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운기자]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던 주가연계증권(ELS)이 '시한폭탄'이 됐다. 손실 위험은 크지 않으면서 은행이자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려주던 효자상품이 증권업계의 뇌관이 된 것이다.
ELS는 기초자산이 투자시점의 40~60%까지 떨어지지 않으면 원금 손실이 없는 상품이다. 그럼에도 수익률은 연 4~10%까지 내면서 투자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ELS 발행규모는 77조원에 달하면서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많은 ELS들이 기초자산으로 삼았던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SCEI·H지수)가 지난해 5월 고점 대비 최근 반토막까지 폭락하면서 ELS 위기설이 불거졌다.
현재 이 홍콩 H지수를 기초로 발행된 ELS 규모는 37조원에 달한다. 금융위는 이 중에서 3조3천억원 어치의 ELS가 원금손실 구간에 달한 것으로 추산했다. 지수가 더 하락할 경우 이 규모는 훨씬 커진다. 홍콩 H지수가 6500~7500선까지 떨어진다면 6조~7조원 정도의 ELS가 손실구간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홍콩 H지수는 계속 추가 하락해 2월3일 현재 7700선까지 떨어진 상태다.
금융당국은 아직까지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는 "일부 ELS 상품이 원금손실 구간에 진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바로 투자자 손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기 전에 홍콩 증시가 회복하는 경우 투자자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현재 발행된 관련 ELS의 96.7%가 오는 2018년 이후에 만기가 도래한다. 그러나 이는 곧 앞으로 최소 2년 이내에 홍콩 증시가 지금의 두배 가까이 오르지 않으면 ELS 투자자들이 원금 손실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최근 5년간 홍콩 H지수가 저점 대비 두배 이상 오른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마냥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는 어렵다. 앞으로 2년 뒤면 금융위기 때처럼 ELS 관련 무더기 분쟁·소송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홍콩 H지수 ELS만이 문제가 아니다. 국제 원자재가격 급락으로 ELS와 구조는 비슷하며 원유나 금 등의 원자재 가격을 기초자산으로 삼았던 파생결합증권(DLS)에서는 이미 지난해부터 1천억대 이상의 손실이 현실화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 같은 ELS 등 파생상품 투자자들 상당수가 원금손실을 감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ELS 상품이 '주가가 반토막 나지 않으면 손실이 없는 안전한 상품'임을 내세워 팔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14년 자료를 보면 ELS 투자자 중 23%가 60대 이상 고령자이며, 이들의 투자금액 비중도 31%나 된다. 60대 이상 투자자들의 상당수는 퇴직금 등 노후자금을 ELS에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절대로 잃으면 안되는 돈'이다.
상품 구조와 수익률 계산이 복잡한 ELS 상품에 대해 고령의 투자자들이 제대로 위험성을 인지하고 가입했을지 의심스럽다. 또한 이들이 홍콩 증시처럼 생소한 해외 주식시장에 대해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췄는지도 의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ELS 등에 대한 대대적 점검에 나섰지만 고작 증권사 2곳에 경미한 제재를 하는 데 그쳤다. 금융회사들은 투자자들이 직접 기입한 투자성향 진단지와 투자자보호 고객확인 사인 등을 내세웠을 것이다. 투자자들에게 ELS 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했기 때문에 판매사는 책임이 없다는 변명이다.
하지만 금융회사에서 투자상품에 가입한 경험이 있는 투자자라면 대부분 창구 직원이 표시해놓은 곳에 시키는대로 기계적으로 서명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팔 때는 '손해볼 가능성이 낮다'고 팔아놓고 나중에는 '가입할 때 다 설명하지 않았느냐'며 발뺌하는 격이다.
제대로 투자상품의 위험성을 알아보지 않고 가입한 투자자에게도 책임은 있다. 결국 투자판단의 몫은 본인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한 투자자에게 상품을 판 증권사들과 이를 방치하고 처벌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책임도 가볍지는 않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형식적인 금융상품 판매 절차를 간소화한다면서 가입 시 필요한 서류와 서명 절차를 크게 줄였다. 증권사들의 면피를 위해 형식적으로 사인만 하는 절차라면 없애는 것이 낫다. 그러나 그에 앞서 금융당국은 좀더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투자자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다운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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