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례기자]지난 7월 15일. 네이버 라인은 미국과 일본 증시 입성에 성공, 말 그대로 화려한 축포를 쏴 올렸다. 상장 첫날 단숨에 시가총액이 10조원으로 불어나며 서비스 업체의 성공적인 해외 진출이라는 평가와 함께 신사업의 종자돈이 될 1조5천억원의 자금조달에도 성공했다.
공교롭게 같은 날 SK텔레콤에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날 과천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7개월을 끌어온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1조원짜리 딜이 결국 독과점 우려로 무산됐다. SK텔레콤은 이번 M&A를 통해 미디어 플랫폼업체 변신에 속도를 내려 했으나 원점에서 전략을 새로 짜게 생겼다.
네이버와 SK텔레콤은 우리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지만 한 쪽은 변화와 혁신을 무기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반면, 한 쪽은 규제에 갇혀 성장 절벽을 절감하면서도 그나마 돌파구 마련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네이버 라인과 같이 카카오의 카카오톡 등은 혁신적인 서비스로 평가받지만 이 탓에 통신 3사는 와이 파이 개방이나 이들 서비스가 문자나 통화를 대체하면서 이에 따른 매출 하락까지 겪고 있다.
다양한 서비스 등장으로 트래픽은 급증하고 있지만 이를 위한 망 투자 부담은 고스란히 통신사의 몫. 더욱이 데이터 사용 증가로 통신비가 늘면서 오히려 요금인하 압박만 거세지는 형국이다.
업계 관계자는 "급증하는 트래픽 중 광고로 인한 데이터 사용은 월 8천원 수준으로 추산된다"며 "이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것은 인터넷기업인데 데이터 요금 증가에 따른 비난과 요금 인하 요구는 통신사에 집중되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네이버 기업가치 28조- 통신3사 30조
국내 통신 3사는 기간통신사업자, 또는 지배적사업자 등으로 묶여 서비스나 상품 개발 및 출시에서 정부에 약관을 포함한 요금, 마케팅비 까지 각종 규제에 놓여있다. 더욱이 이들 3사는 출자총액제한 등 규제를 받고 있는 대기업 집단에 속해 있어 이에 따른 규제도 받고 있다.
반면 같은 규제를 받을 처지에 놓였던 네이버와 카카오는 인터넷 산업 혁신 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최근 공정위가 대기업 지정 기준을 자산 규모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완화, 이를 피해갈 수 있게 됐다.
현재 카카오의 자산규모는 5조원 초반, 네이버는 4조4천억원 수준이다. 이번 규정 완화로 대기업 집단 지정을 피하게 된 양사가 벗어난 규제만 출자제한 등 총 32개 법령, 78개에 달한다.
자산 규모로 보면 이들 인터넷기업은 통신 3사와 같은 대기업이라 분류 할 수 없지만, 기업가치만 보면 대기업 규제를 받는 통신업체의 위상이 무색할 정도다.
실제로 22일 종가 기준 SK텔레콤의 시가총액은 약 17조5천억원으로 주가수익비율(PER)은 11배 수준에 불과하다. 또 KT의 시총은 8조원, LG유플러스는 5조원 수준이다. 같은 날 기준 네이버의 시총이 28조, 카카오가 5조5천억원 임을 감안하면 양사 기업가치는 이미 통신 3사를 추월했다. 특히 네이버 기업가치가 30조원에 육박하는 만큼 네이버 하나를 팔면 통신 3사를 다 살수도 있는 셈이다.
◆ICT 인프라-부가가치는 세계 최고
한편으론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인터넷기업의 성장은 그 기반이 된 ICT 인프라의 연관 효과, 즉 전체 산업 등에 미치는 생산 및 고용 등을 포함한 부가가치 창출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미래창조과학부 및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를 바탕으로 다양한 서비스, 이에 따른 데이터 사용량 및 편익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전체 LTE 서비스의 평균 다운로드 속도는 117.51Mbps. 이는 유선인터넷(100Mbps급) 보다 빠르고, 북미(40.03Mbps), 아시아(33.77Mbps), 유럽(30.51Mbps) 등 해외 주요 선진국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무선인터넷 및 스마트폰 보급률, 모바일 데이터 사용량도 세계 최고다. LTE 이용자의 평균 데이터 사용량은 지난 5월 5000MB(메가바이트)를 첫 돌파했다. 휴대폰은 쇼핑이나 은행 업무를 보고, 출퇴근길에 뉴스나 음악, 드라마를 즐기고 택시를 잡거나 집안 가전까지 제어하는 생활 필수재가 됐다.
