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기자] SK텔레콤의 무선시장 지배력이 결합상품 시장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지배력 전이로 이용자 후생을 떨어뜨릴 수 있어 정부의 사전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서울대학교 경쟁법센터가 1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한 '이동통신시장 경쟁정책 세미나'에서는 정부가 결합상품이나 요금인가제 등으로 통신시장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무선시장 지배력, 결합상품 시장으로 전이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동통신 3사의 이윤구조가 점유율 격차에 비해 쏠림이 훨씬 심하다"며 "SK텔레콤은 이통사들의 누적초과이윤 23조 가운데 93%를 점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가입자 기준으로 SK텔레콤은 가입자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면 점유율이 훨씬 높다는 주장인 것. 이에 따라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인호 교수의 지적이다.
특히 이 교수는 결합상품 시장으로의 지배력 전이를 우려했다. 그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결합판매를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만 보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지배적사업자가 결합판매 할인을 늘리면 효율적으로 경쟁사업자를 시장에서 배제시킬 수 있고 이는 결국 소비자 후생을 떨어뜨린다는 것으로 연결된다.
특히 이인호 교수는 결합상품 할인이 착시효과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해 눈길을 끌었다. 결합할인을 염두에 두고 가격을 책정하면서 단품가격을 원래 가격보다 높게 책정했을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결합상품의 가격이 100이고 단품 2개의 가격을 120이라고 책정한다면 할인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결합상품이 없었다면 단품 2개의 합의 100이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명수 명지대 법과대학 교수는 결합상품 사전규제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SK텔레콤의 지배력이 전이될 수 있는 상황에서 사후규제만으로 이용자 불이익을 막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사전규제는 과잉규제이고 이는 무조건 좋은 규제가 아니라는 단정적 판단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이동통신 중심의 결합상품은 다른 구성상품 시장으로 지배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고 가격차별 등으로 이용자 불이익 가능성도 존재해 사후적 규제만으로 충분할 지는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박추환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도 "현재 5대3대2 구조로 고착화된 이동통신시장이 그대로 결합상품 시장으로 전이될 수 있다"며 "이동통신시장 고착화 현상이 결합시장에서 재연되지 않도록 지배력 전이를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요금인가제 무조건 폐지는 '위험'
현재 이동통신 시장에서는 요금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시장 지배적사업자인 SK텔레콤의 요금인가제 폐지 여부가 관심사다. 요금인가제란 기존과 다른 요금제를 출시하거나 요금을 인상할 때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아야 하는 제도로 황태희 성신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일부 정치권의 무조건적인 요금인가제 폐지 주장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정치권 일각과 정부는 요금경쟁 활성화의 한 방향으로 요금인가제의 폐지 내지 개선을 주장하고 있는데 요금 인가제의 목적이나 요금의 사후규제를 시행함에 있어서의 다른 제도 개선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 교수는 인가제가 ▲시장지배력 남용 혹은 소비자 이익 저해하는 요금제 차단 ▲공정경쟁, 이용자 이익관점의 요금적정성 심사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현재의 사전규제를 다소 보완하는 방식이거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거나 소비자 이익에 반하는 요금제가 나왔을때 이를 신속하고 간편하게 시정할 수 있는 사휴규제 절차를 반드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요금인하 촉진 위해 '비슷한 요금제' 출시 금지해야
주제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는 통신사들의 경쟁 촉진을 위해 일시적으로라도 '비슷한 요금제(Me-Too)' 출시를 금지하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경희대 강병민 경영대학 교수는 "요금인가제는 지배적 사업자의 요금인상을 억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일지는 몰라도 요금인하 경쟁에는 효과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업자가 공격적으로 요금을 인하한 요금제를 내놓아도 선발 사업자가 손쉽게 맞대응할 수 있다는 것. 이를 막기 위해 강 교수는 요금인하 경쟁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일시적으로라도 비슷한 요금제 출시 금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은 SK텔레콤에 대한 비대칭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안 처장은 "2위, 3위 사업자의 점유율과 영업이익이 개선돼야 공정한 경쟁, 소비자 후생을 위한 의미있는 경쟁이 더욱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다"며 "1위 사업자가 사실상 모든 이익을 독차지하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통신 당국의 차별적 규제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배력 전이 걱정해 결합상품 규제하는 것은 부당"
하지만 결합상품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배력 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가설에 불과한데 이 가설을 바탕으로 결합상품 시장을 규제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결합상품은 '끼워팔기'가 아니라 강제 요소가 없은 '결합할인판매'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 교수는 설명했다.
이날 발제 및 토론은 결합상품으로의 지배력전이 우려, SK텔레콤에 대한 요금인가제 폐지 반대 등 대체로 KT와 LG유플러스 등 후발사업자들의 주장과 유사한 내용들이었다.
오는 12일에는 서울대 공익산업법센터가 주최하는 경쟁정책 관련 토론회가 열린다. 이날은 SK텔레콤의 주장(?)과 유사한 내용들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 토론자로 참여한 미래창조과학부 김경만 통신경쟁정책과장 역시 "오늘은 2, 3위 사업자의 입장을 많이 확인할 수 있는 세미나였고 내일도 비슷한 세미나가 열리는데 그 자리에서는 1위 사업자의 입장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만 과장은 "통신 정책의 최대 목표는 품질 좋은 통신 서비스를 저렴하게 지금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조만간 여러 의견들을 모아서 관련 정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학계가 마련한 자리라지만 마치 업체들간의 '대리전' 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허준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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