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지난해 말 '경영비리' 혐의에서 실형을 면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와 연루된 '뇌물 공여'혐의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재판부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과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후원금·출연금 등을 무죄로 판단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과 달리,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낸 70억원을 '제3자 뇌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롯데그룹 측은 갑작스런 오너 부재 상황에 놓이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특히 롯데는 중국 사업 부진과 내수침체 등으로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오너 리스크'가 발생해 그동안 '뉴롯데'를 표방하며 의욕적으로 나섰던 지주사 체제 전환과 10조원 규모의 해외 투자 계획이 모두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또 신동빈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롯데면세점 잠실 월드타워점은 특허권 취소 위기에 직면했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1심 선고공판에서 '뇌물 공여 혐의'와 관련해 신동빈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 추징금 70억원의 실형을 선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신동빈 회장 사이에 면세점과 관련한 부정한 청탁이 존재했고,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낸 70억원이 제3자 뇌물에 속한다고 판단해서다.
신동빈 회장은 면세점 사업권 재승인 등 경영 현안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70억원을 낸 것이 치명타를 입혔다다. 앞서 미르·K스포츠 재단에 45억원을 출연했던 롯데는 다른 기업과 달리 최 씨 측으로부터 2차 지원을 요구받았고,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지기 직전 추가 출연했던 70억원을 돌려받은 바 있다. 신 회장은 지난해 12월 14일 뇌물공여 혐의 결심공판에서 최후진술을 통해 "부디 억울한 점이 없도록 잘 살펴달라"는 말과 함께 '무죄'를 주장한 바 있다.
신동빈 회장 측은 그동안 면세점 추가 특허 추진과 관련해 명시적 청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롯데와 관련된 내용이 적히지 않은 '안종범 수첩'을 증거로 제출했으며, "신 회장이 박 전 대통령 면담 전 면세점 청탁을 했다"는 안 전 수석의 진술 역시 일관성이 없어 신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면세점 특허 수 확대 정책과 관련한 내용이 담긴 대통령 면담자료 역시 롯데그룹이 주도해 작성한 것이 아닌, 관세청에서 만들어 기획재정부에 보내 청와대로 전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재단 출연금 부분과 관련해 뇌물로 인정 받지 않았고 '묵시적 청탁'으로도 인정되지 않았던 만큼 이번 재판에서 '무죄'를 받을 것이란 기대도 내비쳤다.
그러나 이날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에 대해 '재벌 봐주기'라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신동빈 회장 측이 주장한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낸 70억원 모두를 뇌물공여 혐의로 보고 신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신 회장과 단독 면담할 당시 면세점 특허 취득 문제가 핵심 현안이라는 점을 잘 알고 K스포츠재단에 추가 지원을 요구했다"며 "이는 둘 사이에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충분히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낸 70억원은 박 전 대통령의 강요에 따른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 부분에 있어선 제3자 뇌물로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신동빈 실형 선고…롯데 '아연실색'
지난해 12월 '경영비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후 그룹 현안을 살피던 롯데그룹은 이날 예상치 않은 신동빈 회장의 실형 선고와 법정구속 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앞서 진행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에서 재단 출연금과 관련해 무죄가 선고된 만큼 신 회장 역시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 측이 1심에서 신동빈 회장이 무죄를 받을 것으로 보고 재판 이후 신 회장의 일정을 평창 동계올림픽 중심으로 짜놓고 있었다"며 "신 회장이 대한스키협회 회장인 만큼 평창 올림픽 홍보에 나설 계획만 세웠지 '오너 부재' 사태가 있을 것으로 상상도 못한 눈치"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롯데 측은 신 회장의 평창 관련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전 임직원이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롯데 내부 임직원들은 신 회장의 법정구속 소식에 충격을 받고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롯데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당장 입장을 밝히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너 부재' 롯데, '비상경영체제' 돌입할까
롯데는 이날 신 회장의 실형 선고로 갑작스러운 오너 부재 위기에 빠지면서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펼치던 사업들도 모두 올스톱 위기에 놓였다. 특히 10조원에 달하는 롯데의 해외 투자계획도 실현 가능성은 낮아졌다.
롯데는 인도네시아에 40억달러를 투자하는 대규모 유화단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유럽 생산거점에도 2억달러의 설비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엑시올 사와 함께 루이지애나주에 건설 중인 셰일가스 기반의 에탄크레커 사업에 35억달러를 투자한다.
인도와 미얀마에서는 식품 부문에 2억5천만달러를 추가 투자할 계획이고 베트남에는 2조원을 투자해 투티엠 지구에 2021년까지 복합몰 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또 하노이에는 3천300억원가량을 투자해 2020년에 복합몰인 '롯데몰 하노이'를 오픈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모든 사업은 신 회장의 글로벌 인맥을 바탕으로 진행됐던 만큼 이번 일로 차질을 빚게 됐다.
또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인 호텔롯데 상장을 통한 지주사 전환 완성은 무기한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신 회장의 한일 롯데 '원톱' 지위도 흔들리게 됐다. 일본 기업 관례상 실형이 선고되고 법정구속되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28.1%를 보유한 광윤사(光潤社)의 최대주주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일본 롯데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 움직임을 재개해 경영권 분쟁이 재점화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재계에서는 롯데가 지난 1월 부회장으로 승진한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를 중심으로 총수 부재 상황에 따른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황 부회장이 신 회장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롯데의 모든 사업 현안에서 신 회장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가 갑작스러운 총수 부재 위기에 직면한 만큼 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비상경영체제 돌입은 불가피해 보인다"며 "'투명 경영 실현'을 통한 '뉴롯데' 체제 구축에 힘쓰던 신 회장의 부재로 롯데의 모든 사업이 치명타를 입게 됐다"고 밝혔다.
장유미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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