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무기자]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기자 간담회를 열고 국무총리직을 수락한 이유에 대해 "국정을 하루도 멈출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 내정자는 이같은 자신의 진심을 최선을 다해 야권에 설명하고 이후에도 야당이 자신을 수용하지 않으면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김 내정자는 3일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명받는 것이 얼마나 큰 비난과 비판을 받는지 모르느냐고 물었다.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국정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그대로 있기가 힘들었다"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김 내정자는 책임총리제에서의 자신의 권한에 대해 경제와 사회정책과 관련해 국정을 통할하고, 헌법에 규정된 국무위원 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내정자는 "국무총리가 되면 헌법에 규정된 국무총리로서의 권한을 100% 행사할 것"이라며 "헌법상 총리의 권한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국정을 통할한다고 돼 있는데 저는 경제사회 정책 전반에 걸쳐 총리의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명 전인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은 제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이부분은 저에게 맡겨주셨으면 좋겠다"고 했고, 대통령은 이에 긍정적으로 답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완전한 이원집정부제는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형식적으로 대통령이 완전히 결재권도 행사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며 "입법권에 대통령의 서명이 있어야 하고 각료를 임명할 때도 임명권자로 서명해야 한다. 완전한 이원집정부제의 법률적 권한까지 갖는 총리가 될 수는 없다"고 한계를 인정했다.
지명과정에서 청와대가 국회와 합의하지 않아 야당이 국회 인준 과정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청와대 시스템이 일시 무너져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저 역시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기회가 닿는 대로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밖에 없는 마음, 국정이 단 하루도 멈춰서는 안된다는 점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수밖에 없다"며 "그러고도 저를 받아주지 않으면 당연히 그것을 두말없이 수용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그는 "국무총리가 되면 개각을 포함해 모든 것을 국회 및 여야 정당과 협의해나가겠다"며 "대통령이 국민적 비판에 직면한 상황에서 국회와 여야 정당은 국정 동력의 원천이 된다. 상설적인 협의기구와 협의채널을 만들어 여야 모두로부터 동력을 공급받겠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사회와의 소통도 크게 강화하겠다"며 "이를 위해 국무총리의 조직과 기능을 개편하는 것도 생각하겠다"고 했다.
◆"대통령 직접 수사 가능, 대통령 탈당도 건의할 수 있다"
최순실 사태 이후 관심이 쏠리고 있는 대통령의 직접 수사에는 "대통령을 포함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면서 "재직 중 불소추 권한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들이 있지만 저는 수사와 조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국가 원수인 만큼 그 절차나 방법에 있어서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탈당 문제에 대해서도 "헌법적 권한 행사하는 국무총리가 여야 협치 구도 만들면 대통령 당적 보유 문제가 크게 완화될 것"이라며 "그러나 대통령의 당적 보유가 지속적으로 국정의 발목을 잡을 경우 국무총리로서 대통령 탈당을 건의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와 함께 그동안 현 정부와 입장이 달랐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드 등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저는 국정교과서라는 것이 과연 우리 사회에 합당하고 지속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과 총리가 주요 정책에 대한 입장이 다른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는 협치 구도 아니면 어떤 구도로도 우리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며 "우뤼가 큰 뜻을 가지고 큰 그림을 그리다보면 서로가 양보하는 협치의 정신이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과 총리 사이에 의견이 다소 다르다 해도 여야의 협치 구도를 만드는 큰 그림 속에서 서로 용해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참여정부 당시 논문 표절 협의로 교육부총리에서 낙마한 것에 대해 "표절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정했다.
그는 "오죽했으면 제 스스로 당시 청문회를 요청했다. 당시 청문회에 나온 자료들을 다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그것은 날짜를 잘못 확인하고 제 박사학위 논문을 안 본 것에서 나온 오해"라고 말했다.
채송무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조성우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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