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기자] 도시바가 진퇴양난에 빠졌다. 웨스턴디지털(WD)의 끝없는 방해에 결국 한미일연합 이외에 교섭협상에 나설 것이라 명시했다. 사실상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매각은 원점으로 회귀했다.
도시바는 지난 10일 도쿄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메모리 사업부 매각을 위한 협상 대상자를 물색하고 있다고 공식화했다. 지난 6월 21일 우선협상대상자로 한미일연합을 선택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진행됐던 매각 협상이, 결과적으로 물거품이 됐다.
쓰나카와 사토시 도시바 사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메모리 사업의 외부 자본 도입은 채무 초과 방지를 목표로 한다. 한미일연합과는 (합의점을 도출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 (한미일연합) 이외에 교섭 대상자와도 협상한다. 가급적 빨리 계약을 체결하고 매각 완료를 향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도시바, 딜브레이커 WD와의 끝없는 '밀당'
도시바가 이미 우선협상자로 선정하고 곧바로 최종매각계약을 맺을 것으로 기대됐던 한미일연합 이외에 다른 협상자를 찾겠다는 발언은, 그간 진행돼왔던 WD의 방해가 일부 통한 것으로 분석된다. WD는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매각의 주된 딜브레이커의 역할을 감행해왔다.
현재 도시바는 메모리 사업부 매각을 두고 WD와 미국과 일본 지역에서 총 5건의 소송으로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양사는 분쟁 해결을 위한 물밑 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쉽사리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시바가 지난 3월 이사회를 통해 메모리 사업부 분사를 의결하고 예비입찰자를 모집하면서부터 WD는 독점교섭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WD가 인수한 샌디스크가 도시바와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고 일본 욧카이치 공장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는 근거를 들어, 타 협상자들에게 메모리 사업부를 넘겨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도시바는 즉각 반발했다. WD가 메모리 사업부 매각을 계속해서 방해한다면 법적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엄포를 놨다. 도시바는 지난 5월 3일 WD로 보내는 서한을 통해 WD가 매모리 사업부 매각을 지속적으로 방해한다면 공동 운영 중인 욧카이치 공장에서 WD가 시설과 네트워크를 사용치 못하게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WD도 물러서지 않았다. WD는 "도시바의 추가 계약 위반을 금지하는 취지의 금지 명령 구제를 요구하겠다"라며, 국제상업회의소(ICC)에 중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도시바는 계획대로 2차 예비입찰을 단행하고 우선협상자를 선정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WD의 맹공에 도시바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WD는 도시바가 6월 15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일 이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법원에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매각 금지를 요청했다.
스티브 밀리건 WD CEO는 "도시바가 WD의 계약상 권리를 이해하지 않고 있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결국 도시바는 15일보다 몇 일 지난 21일에서야 한미일연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택했다.
WD는 이번에도 강력 반발했다. WD는 공식성명서를 통해 "도시바는 샌디스크의 허가와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두 개의 법적 절차 등 양쪽 모두를 계속해서 무시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상황이 절정에 치닫자 애타는 곳은 도시바였다. 매각 과정에서 반독점 심사와 기타 여러 난관을 헤쳐가야하기 때문에 최총매각계약을 서둘러야 했다. 내년 3월 매각완료까지 남은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다.
미국 법원에서는 도시바가 매모리 사업부 매각 완료 2주 전에 WD에 이 사실을 통보하는 중재안을 제안하고 손을 털었다. 매각 금지 요청 여부는 자연스럽게 ICC로 넘어갔다. 통상적으로 ICC의 중재는 대략 1년에서 2년 가까이 소요돼 도시바로써는 위기상황이나 진배 없었다. 더구나 WD 정보접근차단도 미국 법원의 명령으로 일부 풀리면서 협상 카드가 소진돼 버리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도시바는 WD와의 협상을 위해 욧카이치 공장에 신설하는 6동에 대한 생산설비를 단독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도시바는 "6동에 도입하는 생산설비에 대해 샌디스크와 협의했지만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당초 설비투자금액인 1천800억엔(한화 약 1조8천393억원)에서 150엑엔을 증액한 1천950억엔(한화 약 1조9천926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도시바는 지난 1일 채무초과 상태를 해소치 못한 결과 도쿄 증시 상장 68년만에 2부로 강등됐다. 더 이상의 메모리 사업부 매각 절차를 늦출 수 없게 됐다.
