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양창균 기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아베 총리가 2일 우리 국무회의 격인 각료회의에서 우리나라를 안보상 수출 우대국 지위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내리면서다. 지난달 4일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 개시에 이은 2차 경제 보복이다. 아베 총리의 추가 경제 도발로 한일 간 갈등은 악화 일로를 걷게 됐다.
이날 정부와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각료회의 안건에 오른 우리나라의 백색국가 제외를 골자로 하는 ‘수출무역관리령’(정령·한국 시행령에 해당)을 의결했다. 지난 2003년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우리나라를 백색 국가로 지정한 일본 정부가 이번 정령 개정으로 16년 만에 제외하는 조치를 내린 것이다. 이번 추가 경제보복의 여파로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수출하는 1천여 개 품목이 발이 묶이게 됐다.
이 같은 상황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1일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고시했다. 같은 달 12일 일본 정부 측은 한일 전략물자 수출통제 담당 실무자 간 양자 협의에서 우리나라를 안보상 우호 국가인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수출무역관리령 시행령 개정과 의견수렴(7월 24일)을 거쳐 각료회의에서 최종 결정했다. 일본 정부는 공포를 통해 이달 28일부터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효력을 적용할 방침이다.
일본이 내세운 근거에는 모순투성이다. 애초 아베 총리는 지난해 10월 대법원 강제징용 일본 기업 배상 판결을 빌미로 삼았다. 한술 더 떠 아베 총리는 대법원 강제징용 일본기업 배상 판결 조치를 북한의 제재와 연계하는 해괴한 논리적 비약을 꺼냈다.
지난달 7일 BS후지TV에 출연한 아베 총리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국제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명확하게 됐다”며 “무역관리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대법원의 강제징용 일본기업 배상판결 조치를 물고 늘어졌다. 그러더니 전략물자가 무기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어 우리나라의 수출 규제에 나섰다고 말을 바꿨다.
아베 총리가 어느 때보다 날 선 발톱을 드러내고 ‘한국 때리기’에 공세적으로 나온 배경을 살펴봤다. 이번 경제보복의 발단이 된 대법원 강제징용 일본기업 배상판결에서 아베의 역사인식이 묻어난다. 우리나라의 일제 식민지배가 불법성이 없다는 게 아베 총리의 기본 인식이 깔려있다. 한일합방은 유효하게 체결됐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무효가 됐다는 논리다.
그러면서 지난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경제협력협정(청구권협정) 1조에서 5억 달러(무상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를 우리나라에 제공하는 것으로 청구권 문제는 해결됐다는 주장이다. 당시 우리나라에 제공한 5억달러 자금 성격을 두고도 일본 정부는 배상이란 표현 대신 독립축하금으로 매도하고 있다. 이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식민지배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우익의 태도와 궤를 같이한다.
일본 제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는 일본 우익의 상징이다. ‘대동아기(大東亞旗)’로 일컫는 욱일기는 우리나라와 중국, 동남아국가 등을 유린할 때 앞에 펄럭였던 전범기다.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하켄크로이츠를 연상케 하는 상징물인 셈이다. 이런 전범기는 아베 집권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14일 아베 총리는 일본 사이타마 현 육상자위대 아사카 훈련장을 찾아 욱일기를 든 자위대를 사열했다. 이 시기는 지난해 10월 10∼14일 서귀포시 ‘민군복합관광미항’(제주해군기지)에서 개최되는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 우리 군의 반대로 일본 해상 자위대 군함이 욱일기를 달고 참가하려던 일이 무산된 직후다.
아베 총리의 야욕은 다른 곳에서도 읽힌다. 지난 6월 28일 일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정상회의 기념촬영 배경에서다. 당시 기념촬영 장소는 오사카성으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처로 쓰던 곳이다. 지난 1592년 조선에 왜병을 파병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침략자’(히데요시)가 쌓아올린 성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강행한 것. 오사카성이 임진왜란이란 침략전쟁으로 역사적 고통의 불을 지핀 장소인 만큼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촬영에 응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아베 총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은 일본 우익의 결집을 통한 헌법개정이다. 우리나라를 상대로 한 공세 수위를 최대치로 끌어올려, 헌법개정 달성이란 야욕을 실현하고 싶은 의지의 발로다.
헌법개정의 핵심은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 제9조를 고치는 게 목표다. 이 과정에서 아베 총리는 우리나라를 정치적으로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에서 문재인 정부가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정면돌파에 나선 배경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담겨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일본 우익의 경우 우리나라를 한수 아래로 평가했지만, 성장세가 일본 산업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왔다는 위기의식의 반작용이다.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세계 전자산업 주요국 생산동향 분석’ 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가 일본을 제치고 세계 3위 전자산업 생산국으로 도약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 전자산업 생산액은 1천711억100만달러로 집계됐다. 세계 전자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8%다. 중국(7천172억6600달러·37.2%), 미국(2천454만2200만달러·12.6%)에 세계 3위 규모다. 일본은 이보다 낮은 1천194억700만달러(6.2%)에 그쳤다.
재계 관계자는 “아베 총리가 우리나라를 상대로 무차별 경제보복에 나선 궁극적인 배경에는 과거 일제식민지의 합법화를 이루면서 군사대국으로 가기 위한 의도가 다분하다”며 “뿐만 아니라 최근 수년 사이 우리나라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일본 경제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된 점도 작용한 듯하다”고 진단했다.
양창균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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