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수기자] '시드마이어의 문명'은 악마의 게임으로 명성이 높다. 잠깐 즐겼는데 날이 샜다는 둥, '한 턴만 더'를 거듭하다 결국 엔딩까지 봤다는 둥 이 게임의 중독성을 토대로 한 유머도 인터넷상에 널리 퍼질 정도다.
악마의게임 문명을 국내 게임사 엑스엘게임즈(대표 송재경)가 온라인 버전으로 개발 중이다. 석기시대부터 첨단 미래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인류 문명을 발전시켜 나가는 시뮬레이션 게임 문명을 어떻게 온라인화할지 적잖은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다.
그 결과 문명온라인은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사상 최초로 엔딩이 있는 '세션제'를 도입해 눈길을 끈다. 시대별로 서로 다른 그래픽 연출과 기술력을 토대로 문명을 진화해 승리하는 재미에 초점을 맞췄다. 기존 MMORPG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시도다.
◆나보다 우리…결속력이 생명
이용자는 로마·중국·이집트·아즈텍 4개 문명 중 하나를 선택해 게임에 임하게 된다. 성장과 아이템 수집 등 기존 MMORPG와 동일한 과정을 문명온라인에서 경험하게 되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이용자 개인의 육성에 초점을 맞춘 기존 게임들과 달리 문명온라인은 나보다 우리, 즉 집단을 더 중시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란 이용자가 속한 문명을 가리킨다. 나 자신이 강해지는 것보다 문명이 성장하는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무리 개인이 강하다 해도 집단을 이길 수 없는 논리와 같다. 문명온라인은 정치 요소가 제대로 삽입된 MMORPG라는 느낌을 받았다.
문명온라인은 앞서 등장한 MMORPG들과 지향하는 바가 사못 다르다. 적정 레벨을 올렸다면 부국강병에 힘써야 한다. 두 시간에 한 번씩 열리는 공성전은 강성한 문명과 그렇지 않은 문명의 차이를 극명하게 벌리기 때문이다.
힘들여 키운 터전을 잃고 비참하게 퇴장하고 싶지 않다면 주요 건물과 방어 시설 구축에 힘써야 한다. 원작 문명에선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근사한 도시가 지어지지만 문명온라인에서는 건물 건설 역시 여러 게이머들이 실시간으로 달려들어 노동력을 헌납해야 가능하다.
이같은 공동체 운명은 기존 게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변화를 야기한다. 먼저 자리를 잡은 게이머들이 후발주자들을 친절히 안내하고 좋은 아이템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나눔'의 문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보다는 우리를 강화하는게 승리에 직결되다보니, 문명 구성원간의 결속력이 굳건해지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적의 침입을 방어해야 하는 공성전 시간이 임박해오자, 취약 지점에 방어시설을 건설하자는 의견이 잇따르고 또 이를 이행하는 게이머들의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문명간 대립이 실제 국제 정세와 흡사하게 흘러간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전세계에 걸쳐 고루 포진돼 있는 로마·아즈텍·중국·이집트 4개 문명의 성패는 지리적 유·불리가 크게 좌우한다. 마치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약소국이 외침에 빈번히 시달리듯, 강대한 두 문명 사이에 자리잡은 약소 문명은 저항을 거듭하다 패배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 문명이 승리 조건을 달성하면 해당 세션은 종료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
◆ 초반만 잘 버티면 이색 재미가
이처럼 문명온라인은 여느 온라인게임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다만 아쉬운 건 게임 초반의 불친절함이었다. 문명을 선택하고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거쳐 문명온라인의 세계에 진입하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밀려온다. 튜토리얼 과정이 있긴 하나 문명온라인만의 차별화된 요소를 두루 충족시키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어 보였다.
실제로 미리 정해진 길을 일러주고 그 길을 따라가는데 익숙해진 국내 게이머들은 문명온라인의 초반 진행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게임 내 채팅창에는 어떻게 레벨을 올려야 하는지, 어디서 퀘스트를 받아 수행해야 하는지 문의하는 내용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차분히 이리저리 둘러보고 게임을 익히기에 한국인들의 성미는 너무 급한 편이어서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포기하고 나갈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아직 정식 오픈이 아닌 비공개테스트 단계인만큼 이 부분만 조금 가다듬는다면 문명온라인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는 신작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다. 문명온라인이 획일화된 게임 진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MMORPG의 문법을 제시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는 충분해 보인다.
문영수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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