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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고 싶은, 아름다운 숫자를 찾아서 [지금은 과학]


김재경 KAIST 교수 “인류에 도움되는 숫자는 매력적”

김재경 교수는 “수학은 세상을 설명하는 언어이고 강력한 도구”라고 설명했다. [사진=KAIST]
김재경 교수는 “수학은 세상을 설명하는 언어이고 강력한 도구”라고 설명했다. [사진=KAIST]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수학이 못 하는 게 있을까.

수학은 과학 발전의 기초를 닦았다. 인류 역사의 발전을 이끈 기초언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0~9’라는 10가지 단순한 ‘숫자 언어’는 물리, 화학, 우주과학, 양자, 인공지능의 기본이 되고 있다.

지구촌 70억 인구는 특정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숫자는 만국 공통언어이다.

‘수학이 못 하는 게 있을까’라는 질문에 김재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수리과학과 교수이자 기초과학연구원(IBS) 수리및계산과학연구단 의생명수학그룹 CI는 “글쎄? 수학이 못 하는 게 있을 수도 있다”며 “다만 여러 과학적 결과물을 설명하고 표현하는데 수학이란 언어는 매우 중요한 도구”라고 말했다.

“수학은 Everything은 아닌 것 같다”

김 교수는 “어떤 과학자가 실험하든, 의사가 수술하든 그것을 표현하는데 국어 등의 특정 언어로 할 수도 있는데 숫자로 표현하면 그건 데이터가 된다”며 “수학을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언어이고 강력한 도구”라고 설명했다.

‘수학이 Everything(모든 것)은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이다. 다만 과학자 등이 그들의 어떤 성과를 수학으로 표현하는 순간 뭔가 좀 더 값어치가 생기는 ‘무엇’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숫자라는 ‘몸짓’에 지나지 않던 수학이 여러 과학적 성과물을 표현함으로써 인류에 값어치 있는 ‘무엇’이 된다는 것이다.

수학은 그동안 여러 과학 분야의 ‘번역자’ 역할을 했고 기본을 이루는 토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물리, 화학, 생물학, 양자과학 등에서 단순히 실험만 하는 게 아니라 수학이란 언어로 번역하는 순간 법칙이 되는 것”이라며 “(경제, 사회과학 심지어 인문학에서도)수학이라는 언어가 붙으면 뭔가 좀 달라지고, 정리가 되는 느낌이지 않을까”라고 되물었다.

김 교수는 수학의 매력으로 ‘명징’과 ‘객관’을 꼽았다. 그는 공중파 등 여러 방송매체에서 하는 토론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고민에 빠진다고 했다. 김 교수는 “여러 정치 토론을 들을 때마다, 1시간을 듣든 2시간을 보든 아무런 결론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며 “뭔가 결론이 나올 줄 알았는데 ‘시간만 버렸나’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정치 상황 등을 여러 변수를 통해 수치화하고 이를 데이터화 해 수학적으로 ‘명징’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없을지 고민이라고 김 교수는 웃었다.

“평가 시스템 바뀌지 않으면 수학교육 안 바뀐다”

우리나라 수학교육 문제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김 교수의 생각은 ‘명징’하다. 지금의 평가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변화는 없을 것이란 믿음이다.

김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수학을 배우는 무게가 줄어들면서 교과과정이 얇아지고 있다”며 “물론 학생들에게 부담이 되니 줄었다고 하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수학교육의 허점이 시작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예를 들었다. 100장에 이르는 한 권의 책에서 문제를 내는 것과 한 권의 책 중 앞에 10장에서만 시험을 내겠다고 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한 학기 동안 수업을 한 뒤 평가 시험은 치르기 마련이다. 평가를 하고 줄을 세워야 한다. 김 교수는 “한 권 전체가 아니라 앞에 있는 10장에서만 시험문제를 내고 평가를 통해 줄 세우기를 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김 교수의 답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어려운 문제,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나오기 마련”이라며 “우리의 일선 학교에서 수학 시험이 지금 이런 실정인데 범위는 짧은데 이상한 문제들이 많이 나오는 한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김재경 교수는 “수학은 세상을 설명하는 언어이고 강력한 도구”라고 설명했다. [사진=KAIST]
김재경 교수는 뎅기열과 기후변화, 수면 등 인류의 건강과 관련된 수학적 연구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사진=KAIST]

해법은 없을까. 지금과 같은 평가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어떤 교육 방법을 동원해도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의 평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거다. 김 교수는 “여러 대회에서 상을 받는다거나 또는 발명한다거나 이런 것을 점수화해 평가 시스템을 달리 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수학은 대학입시를 위한 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최근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며 김 교수는 반겼다.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부르는 필즈상을 2022년 수상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최근 주요 도시마다 수학문화관이란 공간이 들어서고 있다”며 “전국에 과학관이 많은 것처럼 점점 수학문화관이 지역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나는 수리생물학자이다”

김 교수는 자신을 ‘수리과학자’라는 말 대신 ‘수리생물학자’로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얼마 전 뎅기열과 기후변화에 대한 주제를 수학적으로 분석해 관련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수학모델을 이용해 ‘뎅기열과 기후변화’의 상관관계를 설명한 논문이었다.

