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수기자] 2010년 한·중·일 역사의 상호 연관과 비교를 통해 '통합적 지역사'로서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조망하려는 시도가 국내 학자들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었다. 2005년 첫 집필모임을 시작해 마침내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초판)를 출간한 것이다.
한·중·일 일국사 병렬을 넘어선 지역사 관점의 동아시아사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역사학계를 통틀어 획기적인 학술적 성과였다.
시기상으로는 17세기 초부터 2010년대까지, 지리적으로는 벵골만 이동(以東)에서 일본 북부와 사할린까지(국가별로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베트남·타이완·필리핀·몽골 등을 포괄)를 다뤘다.
제목의 '함께 읽는다'는 말은 한 주제에 얽힌 여러 나라·민족의 사정을 두루 살핀다는 의미와 이 책이 한국을 넘어 다른 지역민들 사이에서도 널리 읽힐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개정판)'은 초판 발행된 1·2권 책의 합본 개정판이다. 동아시아 지역사의 상호 연관과 비교가 더욱 잘 드러나도록 중국과 동남아 등 일부 내용을 보충하고, 냉전시기 자본주의 진영에서 이뤄진 '여성교육과 여성노동'에 관한 글을 추가했다.
무엇보다 개정판 출간의 가장 큰 의미는 지난 5년간 한국 사회의 상황이 달라진 점에 있다. 초판 당시에는 외려 국가주의를 넘어선 역사 서술이 당연한 전제로 여겨지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지금 동아시아를 둘러싼 갈등 상황 속에서 이를 주장하는 것은 보다 절실한 문제가 됐다.
동아시아 지역사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다각도로 연구해온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는 이 책의 초판 당시 '동아시아의 새 단계를 보여주는 획기적 성과'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서평을 남겼다.
지금까지의 역사학을 지배해온 유럽적인 문명사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원리에 입각한 역사서술을 찾기 위해서 동아시아사가 구상돼야 한다는 주장은, 종래의 틀 자체에 대한 비판의식 없이 일국사를 단순히 동아시아 지역으로 확장하는 식의 서술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으로서 정곡을 찌른 지적이다.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과제는 특히 중국 및 일본의 연구자들과 함께 이 책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획기적인 책이 왜 한국에서 먼저 나올 수 있었는지의 문제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한 희망이 절실하다. (창작과비평 2011년 여름호)여기서 마지막 문장이 눈길을 끈다. 이런 관점과 서술방식을 지닌 책이 왜 한국에서 먼저 나왔을까. 이 책은 한 가지 힌트를 준다. 바로 한국은 중국·일본·베트남과 다르게 제국이 된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다. 흔히 동아시아 역사인식의 공유를 위협하는 가장 큰 장애물로 아직도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제국시기 일본의 식민지주의와 최근 점차 부활 조짐을 보이는 중화주의를 꼽는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동아시아 담론이 전개됐고 그에 입각한 역사서술도 꾸준히 진행됐지만 제국 경험의 전통을 넘어야 하는 부담도 동시에 안고 있다. 중국은 역사상 규모 자체가 동아시아 범위를 넘는 데다가 일본보다 훨씬 더 오랜 제국 경험이 있다. 지역사 서술은 과장된 자국사의 영광스런 과거를 스스로 깎아내야 하는 자기와의 싸움이기에 힘겨울 수밖에 없고, 그런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한국은 동아시아 지역사를 서술하기에 좋은 여건을 갖춘 셈이다.
물론 한국 역시 베트남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을 비롯해, 책임져야 할 역사문제를 숱하게 안고 있다. 자국 역사에 대한 성찰과 타국 역사에 대한 공감을 자학사관이라 매도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며, 이는 역사문제를 더욱 풀기 어려운 데로 몰아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마지막 대목은 오래 곱씹어볼 만하다.
타국의 국가폭력을 비판하기는 쉬우나 동시에 그와 동일한 기준으로 평화와 민주주의 연대를 향해 자국의 그것을 성찰하기는 쉽지 않다. 역사화해에 도달하려면 자국은 피해자고 타국은 가해자라는 이분법, 타국의 국가폭력을 비판하되 자국의 그것에 대해서는 눈감는 이중기준을 직시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역사화해는 무엇보다도 자국 내부의 평화를 증진하는 자신과의 싸움, 자국 근현대사에 대한 성찰이기 때문이다.
(유용태, 박진우, 박태균 지음/창비, 2만8천원)
문영수기자 [email protected]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