◆ 한미일연합과의 협상을 위한 전략적 발언일수도
도시바가 한미일연합 이외에 교섭대상자들과 협상에 나서겠다고 발표하면서 유력한 기업들로 분쟁 중인 WD와 폭스콘이 거론되고 있다. 두 기업은 우선협상대상자가 결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한 바 있다.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는 지난 6월 21일 도시바 이사회를 통해 결정됐다. 당시 도시바는 "일본산업혁신기구, 베인캐피탈, 인본정책투자은행 컨소시엄을 도시바 메모리 주식회사 매각에 관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하는 것을 결정했음을 알린다"라고 밝혔다.
도시바는 지난 2006년 인수한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에서 발생한 사업손실 7천126억엔(한화 약 7조1천250억원)을 메우기 위해 지난 1월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반조체 부문을 분사하고 지분 20%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예상 손실 규모가 확대되고 인수자들이 나서지 않자 50% 또는 100% 주식을 매각해 경영권을 넘겨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29일 1차 예비입찰자로 SK하이닉스와 WD 등 10여곳이 참여했다. 초반 인수전에는 SK하이닉스와 대만 홍하이그룹(폭스콘), 미국 브로드컴의 삼파전으로 진행됐다. 당시 일본 정부나 기업에서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의 매각금액은 약 2조엔(한화 약 20조800억원)으로 한 기업이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에 따라 각 업체들은 인수를 위한 이합집산에 돌입했다. 브로드컴은 미국 사모펀드인 실버레이크와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SK하이닉스도 베인캐피탈 등과 힙을 합쳤다. 홍하이그룹은 무려 3조엔이라는 인수금액을 제시하기도 했다.
2차 예비입찰부터는 일본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일본산업혁신기구를 중심으로 미일연합이 결성되면서, 브로드컴 연합과 2파전 양산으로 변화됐다. 이 과정에서 미일연합이 부족한 인수금액을 메우기 위해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연합에 손을 내밀면서 극적으로 한미일연합이 결성됐다.
도시바는 결국 6월 12일 한미일연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택했다. 도시바는 "각 매수자 후보에게서 받은 제안에 대해, 도시바 메모리 주식회사의 기업가치, 국외의 기술유출 우려, 국내 고용확보, 존속의 확실성 등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해 위 컨소시엄 제안이 가장 우위성이 높다고 평가했다"고 선택의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도시바가 한미일연합과의 합의점을 도출해내지 못했다고 하면서 기회는 다시 이전 예비입찰자들에게 돌아간 모양세다.
우선협상자대상 선정 이후 궈 타이밍 홍하이그룹 회장은 경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입찰은 공개적이고 공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궈 타이밍 회장은 "삼성전자가 도시바의 가장 큰 경쟁자다. 일본 정부 관료는 폭스콘을 적으로 대우해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다만, 일본은 이전부터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가 중국과 대만 기업에 매각될 경우 외국주식 및 외국무역법(외환법)에 따라 매각을 중단할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또 다른 유력 후보자는 WD다. 다만 WD가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여러 큰 난관을 넘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샌디스크 인수로 인해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까지 가져올 수 있는 여력이 남아있는지에 대한 여부다. 반독점 규제를 넘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 도시바가 WD를 선택하더라도 내년 3월 매각완료가 가능할지에 대한 확답을 내리기 쉽지 않다.
한편, 일각에서는 도시바가 또 다른 교섭대상자를 찾기 보다는 한미일연합과의 합의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전략적으로 이러한 발언을 했을 수 있다고 지목했다.
김문기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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