김 교수는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를 비롯해 많은 지역이 뎅기열로 고통받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기존 관련 논문을 봤는데 기후가 뎅기열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분석한 걸 보니까 약간 빈약한 느낌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좀 더 좋은 도구(수학적 접근)를 쓰면 더 정확하고 더 분명하면서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자료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작한 게 관련 논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현재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수면, 잠이다. 현대인의 건강과 매우 밀접한 분야이다. 김 교수는 “국내 한 병원으로부터 5000여명에 이르는 수면 관련 데이터를 제공받아 분석하고, 연구하고 있다”며 “물론 표본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한참 인터뷰를 진행하다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숫자 중에 특별히 좋아하는 숫자가 있나?”

“특별히 좋아하는 숫자? 인류에게 도움되는 숫자 좋아해”

김재경 교수는 “수학은 세상을 설명하는 언어이고 강력한 도구”라고 설명했다. [사진=KAIST]
김재경 교수는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숫자로 세상을 설명하고 도움이 되는 길을 찾는 ‘수리생물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사진=KAIST]

김 교수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특별한 숫자가 아니라)숫자로만 남아 있지 않고 인류에게로 다가와 뭔가 도움이 되는, 탈바꿈하는 숫자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럭키 7’을 좋아하고 ‘죽을 4’자를 싫어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웃었다.

여기에 숫자가 주는 매력은 또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우리 연구가 제일 재미있고 가치 있다고 느낄 때는 그쪽 분야(물리, 의학, 화학 등)에서는 진짜, 진짜 어려웠는데 이걸 이곳(수학)으로 가져왔더니 그냥 조금 어려운 문제로 정리될 때, 그때가 제일 좋다”고 강조했다.

진짜, 진짜 어려운 문제가 수학을 통해 명시적으로 바뀌고, 정리가 되고, 명확해지면서 훨씬 쉬워진다는 느낌이 들 때, 그게 수학의 매력이고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표현했다.

김 교수는 자신도 연구하는 과정에서 실수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문제는 ‘의도된 거짓’으로 연구 결과를 내놓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김 교수는 “데이터를 가지고 장난 질을 하겠다고 의도적으로 접근하면 충분히 가능한 게 현실”이라며 “우리는 논문을 발표하기 전에 피어 리뷰(Peer Review, 외부전문가 교차 사전 점검)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숫자로 장난 질을 친다고 해도 나중에는 그 허점이 드러나게 돼 있고 숫자는 기본적으로 거짓을 전달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은 복이자 독”

인공지능 시대가 발전하면서 김 교수도 위기감을 느낄 정도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최근 인공지능 수준이 ‘이걸 쓰지 않으면 도태되겠구나 할 정도’로 엄청나다”며 “수학자나 컴퓨터 과학자 입장에서는 인공지능이 복이기도 하고 독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지금은 어떤 깊이 있는 분석을 위해 김 교수 등에게 의뢰하고 공동 연구를 하는 것이 기본인데 앞으로 인공지능이 더 발전했을 때 김 교수는 “우리와 하던 공동 연구를 인공지능에 맡기는 시대도 충분히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수면과 관련해 2023년 웹사이트를 통해 간단히 수면 질환 위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알고리즘 ‘슬립스(SLEEPS‧SimpLe quEstionnairE Predicting Sleep disorders)’를 공개한 바 있다. 슬립-매스(sleep-math)닷컴을 통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지난해에는 전염병 확산을 예측하는 더 정확한 수학 공식을 내놓기도 했다. 웨어러블 기기를 이용해 자신의 다음 날 기분을 미리 알 수 있는 시스템도 선보였다.

앞으로 김 교수는 어떤 연구를 이어가고 싶을까. 김 교수는 “(수학을 통해)우리가 만든 ‘무엇’이 국민에게 혜택을 주면 좋겠다”며 “수면 질환을 진단해 주는 연구를 시작한 것도 사실 그런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모든 국민이 자신이 만든 것을 통해 혜택을 받고, 그 기본 바탕에는 수학이 있다고 한다면 “일상생활에서 내가 쓰고 있는 게 진짜 수학이고, 그렇게 됐을 때 학생들이 많이 하는 고민인 ‘수학이 정말 쓸모 있나요?’라는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고 되물었다.

/정종오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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