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미기자] 1천600억 원대 횡령·배임·탈세 혐의로 기소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이 회장에게는 사실상 사형선고인 셈이다.
판결 직후 이재현 회장과 변호인단은 법정에서 10여 분 가량 자리를 뜨지 못하고 연이어 한숨만 내쉬었다. 약 2년 6개월간 이어진 재판 일정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이 회장과 CJ 측도 침통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15일 서울고법 형사12부(이원형 부장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의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벌금 252억 원을 내린 원심을 깨고 징역 2년 6월에 벌금 252억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이 벌금 252억 원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 2천500만 원을 1일로 환산해 노역에 처하기로 했다. 이 회장은 구속집행정지 기간이어서 법정구속은 면했다.
이날 법정에는 이 회장의 외삼촌인 CJ그룹 손경식 회장을 비롯해 이채욱 부회장과 그룹 임직원 및 이 회장 측 변호인이 함께 참석했다. 결과 발표 전까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던 이들은 이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자 법정에서 선 채로 이 회장을 한동안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재판부는 "이 회장의 배임죄와 관련해 이득액을 산정할 수 없어 특경법상 배임죄가 아닌 형법상 배임죄가 인정된다"며 "해외 계열사들에 대한 업무상 횡령 및 배임과 관련해 피해가 대부분 회복되거나 손해가 현실화되지 않아 피해자인 계열사들이 처벌을 원치 않았다"며 양형 사유를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회장이 대기업 총수로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개인 재산 증식 목적으로 거액의 조세포탈과 업무상 횡령, 배임 등을 저질러 회사에 손해를 가해 죄책이 무겁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대법원에서 조세포탈로 인한 특가법 위반 부분이 주된 양형요소이고 업무상 배임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다"며 "건강문제는 근본적으로 양형요소라기보다 형 집행과 관련된 문제로, 이 회장의 실형선고는 불가피하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범죄액수는 횡령 115억 원, 조세포탈 251억 원 등이다. 검찰은 지난 2013년 7월 이 회장의 횡령액이 719억 원, 배임은 392억 원, 조세포탈은 546억 원으로 보고 기소한 바 있다.
재판부는 "재벌 총수라도 법질서를 경시하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재산범죄를 저지른 경우 엄중히 처벌받게 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게 함으로써 건전한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다만 특경법상 업무상배임 부분에 대해 무죄로 판단해 유죄부분이 감축되는 점은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CJ그룹은 재상고해 대법원의 판단을 다시 받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검찰이나 변호인이 대법원에 다시 상고하더라도 파기환송심에서 결정된 형량이 뒤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 회장 측 변호인은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에 너무 당혹스럽다"며 "수용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실형이 선고돼 막막하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상고해서 대법원의 판단을 다시 받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부동산 관련 배임에 대해 대법원에서 다시 무죄를 주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자 CJ그룹은 말 그대로 패닉상태에 빠졌다. 집행유예를 내심 기대하며 인사, 사업계획 등 그룹의 모든 현안을 이 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일 이후로 맞췄지만 예상치 못한 결과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CJ그룹 관계자는 "수형생활이 불가능한 건강상태임에도 실형이 선고돼 막막하고 참담하다"며 "그룹도 경영차질 장기화에 따른 위기 상황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모든 대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횡령·배임 등 같은 혐의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까지 집행유예를 받은 상황에서 이 회장만 실형이 확정돼 이해하기 어렵다"며 "CJ는 성장이 멈춘 채로 2년 이상을 더 버텨야 하는 만큼 인사를 최소화하고 조직 안정화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회장은 1천657억원의 탈세·횡령·배임을 저지른 혐의로 지난 2013년 7월 기소됐다.
1·2심 재판부는 이 회장이 받은 혐의 중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각각 징역 4년과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일본 부동산 매입 과정에서 벌어진 일부 배임 혐의에 대한 판단이 잘못됐다고 보고 파기환송했다.
장유미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이영훈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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