ICT 분야 부가가치도 전체산업 대비 비중이 약 10.7%로 OECD 회원국 중 최고다. ICT 고용률도 약 4.3%로 OECD 회원국 중 미국, 독일, 일본 등을 제치고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통신서비스를 통한 소비자 편익 역시 비용 대비 최대 3배에 달한다. 한국정보통신산업연구원(KICI)에 따르면 이용자가 지불하는 통신 서비스 비용은 단말기 값을 빼고 평균 4만1천여원인데 반해 이를 통해 느끼는 편익은 3배 가까운 약 11만1천758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통신기업 경쟁력은 낙제
이처럼 인프라와 산업 가치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 반해 국내 통신 3사에 대한 평가 및 기업 경쟁력은 말 그대로 낙제 수준이다.
당장 매출과 수익성은 역주행 중이다. 통신 3사의 지난해 매출은 50조원대로 최근 3년간 역성장을 보이고 있고, 영업이익 역시 지난 2011년 4조원대를 끝으로 10년 전 수준인 3조원대에 머물러 있다. 평균 영업이익률은 7% 선. 웬만한 제조업 수준에도 못 미친다. 네이버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23%대 였다.
이와 관련 지난해 3분기 기준 SK텔레콤의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익) 마진율은 30.3%로 25개 OECD 국가 1위 통신기업 중 최하위다. 미국 버라이즌(48.5%), 영국 O2(44%), 일본 NTT(43.2%)에 크게 못 미친다.
그런데도 매출 대비 설비투자(CAPEX) 비중은 16.5%로 버라이즌 등 보다 높은 12위에 랭크됐다. 삼성전자의 매출대비 설비투자 비중이 12% 선임을 감안하면 서비스 업체인데도 제조업체보다 더 많이 투자하고, 돈은 더 적게 벌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신규 가입은 이미 포화상태인데 매년 1천만명에 육박하는 번호이동으로 가입자 뺏기 경쟁에 한해 7조원이 넘는 마케팅 비용이 투입되고 있는 현재의 경쟁상황과 무관치 않다.
여기에 20% 요금할인(선택약정), 알뜰폰 등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지고 있고, 트래픽 증가 및 망 고도화에 연간 7조~8조원의 투자가 계속되면서 성장성과 수익성 모두 떨어지고 있는 것. 한 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던 이통서비스가 이제 '돈 먹는 하마' 신세가 된 셈이다.
◆ICT생태계 동반 부실 우려
정부 규제를 받는 산업의 특성상 여론을 의식한 정치권의 요금 인하 요구와 같은 리스크가 많은 점도 통신사들의 기업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최근 국정감사 시즌에 맞춘 정치권의 기본료 폐지나 요금할인 30% 확대 등 요금 인하를 압박하는 것도 그 대표 사례 중 하나다. 한정 자원인 주파수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이유로 통신서비스를 공공재로 여기는 인식 탓에 법적 근거 없이 요금 인하를 강제하는 등 규제 외 외풍에 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형국인 것.
그러나 통신 서비스는 이에 필요한 주파수 사용 등에 대가를 내고 제공하는 민간 분야로 정부는 물론 외부에서 요금 인하 등을 인위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
실제로 통신 3사는 주파수 사용에 따라 매년 매출의 1.6%를 이용대가로 부담하고, 2011년부터는 주파수 경매에 사업자별로 많게는 3조원을 투입했다. 여기에 또 전파사용료로 연간 2천500억원 상당을 내고 있다. 3사 고객 간 통화, 즉 상호접속에 따른 사용료 역시 연간 2조원 가까이를 부담하고 있다. 이 외에도 소외계층 등을 위한 이용료 지원 등에 연 4천억원 가량을 또 쓰고 있다.
오히려 네트워크 가치와 경쟁력이 날로 추락하면서 이에 대한 규제보다 정책적 지원 등 진흥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성장이 정체되고 네트워크 고도화에 실패하면 연관 산업 성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주요국이 성장 둔화에 빠진 통신 산업의 발전방안을 마련하고 5G 주도권을 잡기 위해 규제 풀기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전세계 규제기관들은 세계 규제기관포럼(IRF)에서 통신사의 설비투자를 독려하는 방향의 규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와 관련 ▲시장 경쟁활성화를 통한 소비자 혜택 ▲인프라 투자를 독려할 수 있는 환경 조성 ▲사업자간 자율적 합의 유도 및 실패시 정부 개입 ▲합리적 예측가능성에 기반한 규제정책 등이 핵심 내용이 되고 있다.
국가브랜드전략위원회 이장우 자문위원은 "5G 서비스가 시작되면 우리 삶과 라이프스타일은 상상 이상 달라질 것"이라며 "문제는 이에 필요한 투자비 마련인데, 시장포화와 매출정체, 정치권 요금인하 압박 등으로 이 같은 투자여력 확보가 어려워 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통신서비스가 주는 문화적·경제적 가치와 편익을 고려할 때 통신비도 단순 통화요금이 아니라 '디지털경제문화비' 관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영례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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