM이 가져가는 비중이 29.2%에 달한다.
케이블TV 업계 관계자는 "가입자가 빠지고 있는 상황이라 규모를 막론하고 케이블TV업계는 대형PP를 상대할 협상력이 줄어들고 있다"고 호소했다. 게다가 대형PP들의 경우 선호도가 높은 채널을 이용해 인지도와 시청률이 낮은 자사 채널을 연계해 계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그간 협상에서 우위에 있었던 케이블TV였으나 급속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방송 시장의 여파로 인해 협상력에 열위에 놓일 수 있다는 위기감에 따른 판단이다.
이에 따라 유료방송 업계는 최소한의 협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채널 변경・해지에 대한 규제 완화와 1회로 제한된 채널 개편 횟수를 풀어줘야 한다고 요청했다.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는 "대개 협상력이 큰 대형PP 먼저 계약을 진행한 다음 중소PP와 진행되는데, 재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대형PP가 요구하는 수준의 사용료를 지급하면 중소PP에 지급할 비용이 줄어들게 된다"며 "이러면 향후 중소PP가 퇴출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전망했다.
이어 "채널 개편을 2회로 늘리면 중소PP 먼저 협상하고 채널을 정한 다음 대형PP와 협상 결과에 따라 추가로 정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케이블TV 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케이블TV는 IPTV와 달리 주파수를 통해 방송 신호를 전송하기 때문에 넣을 수 있는 채널 수에 한계가 있다. 현재는 거의 다 포화상태"라며 "채널 개편 제한은 신규 론칭한 경쟁력 있는 채널을 추가하는 등에 걸림돌로 작용, 유료방송 업계를 하향 평준화 시킨다"고 분석했다.
◆ 신중한 정부, 균형 있는 대안 모색 기대
국회에 따르면 정부는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해당 법안이 논의된 지난달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조기열 과방위 수석전문위원은 "유료방송사업자가 콘텐츠사업자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보유하고 있다는 전제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며, "일부 지상파방송사업자나 종편PP, 복수채널사용사업자(MPP) 중 CJ ENM과 같은 경우에는 유료방송사업자보다 높은 협상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경식 2차관은 "협상력이 강한 사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행사할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며 "이는 유료방송 사업자에게만 책임을 한정하는 것으로 형평성 논란의 소지가 있어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잘못된 관행을 개선한다는 취지에는 찬성하면서도 자칫 양극화가 심화하고 부익부 빈익빈으로 갈 수 있어 반대의 입장을 보였다. IPTV보다는 소규모 케이블TV(개별SO)가 약자의 입장이 돼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
박 의원은 "플랫폼사업자가 PP들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전제하고 있지만 거꾸로 되는 반대 사례들도 있다"고 말했다.
/심지혜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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