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기자] 국내 5개 완성차업체들의 임금·단체협약 협상이 통상임금 확대를 놓고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한국GM과 쌍용자동차는 앞서 올해 임단협을 마무리하고 휴가에 들어간 반면 현대·기아자동차는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파업 초읽기에 들어갔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지난달 31일 임금협상 결렬을 선언한 뒤, 곧바로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 신청을 내고 파업 수순에 돌입했다. 기아차 노조도 1일 쟁의조정 신청을 내고 현대차 노조와 함께 행동할 방침을 밝혔다.
두 회사 노조는 2일부터 10일까지 휴가 직후 또 다른 합법 파업 요건인 조합원 찬반 투표를 오는 14일 실시한 뒤, 가결될 경우 18일부터 파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중노위 조정중지 결정과 조합원 찬성이라는 두 요건을 갖추면 노조는 언제든 파업에 들어갈 수 있다.
예년 사례를 감안할 때 결국 파업에 돌입할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현대·기아차는 노조 설립 이후 각각 네 차례, 두 차례를 제외하고 매년 줄파업을 치르며 생산 차질을 겪어왔다.
현대차 노사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문제를 놓고 노사간 합의안 도출에 난항을 겪고 있다.
특히 통상임금 범위 확대 문제는 올해 노사 협상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 중 하나로 떠올랐다. 통상임금이란 월급이나 시급 등 근로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급여로, 퇴직금과 각종 근무수당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고정성(퇴직자에게도 근무일수만큼 지급)을 갖춘 정기상여금만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올해 노사 간 임단협에서는 통상임금 확대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다.
쌍용차와 한국GM의 경우 앞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안에 대해 노사가 동의하고 임단협을 마무리 한 상황이다.
현대차 노조는 한국GM과 쌍용차 노사가 통상임금에 합의한 점을 들어 "즉각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반영하라"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 사측은 쌍용차나 한국GM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2개월 기준으로 15일 이상 일해야 상여금을 준다'는 조건이 걸려 있어 통상임금 성립 요건인 고정성이 결여됐다는 것. 또 일부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이기 때문에 법원 판결이 난 후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특근이나 잔업 등 초과 근무가 다른 완성차업체에 비해 많아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업계에 따르면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현대차그룹은 첫해에만 13조2천억원의 추가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윤갑한 현대차 사장은 담화문을 통해 통상임금 문제와 관련, "통상임금 문제는 법의 판결로 해결돼야 한다"면서 "법 판결 때문에 통상임금이 변경돼야 한다면 (현대차도) 그 법의 판단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의 경우 현재로서는 8월 중순께 파업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상여금은 물론, 복리후생비와 휴가비까지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노조와 상여금 조차도 정기성이 결여돼 통상임금의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사측의 견해 차를 좁히긴 쉽지 않아 보인다"며 "여기에 현대차노조가 금속노조 산하 최대 조직인 만큼, 노동계에서 지니는 상징성이 큰 점도 합의 도출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 리스크와 내수침체 등 대내외적으로 악재가 여전한 상황에서 현대차 노조가 파업체제로 돌입하면 올 하반기 조 단위의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는 특히 올해 2분기 실적이 원화 강세 등 영향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면서 실적에 적신호가 들어온 상황이다. 사측 역시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실제 파업에 돌입할 경우 적지 않은 생산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임단협 결렬로 15일간 울산생산라인이 중단되면서 차량 5만191대를 만들지 못해 1조225억원의 생산차질을 빚은 바 있다. 이를 포함해 지난 한 해 동안 노조의 각종 파업으로 인한 손실액은 2조203억원에 달한다. 해외시장 판매에서도 차질을 빚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통상임금 문제는 자동차 업계 전체에 미치는 파장이 너무 크다"며 "하반기 기업 경영여건이 좋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지나친 교섭지연은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근로자의 고용안정에도 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르노삼성의 경우에는 노조가 전환 배치한 인력을 복귀시키고 승급 보장 등을 요구하면서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당초 르노삼성 노조는 다른 요구사항의 원만한 합의를 위해 올해 통상임금 확대를 요구사항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쌍용차와 한국GM의 통상임금 확대 합의로 향후 테이블에서 유리한 협상카드로 이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측에 따르면 이미 매출액 기준 100억원가량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르노삼성은 노조가 지난달 22일과 25일 부분 파업을 한 데다 휴가가 끝나는 4일 이후 파업 수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기수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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