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산에 대한 삼성 일가의 상속 내용이 드디어 공개됐다. 상속 내용에는 이 회장의 보유 주식 분할을 제외한 미술품 기증·사재출연 등 수조원대의 사회공헌 계획과 상속세 납부 방안 등이 총망라됐다. 삼성 일가의 상속세는 12조원 이상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28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장 유족들은 사상 최고 수준의 상속세를 납부하는 동시에 의료 공헌과 미술품 기증 등의 사회 환원을 실천하기로 했다. 삼성 일가가 상속세와 사회 환원에 내놓기로 한 이 회장 유산은 전체 6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선 이 회장 유산은 주식과 미술품, 부동산, 현금성 자산 등을 합해 총 25조원대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족들이 내야하는 주식 상속세만 해도 약 11조366억원으로, 지난해 12월 확정됐다. 이는 주식 상속에 따른 상속세 납부 사례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여기에 부동산 및 미술품 등 기타 자산에 따른 상속세까지 더하면 총 12조원 이상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는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역대 최고 수준의 상속세 납부액"이라며 "지난해 우리 정부의 상속세 세입 규모의 3~4배 수준에 달하는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삼성 총수 일가의 상속세가 이처럼 많은 것은 우리나라 상속세율이 다른 나라보다 워낙 높아서다. 현행법에 따르면 상속 재산이 30억원을 넘을 경우 상속세 최고세율이 50%가 적용된다. 주식은 고인이 대기업 최대 주주이거나 최대 주주의 가족 등 특수관계인이면 세율이 60%로 높아진다.
만약 1조원의 기업 가치를 지닌 회사를 운영했던 창업자가 한국에서 기업을 물려줄 경우 자녀가 갖게 되는 기업 가치가 4천억 원으로 줄어든다는 얘기다. 오너 3세가 물려 받게 되면 1천600억원으로 쪼그라든다. 결국 두 번의 상속 과정을 거치면 1조원 중 84%가 정부의 몫이 되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거액의 상속세 부담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방해 받고 있다"며 "이미 생전에 소득세 등으로 과세한 재산에 대해 또 다시 상속세로 과세하는 것은 이중과세라고 보는 시각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홍라희 전 관장,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도 상속세 폭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회장이 남긴 삼성 주식은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 2억4천927만3천200주(지분율 4.18%) ▲삼성전자 우선주 61만9천900주(0.08%) ▲ 삼성SDS 9천701주(0.01%) ▲삼성물산 542만5천733주(2.88%) ▲삼성생명 4천151만9천180주(20.76%) 등이다. 또 이 부회장이 남긴 2조~3조원에 달하는 미술품, 한남동 자택 및 용인 에버랜드 부지 등을 합하면 유산은 25조원대다.
홍 전 관장과 자녀들이 내야 하는 상속세는 12조원 이상으로, 금액이 큰 만큼 유족들은 5년간 분할 납부하는 '연부연납' 방식을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즉 신고한 세액의 6분의 1을 먼저 낸 후 나머지 6분의 5를 5년간 나눠 내는 방식이다.
상속세액을 13조원으로 가정 시 2조2천억원은 이달 말까지 내고, 10조8천억원을 5년간 5회에 걸쳐 분할 납부할 것으로 보인다. 5년간 분할납부에 따라 납세자가 내야 할 이자는 시중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 이자율을 고려해 기획재정부령으로 정한다.
상속세 재원은 삼성 일가의 개인 재산과 주식 배당금, 일부 부족한 금액은 금융권으로부터 직접 대출을 받거나 주식·부동산·배당금 등을 담보로 은행의 '납세보증서' 또는 보증보험사의 '납세보증보험증권'을 받아 국세청에 제출할 것으로 관측된다.
유족들의 상속세 납부를 앞두고 삼성전자가 지난 16일 특별배당을 포함해 총 13조1천243억원의 배당금을 주주들에게 지급한 것도 이같은 영향이 컸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은 1천258억원, 홍 전 관장은 1천620억원의 배당금을 받았고, 이 회장 명의의 삼성전자 배당금 7천462억원도 모두 상속인에게 돌아갔다.
일각에선 앞으로 그룹 지배력 행사에 문제가 없는 범위만큼 이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SDS 등 일부 계열사의 주식을 매각하는 카드도 유족들이 꺼내 들 것으로 관측했다. 삼성SDS 지분을 팔아도 삼성전자(22.58%)와 삼성물산(17.8%)을 통해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재계 관계자는 "상속세 재원은 삼성 일가의 개인 재산과 주식 배당금이 우선될 것이 유력하다"며 "이 부회장이 아버지로부터 넘겨 받은 그룹 주력 계열사의 지분을 앞세워 개인 신용대출과 보유 주식을 담보로 잡은 주식담보대출을 동시에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유족들은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올해 4월부터 5년간 6차례에 걸쳐 상속세를 분납할 계획"이라며 "유족들은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다만 이날 유언장 유무와 유족들이 이 회장 보유 주식을 어떻게 분할할 지에 대해서는 상세히 공개되지 않았다. 삼성 측은 유언장 유무와 관련해 "가족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안이라 알 수 없다"는 답변만 내놨다.
일단 유언장이 없다면 법정 비율대로 상속이 진행되면서 홍 전 관장이 33.33% 지분 상속으로 삼성전자, 삼성생명의 개인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이에 따라 홍 전 관장이 삼성 지배구조의 중심에 올라서게 된다.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은 각각 22.22%씩 상속받게 된다.
재계에선 이 회장이 최대주주였던 삼성생명의 지분이 이 부회장에게 얼마나 배분될 지가 관심사다. 삼성생명이 '이재용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뤄진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에 있어서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다른 가족들이 지분 상당수를 이 부회장에게 몰아줄 가능성이 높다"며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지분을 상당 부분 상속 받는 대신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이 나머지 주식과 부동산을 상속 받을 수도 있을 듯 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유족들이 이 회장의 삼성전자 주식을 이 부회장에 넘겼을 수도 있다"며 "삼성생명 지분은 가족 4명이 나눠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지난 26일 삼성 일가가 금융당국에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을 분할하지 않고 공동 보유하겠다고 신고한 것을 두고 상속인 간 분할 협의가 끝나지 않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내놨다. 당초 유족들은 원래 각자 받을 주식 몫을 구체적으로 나눈 뒤 재주주 변경 승인을 신청하려 했으나, 분할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자 공유주주로서 대주주 승인 신청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향후 삼성 일가가 재산 분할에 관한 합의를 마치고 구체적인 지분 비율을 확정해 서류를 보완 제출하면 이 내용을 심사에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변경 승인 신청서를 받으면 60일 이내에 승인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다만 흠결이 있으면 보완을 요구할 수 있고 보완 기간은 심사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재계 관계자는 "상속인들의 주식 배분 구도가 상속세 신고 후에도 상당기간 결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상속인 사이에 분할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일단 법정 상속 비율이나 잠정 합의대로 상속하는 것으로 신고하고 이후 분할 비율을 결정해 국세청에 수정 신고를 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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