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는 2015년을 정리하며 롯데그룹의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동빈 회장 3부자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올해도 국내외 다방면에서 변화와 혁신 등의 키워드로 상징될 만한 몇몇 눈에 띄는 인물들이 있었으나 국가와 세대를 뛰어 넘고,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비춰볼만한 적임자를 찾기는 역시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국내 굴지 그룹에서 경영권을 놓고 싸운 아버지와 장남, 차남이 이들을 뛰어넘을 만한 올해의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 3부자를 선정한 것은 그만큼 올해가 어려운 시기였다는 현실 인식과 함께 우리나라 경제 또는 재벌의 경영과 지배구조의 민낯을 드러냈던 만큼 그룹 오너들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함께 고민하고 돌아보는 계기로 삼자는 취지에서다.
아울러 2016년에는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를 퍼뜨려 준 인물이 이 자리를 장식하기를 기대해 본다.[편집자주]
[장유미기자] 올 한 해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가장 큰 이슈는 '롯데 경영권 분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말 그대로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했던 혈투의 주인공은 안타깝게도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과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3부자다.
지난해 12월 말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자회사 3곳의 임원직에서 해임되면서 시작된 이 싸움은 올해 7월 신 전 부회장의 '쿠데타'로 본격화된 후 결국 법정공방까지 이어져 장기전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롯데그룹은 경영권을 둘러싼 오너일가의 갈등이 그대로 외부에 노출되면서 그룹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특히 '일본 기업'이라는 국적 논란에 휘말리면서 반 롯데 정서가 전국적으로 확산돼 영업에도 타격을 받았다. 또 재벌가의 진흙탕 싸움에 지친 국민들의 공분을 산 탓에 롯데 경영권 분쟁은 반 재벌 정서로까지 이어져 주요 그룹들까지 긴장시켰다.
재계에서는 이 싸움을 두고 신격호 총괄회장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경영권을 놓지 않고 후계구도를 명확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보고 있다. 실제로 신 총괄회장은 지난 10월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10년, 20년 더 일할 생각"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신 총괄회장의 건강이상설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그의 뜻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정공방 속에서 신 총괄회장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주변인들의 진술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신 총괄회장의 여동생이 직접 나서 법원에 신 총괄회장의 '성년후견인' 지정을 신청하기도 했다.
신 총괄회장의 위임장을 앞세워 자신이 롯데그룹 경영을 이끌 '적자'임을 앞세우고 있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주장도 이로 인해 힘을 잃는 모양새다. 그러나 신 총괄회장의 건강 문제를 놓고 법적 판단을 받기로 한 만큼 예단은 이르다. 신 총괄회장의 건강 문제는 한일 롯데그룹 경영권 향방의 핵심 변수로, 결과에 따라 향후 소송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날개 잃은 장자 신동주, 분쟁의 서막
지난해 12월 26일. 신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 전 부회장은 자회사인 롯데상사(사장), 롯데(부회장), 롯데아이스(이사) 등 총 3곳의 임원직에서 해임됐다. 이후 올해 1월 9일에는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직에서도 해임됐으며 롯데건설·롯데리아 등 한국 롯데 주요 계열사 등기임원 자리에서도 줄줄이 물러났다.
당초 롯데그룹은 지난해까지 일본은 장남인 신 전 부회장이, 한국은 신 회장이라는 후계구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신 전 부회장이 여러 곳에서 해임되면서 사실상 후계구도에서 밀려났다.
이후 지난 7월 15일에는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로 신 회장이 선임되며 한·일 롯데 '원톱'으로 우뚝섰다. 당시 신 회장은 "한국과 일본의 롯데사업을 모두 책임지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한편 리더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롯데家 장자의 반격…본격적인 분쟁 시작
신 전 부회장은 지난 7월 27일 신 총괄회장과 함께 일본 롯데홀딩스에 찾아가 반격을 노렸다. 신 회장을 포함한 롯데홀딩스 이사들을 대상으로 신 총괄회장의 '손가락 해임'이 있던 날이다.
신 전 부회장은 자신의 입지를 되찾기 위해 신 총괄회장을 앞세웠지만 오히려 이 일로 한국과 일본 롯데의 경영체제는 신 총괄회장에서 차남인 신 회장으로 전환됐다. 다음날 일본 롯데홀딩스가 이사회를 열어 신 총괄회장을 해임했기 때문이다. 신 총괄회장은 67년 만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으며, 이 때부터 그의 건강 이상설도 조심스레 제기됐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은 "신 전 부회장 측이 고령인 신 총괄회장을 무리하게 모시고 가 일방적으로 일본 롯데홀딩스 임원 해임을 발표했다"며 "경영권과 무관한 이들이 대표이사라는 신 총괄회장의 법적 지위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신 총괄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고 설명했다.
◆롯데家 분쟁 심화…반 롯데 정서 확산
롯데가 분쟁은 점차 임원진을 중심으로 한 친 신동빈 세력과 신 전 부회장과 친족을 중심으로 한 반 신동빈 세력으로 양분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불똥은 한국 롯데그룹으로 튀었다. 양측이 반격에 반격을 거듭하던 중 신 전 부회장이 지난 8월 초 신 총괄회장과 일본어로 대화하는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롯데는 일본 기업'이라는 국적 논란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이는 곧 롯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이어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상황이 악화되자 신 회장은 곧바로 수습에 나섰다. 지난 8월 11일 호텔롯데 상장 및 지배구조 개선 약속과 함께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들끓고 있는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를 계기로 '반 재벌' 여론도 커졌다. 총수 일가 몇 명이 거대 기업집단을 좌지우지 하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 롯데는 각 계열사 별로 영업에 타격을 받았다. 특히 면세사업은 올해 진행된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시는 결과를 낳았다.
