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숙기자] 기업인 사면·가석방이 연말·연초 정치 쟁점으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여당인 새누리당 내에서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분출하고 있지만, 야당의 반대가 완강하다.
당초 새누리당은 기업인 사면·가석방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사면권 남용 제한'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데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으로 재벌 총수와 그 일가에 대한 민심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조현아 임팩트가 강해 당분간 경제인 사면은 힘들 것"이라고 했고,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도 "가석방을 한다고 경제가 활성화될지 판단이 안 선다"고 부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다 김무성 대표가 기업인 가석방에 힘을 싣고 나서면서 당내 기류가 바뀌었다. 기업인에 특혜를 주는 것으로 비쳐져 대통령에 부담이 되는 사면 대신 법무부 장관 결정사항인 가석방에는 찬성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신중론을 폈던 이 원내대표도 "가석방이라는 제도의 조건에 맞고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에 부합하면서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조건 속에서 정부가 협의를 요청해 온다면 야당과 협의할 수 있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급기야 29일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기업인 가석방 문제가 의제로 올랐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수렴해 입장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이 자리에서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역대 정권이 가석방을 남발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취임 후 3년 동안 한 번도 단행한 적이 없었다"며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당의 중지를 모아 야당과 협의하고 국민 대통합이라는 명제 하에 경제활력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에 가석방과 사면을 건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최고위원은 "이번 가석방에 있어 기업인 외에도 생계형 민생사범을 비롯한 모범적인 수형자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대통령 고유 권한인 사면·복권 제도는 사법권 침해 우려, 특혜 시비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행할 수밖에 없지만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이 형법에 따라 교화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라며 사면 보다 가석방에 무게를 실었다.
김 최고위원은 "기업인이 죄를 지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지만,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더 가혹한 대우를 받는다면 그 또한 잘못"이라며 "법무부 장관이 수감생활, 잔여 형기 등을 고려해 법 취지에 맞게 결정해 달라"고 촉구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일각에서도 기업인 가석방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2.8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 박지원 의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고위 공직자든 기업인이든 가석방은 평등하게 해야 한다. 기업인을 우대하는 것도 나쁘지만 불이익을 주는 것도 나쁘다"며 "정해진 형량의 70~80%를 살면 (가석방을) 해주는데 그 사람들은 왜 안 해주느냐. '재벌 편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지적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인 이석현 국회부의장 역시 "법에 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라면 기업인이라고 해서 가석방에서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론은 '기업인 가석방 반대'다. 기업인 가석방은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경제 활성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특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박수현 대변인은 KBS 라디오에서 "재벌 총수 석방이 경제 살리기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 근거도 없이 막연하게 말하는 것은 국민 기만 행위"라며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사면권 행사에 대해 엄격하게 하겠다고 공약한 취지가 가석방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여야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결국 칼자루는 법무부 장관이 쥐게 될 공산이 크다. 기업인 가석방을 촉구하고 있는 새누리당도 '법무부 장관의 결정'을 연일 언급하고 있고, 청와대 역시 "기업인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의 고유 권한"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윤미숙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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