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권서아·황세웅 기자] 삼성전자 노사가 정부 중재 아래 사후조정 절차에 돌입한다. 오는 21일부터 예정된 18일간 총파업을 약 2주 앞두고 노사가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기로 하면서, 이번 교섭이 총파업 여부를 가를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는 8일 “사후조정 절차를 통한 협상 재개에 나선다”고 밝혔다. 지난 3월27일 집중교섭 결렬 후 약 40일 만이다.

노조에 따르면 이날 오후 경기지방고용노동청 김도형 청장과의 면담 이후 노사정 미팅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노동부는 정부 차원의 교섭 지원 의사를 밝히고 사후조정 절차를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는 "구성원들이 만족할만한 수준의 협상을 하지 못한다면 당장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면서도 “정부 측의 적극적인 의지와 거듭된 요청을 무겁게 받아들여 내부 검토를 거쳐 사후조정 절차에 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경영진 잇단 메시지…총파업 전 재협상 국면
이번 재협상은 최근 정부와 회사 안팎에서 잇따라 대화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급물살을 탄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삼성전자 노사 갈등과 관련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김영환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반도체 산업과 국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노사 대화 필요성을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내부에서도 기류 변화가 감지됐다.
전영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과 노태문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전날 사내 메시지를 통해 “회사는 열린 자세로 협의를 이어가며 임직원이 공감할 수 있는 방향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일에는 신제윤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도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려 “진정성 있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라며 노사 대화를 촉구했다.
노조 측도 기류 변화를 감지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장은 지난 7일 아이뉴스24에 “어느 정도의 유감 표명은 있었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총파업 리스크가 커지자 정부와 삼성전자 경영진 모두 협상 재개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가 이번 사안을 민감하게 보는 배경에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는 한국 전체 수출의 약 20% 안팎을 차지하는 최대 수출 품목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공급망 핵심 기업으로 꼽힌다.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한국 경상수지도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경상수지는 373억2710만달러 흑자로 집계됐다. 상품수지 흑자는 350억7000만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56.9% 증가했다. 반도체 수출이 149.8% 급증하며 전체 수출 증가를 견인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중심 AI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생산 차질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과 국가 수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핵심 쟁점은 ‘성과급 10% vs 15%’…그 중간으로 절충?
사후조정은 오는 11~12일 이틀간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집중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노사 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쟁점은 성과급 제도 개편이다.
회사 측은 지난 3월 27일 마지막 집중교섭에서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고, 업계 1위 달성 시 경쟁사보다 높은 수준의 보상을 제공하겠다는 안을 제시했다.
노조 측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사용하고 지급 상한도 폐지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또 해당 내용을 새로운 성과급 제도로 명문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후조정 과정에서 회사가 노조 요구를 어느 수준까지 수용할지가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영업이익의 15% 재원 요구를 일부 받아들이거나, 노사가 각각 한발씩 물러서 12~13% 수준에서 절충점을 찾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향후 메모리 업황 호조와 HBM 중심 실적 개선 흐름을 고려하면 회사가 일부 양보에 나설 여지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성과급 제도 자체를 명문화하는 문제는 회사 측 부담이 큰 사안으로 꼽힌다. 업황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성과급 체계는 2000년대 초반 구축돼 여러 차례 수정을 거듭해 온 만큼 단기간 내 개편은 어렵다는 게 회사 측 주장이었다.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경영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이라고도 했다.
전자 업계 관계자는 "노조가 요구하는 수준의 보상을 제공하되 그 기간을 영구적이지 않은 형태로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귀띔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하는 기간을 10년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영구적인 명문화보다 기간을 제한하는 쪽에서 타협안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결렬 시 18일 총파업…“하루 1조 손실” 우려
만약 이번 사후조정이 결렬될 경우 노조는 예정대로 오는 21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총 18일간 총파업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노조 측은 앞서 “총파업 시 회사 측에 수십조원 규모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최악의 경우 하루 수천억원에서 1조원 안팎 생산 차질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반도체 업황 회복 국면에서 대규모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삼성전자뿐 아니라 글로벌 AI 반도체 공급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정부까지 중재에 나선 만큼 노사 모두 총파업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편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오후 정규장 마감 이후 노사의 재협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간외거래에서 강세를 나타냈다.
/박지은 기자([email protected]),권서아 기자([email protected]),황세웅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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