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1. 지난 4일 저녁. 삿포로식 양갈비를 판매하는 이태원의 한 식당 안에는 사케와 일본산 맥주를 즐기는 이들로 내부가 붐볐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식탁에는 '간바레오또상', '준마이' 등 사케와 '삿포로', '아사히' 등 일본 맥주가 놓여져 있었다.
#2. 5일 오후. 서울 상수역 인근에서 홍익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거리에 초밥집부터 일본식 선술집(이자카야), 라멘집 등이 다양하게 들어서 있는 곳. 곳곳에는 한국인지, 일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일본어 간판을 앞세운 가게들이 눈에 띄었고, 한 가게는 일본의 대표 명소를 간판명으로 차용한 곳도 있었다.
최근 한국과 일본의 외교 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가 더해지자 일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여행과 일본 제품 구매를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불안감을 느낀 유통업계는 사태 장기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일각에선 이미 일본 제품과 문화가 한국 소비생활에 깊이 관여된 만큼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일본 브랜드가 가장 강세를 나타내는 부문은 패션·생활용품 업계다. 경기 불황으로 대부분의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유니클로'는 나홀로 독주를 이어가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유니클로는 지난해(2017년 9월~2018년 8월 기준) 1조3천732억 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 1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7.2% 늘어난 2천630억 원을 기록했다. 유니클로는 2015년 처음으로 매출 1조 원을 돌파한 후 지난해까지 꾸준히 매출 1조 원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무인양품 역시 국내 생활용품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2014년 480억 원이었던 국내 매출액은 지난해 약 3배 증가한 1천378억 원으로 훌쩍 뛰었다. 국내 패션업체들의 매출 증가세가 한 자릿수에 그친 것과는 대조적이다.
데상트코리아도 다양한 스포츠 브랜드를 앞세워 업계에서 입지를 확실히 굳히고 있다. 데상트코리아는 스포츠 의류 데상트를 비롯해 르꼬끄스포르티브, 먼싱웨어, 르꼬끄골프 등을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2001년 국내 진출 이후 16년 연속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7천269억 원이다.
일본 기업에 매년 수백억 원의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는 노스페이스도 아웃도어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며 매년 좋은 실적을 기록 중이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9.3% 증가한 4천651억 원, 영업이익은 111.9% 급증한 509억 원을 기록했다.
노스페이스는 국내 기업인 영원아웃도어가 라이선스 브랜드로 전개하고 있으며, 상표권에 대한 로열티는 모두 일본 골드윈이 가져가고 있다. 영원아웃도어는 노스페이스의 아시아 독점 판매권을 갖고 있는 일본 기업 골드윈과 영원무역이 당초 '골드윈 코리아'로 세운 합작법인으로, 지난 2013년 현재 사명으로 변경됐다.
영원아웃도어는 일본 골드윈에 상표권 로열티 비용으로 매년 순매출의 5%선을 지불하고 있고, 일본 골드윈이 지분율 41%로 2대 주주인 만큼 매년 수백억 원의 배당금도 지급하고 있다.
일본 신발 편집 매장 브랜드인 ABC마트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7% 성장한 5천114억 원을 기록했다. 국내 1위 신발 편집 매장인 금강제화 '레스모아'의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보다 3.5%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일본산 주류도 국내 시장에서 매년 판매량이 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맥주 수입금액은 7천830만 달러로, 전년 대비 9.6% 증가했다. 5년 전에 3천321만 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97%나 늘었다. 일본 맥주 중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브랜드는 아사히, 산토리, 삿포로, 기린 등이다.
거리마다 일식집이 늘어나면서 일본 전통주인 사케도 강세다. 국내 일본 음식점 수는 2013년 7천466곳에서 2017년 1만1천714곳으로 57% 늘었다. 이에 따라 국내 사케 수입량도 지난 2014년 1천260만 달러였지만, 지난해 1천988만 달러까지 늘었다. 5년새 약 50%나 증가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일본 여행자 수는 최근 2년새 훌쩍 늘었다. 일본을 방문한 한국 관광객은 2016년 509만 명에서 지난해 754만 명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젊은층이 일본 현지에서 다양한 브랜드와 음식 등을 경험한 후 한국에서도 이를 찾으며 소비를 이끌고 있다"며 "이들을 겨냥해 일본 음식점과 패션, 주류 등이 국내에서 점차 다양하게 소개되면서 관련 매출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단체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일본 문화가 이미 국내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만큼 전체 시장에 영향을 주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 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정치·사회적 이슈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불매운동을 벌인 적이 많지만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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