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허인혜 기자] 최대 90% 이상의 채무를 면제해주는 채무자 지원 제도가 이르면 6월 도입을 앞두면서 도덕적 해이 논란에도 불이 붙었다.
금융당국은 개인 차주들의 도덕적 해이가 우려만큼 심각하지 않고, 정책적으로도 도덕적 해이를 막을 안전망을 마련했다고 답했다. 금융업계는 선의의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는 한편 금융 신용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대책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취약층 빚 탕감 정책 발표…1천500만원 이하 소액대출 대폭 면제
18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개인채무자 지원제도는 ▲연체 전~연체 30일 ▲연체 90일~상각 전 ▲상각 후 ▲상환불능 등의 네 가지 상황으로 구분된다.
연체위기자가 신용등급 하락을 맞기 직전의 ‘골든타임’을 살린다. 6개월 이내 실업자, 무급휴직자, 폐업자, 3개월 이상 입원치료를 요하는 질환자, 대출당시에 비해 소득의 현저한 감소로 구제 필요성이 인정되는 다중채무자는 반년 간 빚 상환 기간을 미룰 수 있다. 연체 '주홍글씨'가 새겨져 신용등급이 급락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목표다.
이미 빚을 진 채무자들은 경제여건을 감안해 원금을 현행보다 더 감면해 준다.
상환능력이 없는 취약채무자를 대상으로 6~8월 중 특별감면 프로그램을 우선 도입한다. 대상자는 3개월 이상 연체한 기초수급자(생계·의료)·장애인연금 수령자와 70세 이상 고령자다. 10년 이상 1천500만원 이하 채무를 장기연체한 저소득층도 포함한다. 상각채권은 원금 70~90%를, 미상각채권은 30%를 감면할 방침이다.
연체 90일 시점에서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거나 10년 장기분할 상환이 가능하다. 연체 90일 이상 채무자 중 금융회사가 아직 채권을 상각하지 않은 사람도 최대 30%까지 원금 감면을 허용하기로 했다. 상각된 채무의 원금 감면율은 30∼60%에서 20∼70%로 확대한다.
다중채무, 한계차주로 빚을 갚기 어려운 취약채무자들은 일정기간 동안 원금의 50% 이상을 성실히 납부하면 남은 빚이 사라진다. 1천500만원 이하 장기연체자가 해당된다.
금융당국은 기존 개인워크아웃제도를 개선하는 채무감면율 상향 및 감면율 산정체계 개편 등 과제는 3~4월중 시행할 예정이다. 신속지원제도와 특별감면 프로그램은 6~8월 중 시행하고 미상각채무 원금감면은 기재부와 협의 후 시행시점을 정한다.
◆금융위 "비양심적 채무자 우려할 수준 아냐…안전망 세웠다"
탕감 비율과 대상 범위가 넓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도덕적 해이 논란도 고개를 들었다.
가계부채와 채무자 정책에 대한 상반된 견해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숙제다. 최종구 위원장은 지난 14일 열린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상환가능성이 낮은 차주에게 돈을 빌려주어야 하는지, 상환능력을 상실한 채무자에게 빚을 감면해 줘야 하는지, 부채에 대한 규율강화가 불법사금융의 확대를 가져오는지가 (가계부채 정책에 대한) 주요 쟁점"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장치를 최대한 마련했다는 반응이다. 최준우 금융위 금융소비자국장은 사전 브리핑에서 "서민 대책을 만들 때는 악용 가능성 등 도덕적 해이 부분을 많이 고민해서 만든다. 이번에도 곳곳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여러 요건들을 두고 정책 설계를 했다"고 답했다.
금융당국은 반복적인 지원을 막기 위해 이전 신청일로부터 최소 1년이 지나야 새로운 채무자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상환유예를 받는 기간 동안 신규 채무가 3백만원을 초과하는 등 채무 탕감효과가 없는 채무자의 개인워크아웃 신청은 허가하지 않을 예정이다.
'양심 없는 채무자'가 우려에 비해 많지 않다는 자신감도 비쳤다. 채무를 갚지 않으려 버티다가 장기 채무자가 되기 보다는 스스로 빚을 갚으려고 하다 호미로 막을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설명이다.
최준우 국장은 "신용회복위원회의 채무조정 제도를 운영해본 바에 의하면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채무자들 평균이 연체 30개월 이상의 장기 채무자들로, 대부분 본인 스스로 빚을 책임지려다가 고통의 기간을 겪고 상담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최종구 위원장은 "과감한 채무조정제도가 이행되는 이유는 전략적인 파산 등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현실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며 "오히려 스스로 채무를 해결하려다가 장기연체의 늪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부연했다.
◆금융업계 "선의의 피해자 생긴다…신용산업 뿌리 흔드는 정책"
금융사의 고충에 대해서는 시장과 당국의 입장이 엇갈린다.
시중은행 등 금융업계에서는 선의의 소비자가 피해를 입게 된다고 우려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중 자금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빚 탕감 정책으로 상환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판단하면 금리 인상으로 리스크를 관리할 수밖에 없다"며 "빚을 잘 갚아나가던 선의의 소비자가 고금리 피해를 입게 되는 셈"이라고 전했다.
빚 탕감이 반복되면 금융권의 신용산업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신용대출의 기본 조건은 신용인데 빚 탕감 정책이 지속되면 '빚을 지면 갚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이 침해 받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신복위 개인·프리 워크아웃 신청자는 지난해 10만6천808명으로 2010년 이후 정점을 찍었다.
한편 금융당국은 장기적 관점에서 건전성을 높인다고 답했다. 최준우 국장은 "진짜 위기에 몰려 연체가 길어진 서민들의 경우 아예 갚지를 못하게 되는 경우들이 많다"며 "부담을 적절한 수준에서 감면을 해주면 상환하면서 재기할 수 있는 발판 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전체적으로 보면 금융회사들도 이걸 통해서 이익을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인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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