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빨리 사업 정리해서 해외로 나가는 게 답일 듯 합니다. 이건 기업을 죽여 직장을 다 잃게 하고 경제 파탄으로 몰고 가려는 일 아닙니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경제계의 간곡한 호소를 뿌리치고 지난 9일 국회에 계류됐던 반(反) 기업 법안들을 줄줄이 통과시키자 기업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이 법안들로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며 결국 국가 경제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여러 번 경고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국회 본회의 통과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기업들이 반대해 왔던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 이른바 '기업규제3법(공정경제3법)'과 ▲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개정안 등 노동권 강화를 골자로 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위한 3법 등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모두 통과됐다. 당초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부쳤던 안들이 대부분 반영된 것으로, 기업들의 의견은 거의 묵살됐다.
경제계는 그 동안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중 상법의 감사위원 분리선임 및 3%룰과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공정거래법의 전속고발권 폐지와 내부거래 규제 강화 등 4가지 조항에 대해 반대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여당은 이 같은 경제계의 의견을 무시하고 법안 처리를 강행했다. 경제계 의견을 들어주던 야당인 국민의힘 마저 '기업규제 3법'과 'ILO 3법'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신청하지 않아 사실상 여당의 입법 독주 체제로 진행됐다.
이에 기업들은 경영 활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됐다. 재계에선 해외 투기 자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됐고, 이해 관계자의 무분별한 소송으로 기업 이미지 실추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분석했다. 또 지주사 의무 지분 비율 확대로 지배구조가 흔들리게 됐으며, 영업기밀 및 핵심 기술도 해외 경쟁사에 그대로 노출될 상황에 놓였다는 주장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규제 3법과 토동관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기업과 우리 경제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법률임에도 경제적 영향분석 등 심도 있는 논의 없이 졸속 입법함으로써 향후 우리 경제와 기업 경영에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경총 관계자는 "그간 모든 경영계가 공동으로 끈질기게 요청한 사항들이 거의 반영되지 않아 다시 한 번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며 "기업들이 어느 정도 시간을 가지고 대비할 수 있도록 시행 시기를 1년 이상 유예하고, 보완장치를 이번 임시국회에서 입법해 줄 것을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3%룰'에 감사 선임 기업들 '걱정'…"경영권 위협 가중"
기업규제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면서 앞으로는 상장회사가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게 되면 감사위원 중 반드시 1명은 분리 선출해야 하는 것이 의무화됐다. 또 최대주주의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다만 정부안에서는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의 경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합산 3%까지 의결권을 제한했지만, 개인별 3%로 최종 수정됐다. 그 동안은 주총에서 이사를 일괄 선임한 뒤 이 중 감사위원을 선출해 왔다.
이에 대해 학계 관계자는 "일각에서 감사위원 1명을 분리선임하는 게 무슨 그리 큰 문제냐고 주장하지만, 이는 기업 실제를 모르는 이야기"라며 "감사위원은 감사 역할도 하지만 이사로서 기업의 중대한 의사결정과 사업전략을 세우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외부 투기세력을 대변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감사위원으로 선임되면 기술 유출은 물론 기업 경영에 중대한 결정을 늦추거나 왜곡시킬 수 있다"며 "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된 것도 결국 주주권 및 재산권 침해를 발생시킬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경제계는 앞으로 지난 2003년 4월 SK그룹을 공격한 뉴질랜드계 자산운용사인 소버린자산운용과 같은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관측했다. 당시 소버린은 SK 지분을 14.9% 매집해 최대주주에 오른 후 보유 지분을 자회사 5개에 약 3%씩 분산시켜 이사회 진입을 시도했었다. 이듬해 주총에선 주주제안을 통해 사외이사 후보 5명을 추천했지만 이사 선임 단계에서 SK그룹 우호지분에 밀려 부결된 바 있다.
경제계 관계자는 "당시 이사 선임 절차를 거치지 않고 상법 개정안처럼 감사위원 분리선임과 '개별 3%룰'이 있었다면 소버린이 추천한 인사가 감사위원으로 선임됐을 것"이라며 "현행법상 5% 미만의 지분은 보유 시 공시 의무가 없어 외국계 펀드가 지분을 3% 이하로 분할 보유할 경우에는 회사에서 이를 사전에 인지하기도 어려워 기업들로선 난감한 상태"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감사위원 선임을 위한 의결권 행사에서 비록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에 대해 개별 3%를 인정키로 했지만, 외국계 펀드나 경쟁세력들이 지분 쪼개기 등으로 20% 이상 의결권을 확보 가능한 상황에서는 기업들의 방어권은 사실상 무력화되는 수준"이라며 "당장 내년 초부터 신규 감사위원 선임을 앞둔 기업들은 당혹감과 함께 어떻게 대응할 지 조차 모를 정도로 대혼란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다중대표소송제 신설…"과도한 경영간섭 초래할 것"
상법 개정안의 통과로 자회사의 임원이 손해를 입힌 경우 모회사 주주가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한 다중대표소송제도 신설됐다. 현재 상법은 주주가 경영을 제대로 안 한 이사를 상대로 손해 책임을 묻는 대표 소송을 할 수 있지만, 일반 주주가 해당 자회사 이사에게 책임을 물을 마땅한 법적 수단은 마련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비상장회사의 경우 1%, 상장회사의 경우 0.5% 이상 모은 주주는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주주대표 소송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에 경제계는 소송 원고 자격 요건이 다소 강화됐다고는 하지만 '묻지마 소송'이 빈번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경제계 관계자는 "다중대표소송제는 비상장회사를 통해 미래 신기술·신사업 투자를 하는 데 있어 과도한 경영간섭을 초래할 수 있다"며 "모회사 소액주주를 통한 자회사에 대한 소송이 남발될 소지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익 편취 규제 대상 범위 확대…"경쟁력 확보 저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확대하고, 지주사의 계열사 지분 비율을 상향 조정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도 이번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기업들의 시름이 더해졌다.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공정거래법이 제정된 이후 40년 만으로, 내년 말부터 본격 시행된다.