◆'원톱' 신동빈, 롯데 개혁작업 가속
롯데일가 분쟁의 분수령이 됐던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 주주총회가 열리던 지난 8월 17일. 신 전 부회장의 온갖 방해에도 주주들은 신 회장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보이며 신 회장을 중심으로 롯데가 안정적인 경영을 추진하길 바란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날 안건은 신 회장이 대국민 사과 당시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와 경영 투명성 개선을 밝힌 것과 연관된 것들로, 승리를 거머쥔 신 회장은 '원톱'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이 때부터 신 전 부회장은 한일 양국에서 무더기 소송전에 돌입할 조짐을 보이며 장기전을 예고했다.
반면 신 회장은 이후 '반 롯데 정서' 확산을 막기 위한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8월 말에는 지배구조 변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완료하고, 9월에는 10대 그룹 총수 중 처음으로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지배구조 및 경영투명성을 개선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며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그동안 롯데는 '폐쇄적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으나 이번 일을 계기로 경영 투명성 작업에 속도를 내게 됐다. 롯데는 현재 416개의 그룹 순환출자고리를 80% 이상 해소했으며, 내년 2월을 목표로 호텔롯데 상장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 또 롯데정보통신·세븐일레븐·롯데리아 등도 상장할 예정이다. 신 회장은 호텔롯데 상장이 마무리되면 일본 롯데 상장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신 회장은 지난 4일 사장단 회의에 참석해 "호텔롯데와 롯데정보통신을 내년에 우선 상장하고 점차 기업공개 비율을 늘릴 것"이라며 "비상장사에도 사외이사를 두는 등 이사회의 투명성을 대폭 강화하겠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대안 없는' 신동주 VS '체제 강화' 신동빈
신 회장의 국감 증인 출석 후 한동안 잠잠하던 롯데 경영권 분쟁은 결국 법정 공방으로 격화됐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 10월 초 본인의 이니셜을 딴 'SDJ코퍼레이션'을 설립, "경영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다시 2차전에 돌입했다.
이 때 신 전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의 친필서명 위임장을 공개하며 한일 양국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에서는 롯데홀딩스 해임무효 소송 등 2건이, 한국에서는 롯데쇼핑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 등 5건이 진행 중이다.
이 중 첫 소송전인 '롯데쇼핑 회계장부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은 내년 1월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초 '중국 사업 1조 원 손실'을 이유로 롯데쇼핑 회계장부를 열람할 수 있게 해달라는 신 전 부회장 측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고 있어 신 회장의 우세로 점쳐지고 있다. 회계장부를 열람했음에도 그가 주장한 롯데쇼핑의 분식회계 등의 근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신 회장은 그룹 개혁 속도를 높이며 임직원들의 마음을 얻고 있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은 한국과 일본에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성과물이 없는 데다 특별한 대안도 없어 보인다"며 "한일 롯데 직원들의 신뢰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 총괄회장만을 앞세워 자신이 적자임을 주장하는 것에 설득력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분쟁 변수 '신격호 건강'…신동주 주장 '흔들'
롯데 경영권 분쟁의 가장 핵심 변수로 부각되고 있는 신 총괄회장의 건강 이상 여부는 결국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 신 총괄회장의 넷째 여동생 신정숙 씨가 지난 18일 법원에 신 총괄회장의 '성년후견인' 지정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신 씨가 신 총괄회장이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보고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후견인을 지정해 최근 진행되고 있는 경영권 분쟁을 정리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관측했다.
만약 법원이 신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신 총괄회장의 성년후견인이 지정되면 그동안 '위임장' 등을 공개하며 신 총괄회장이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신 전 부회장의 주장은 신뢰를 잃게 된다.
또 현재 신 회장과 롯데그룹을 상대로 신 전 부회장이 제기한 여러 소송에서도 신 총괄회장의 건강이 '정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않으면 신 전 부회장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실제로 지난달 26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린 '신격호 총괄회장 홀딩스 회장직 해임 무효' 소송 관련 첫 공판에서 재판장은 신 총괄회장이 소송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위임장을 제출한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재벌가 '형제의 난'…"후진적 지배구조 개선돼야"
경영권 분쟁은 롯데그룹뿐만 아니라 국내 재벌가의 후계승계 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하나의 '관행'으로 여겨질 만큼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재벌닷컴 조사에 따르면 40대 재벌그룹 중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 곳은 삼성과 현대, 두산 등 17개로 나타났다. 2곳 중 1곳에서 혈족 간 다툼을 벌인 셈이다. 또 효성과 금호는 여전히 형제 간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현대와 삼성도 장남과 후계자 간의 다툼이 치열했다. 특히 현대는 정 회장이 두 사람을 그룹 공동회장이라는 자리에 임명, 후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다. 이 탓에 후계 자리를 놓고 차남(정몽구)과 5남(정몽헌)이 정면 충돌해 결국 정몽구 회장이 자동차, 정몽준 전 의원이 중공업, 정몽헌 회장이 현대그룹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정몽헌 회장은 지난 2003년 자살하며 씁쓸한 결말을 맺었다.
재계 관계자는 "재벌기업은 우리 경제의 중추이자 나라와 국민의 지원 속에 키워진 우리 사회의 공적 자산"이라며 "소수의 지분을 가진 오너일가가 복잡한 지분구조를 이용해 우리 사회의 공적 자산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에 국민의 실망과 배신감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롯데 경영권 분쟁은 한국 재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며 "이처럼 경영권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은 적은 지분으로도 총수가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후진적인 지배구조 탓"이라고 분석했다.
장유미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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