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근기자] 2009년으로 돌아가보자. 은색 사과 그림이 그려진 까만 핸드폰보다 더 화질이 좋은 스마트폰들은 많았다. 고성능 카메라와 고음질 스피커를 갖춘 출중한 국내외 모델들이 수두룩했다.
애플 아이폰이 블랙베리, 옴니아 같은 다른 스마트폰보다 놀라웠던 점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사용자 환경(UI) 때문이다. 인터넷은 기본이고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수만개의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수 있었다. 고성능 CPU와 각종 센서들은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정말 컴퓨터가 따로 없었다.
소비자들의 선택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순식간에 시중의 아이폰은 동이 났다. 아이폰의 놀라운 UI와 그로 인한 사용자 경험(UX) 자체가 시장을 달군 지원금, 각종 경품과 체험행사, 섹시한 CF스타 등 그 어떤 마케팅 요소보다 효과적이었다. 많은 전문가들과 학자들은 소비자들을 유인한 당시 아이폰의 막강한 힘을 '혁신'이라고 불렀다.
UHD가 방송산업의 차세대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4년 UHD 채널이 하나둘 출범한 가운데 가전업체들은 발빠르게 UHD TV 판매에 나섰다. 지상파 3사가 수조원 규모의 UHD 콘텐츠 투자를 공언한 가운데 정부는 내년 2월부터 세계 최초로 UHD 지상파 본방송을 시작할 계획이다.
2017년 2월이라고 했다. 불과 2개월 남짓한 시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대로 들떠 있을까. 정작 UHD에 대한 개념도 생소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저 HD보다 화질이 좋은 대신 상당히 비싼 TV 정도가 일반 소비자들의 인식이다.
이미 100만대가량 팔려나간 수백만원짜리 UHD TV들은 갑작스런 표준기술의 변경 결과 UHD 방송수신이 안 된다고 한다. 새 표준기술을 적용한 안테나는 여전히 TV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 방송사들의 투자는 고사하고 당장 UHD로 방송할 콘텐츠마저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전반적으로 UHD 인프라는 부실한 상황에서 시시각각 본방 스케줄은 다가오고 있다. 결국 준비부족 상태 속도전의 결과다. 그리고 사업자도 방송사도 정부도 정작 중요한 것을 외면했다. UHD가 소비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는지 말이다.
방송도 스마트폰 이상으로 혁신을 지속해왔다. 사람들은 흑백 화면이 컬러로 바뀌는, 브라운관 TV가 디지털HD의 선명한 화질로 무장한 LCD TV의 얇은 몸체로 바뀌는 광경을 지켜봤다.
어쩌면 '본방 사수' 자체는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부와 방송사, 사업자들이 진짜 원하는 부분은 새롭게 열리는 거대한 시장일 것이다. 한국이라는 IT 선진국이 차세대 방송시장을 주도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속도전식의 계획보다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UHD만의 UI, 그로 인한 UX를 먼저 고민하고 알리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소비자 입장에서 지금의 HD방송과 비교해 무엇이 좋아지는지, 정부와 사업자들이 이 질문을 피해가지 말기 바란다.
조석근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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