당초 정부안에 포함된 '전속고발권 폐지'는 결국 없던 일로 됐다. 여당이 내부 논의 과정에서 이를 폐지할 시 검찰의 권한이 강화된다는 이유에서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으로도 검찰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있어야만 담합 수사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담합에 대한 과징금은 2배로 늘어났다.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규제 대상도 확대됐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는 기업이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이번 일로 사익편취 규제대상 기업 기준은 현행 총수일가 지분 상장 30%·비상장 20% 이상에서 상장·비상장사 모두 20%로 일원화된다. 이들 기업이 지분 50%를 넘게 보유한 자회사도 포함된다.
이에 따라 현행 210개인 규제 대상 기업은 내년 연말부터 598개로 늘어나게 된다. 총수일가가 지분 29.9%를 보유한 현대글로비스를 비롯해 LG, KCC건설, 코리아오토글라스, 태영건설 등 5개사의 경우 내년 말부터 공정위의 규제망에 오르게 됐다.
또 지주회사의 자·손자회사의 지분율 요건은 상장사의 경우 20%→30%, 비상장사의 경우 40%→50%로 상향 조정된다. 대기업집단 공익법인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상장사는 특수관계인 합산 15%까지만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사익 편취 규제 대상 기업 범위 확대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시대에 대응한 합리적 수준의 경쟁력 확보를 저해한다"며 "의무지분율 상향은 자회사를 설립하고 편입할 시 필요한 소요 자금이 대폭 증가하게 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계는 대기업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보유가 가능해진 점에 대해선 일단 환영의 뜻을 표했다. 다만 일반지주회사가 보유한 CVC의 부채비율을 200%로 제한한 점 등에 대해선 정책의 실효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또 펀드 조성 시 총수일가, 계열회사 중 금융회사의 출자는 받을 수 없고, 총수일가 관련 기업과 계열회사, 대기업집단에도 투자할 수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CVC 투자금을 회수하는 '엑시트' 단계에서 지분·채권을 총수일가나 지주회사 체제 밖 계열사에 매각하지 못 하게 하는 조항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추가됐다. CVC 관련 행위 금지조항을 어겼을 경우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형벌 규정도 이번에 새로 마련됐다.
경제계 관계자는 "그간 엄격하게 금지되던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허용한 점에 대해선 환영한다"면서도 "정책의 취지가 어려움에 놓여있는 벤처기업의 생존과 미래지향적 벤처창업에 도움을 주려는 것인데 CVC가 제한적으로 허용됨으로써 당초 기대했던 정책 효과를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해고자가 임금 협상?…노조 편향적 입법에 '부글부글'
이번 일로 민간·공공부문의 노동조합 가입 제한이 내년부터 풀리게 됐다. 기업의 해고자·실업자들도 임금협상과 파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줌으로써 사실상 해당 기업과 전혀 무관한 사람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전문 시위꾼들이 개입해 노조 활동이 정치적으로 변질되거나 파업 등의 쟁의 행위가 더 과격해질 가능성이 다분해진 셈이다. 여기에 노조가 쟁의행위 중 사업장의 주요 시설을 점거하더라도 처벌할 근거가 없어졌다.
또 국가나 지자체는 앞으로 다양한 교섭방식을 노동관계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게 된다. 단체교섭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도 신설됐다. 친노동 기조를 유지하는 정부의 움직임을 볼 때 대기업 노조 세력에 더 힘이 실려 노사 관계의 균형은 무너질 가능성이 커졌다.
단체협약 유효기간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겠다고 했지만, 결국 3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노사합의로 정하는 것으로 후퇴했다. 사실상 노조가 요구하면 회사는 언제든지 응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경제계가 요구했던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 금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직접 형사처벌 폐지 등 사측의 대항권 관련 조항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고, 선택근로제 단위기간을 연구개발 업무에 한해 현행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린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평가다.
이에 불만을 품은 경제계는 이번 노조법 개정안 통과가 노사간 힘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후진적인 노사관계를 더욱 악화시켜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개정 법률이 시행되기 전에 대체 근로 허용 등 사용자 방어권을 허용함으로써 보완책 마련에 정부가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총 관계자는 "국회 심의 과정에서 경영계 요청사항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노동계의 요구사항만 반영돼 당초의 정부 제출 법안보다도 더욱 편향된 내용으로 통과됐다"며 "노동계 요구만을 일방적으로 반영한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우리나라의 대립적·갈등적 노사관계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의 노사관계 부담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이라며 "이번 임시국회에서라도 경영계 핵심 요구사항들이 최소한 일정 부분이라도 반영될 수 있도록 보완입법을 추진해줄 것을 다시 한 번 간곡히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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