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1차 특허 소송 때 배심원들은 애플에 완승을 안겨줬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삼성과 애플 모두 ‘일부 승소, 일부 패소’ 평결이 나왔다.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 배심원들은 2일(현지 시간) 제소 대상이 된 삼성 스마트폰들이 데이터 태핑(647)을 비롯한 애플 특허권 최소한 두 개 이상을 침해했다고 평결했다.
배심원들은 이 같은 근거를 토대로 삼성에 1억1천960만 달러 배상 평결을 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또 다시 애플의 승리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애플 측은 평결 직후 “삼성이 고의로 우리 아이디어를 훔치고 제품을 복제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면서 “배심원 평결을 환영한다”고 공식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조금 다르다. 일단 배상금 액수가 애플 요구액 22억 달러의 5%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삼성 입장에선 크게 아쉬울 것 없는 결과인 셈이다.
1차 소송과 달리 애플에게도 배상금을 안긴 것 역시 삼성 입장에선 소중한 성과다. 배심원들은 애플이 삼성의 디지털 이미지 및 음성 기록 전송 특허(449)를 침해했다면서 15만8천400달러 배상금을 부과했다.
◆미국 IT 매체 "애플은 피로스의 승리"
IT 전문 매체인 아스테크니카는 “애플이 삼성에게 받을 1억2천만 달러 남짓한 배상금은 소송 비용을 겨우 커버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아스테크니카는 이런 근거를 토대로 애플은 이번 소송에서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피로스의 승리란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의 피루스 왕에게서 유래한 말. 피로스 왕은 수 많은 군대와 코끼리를 이끌고 로마를 침공해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감당하기 힘든 손실을 입었다. ‘피로스의 승리’란 이처럼 승리는 했지만 패배나 다름 없는 경우를 묘사할 때 쓰는 말이다.
배상금 규모가 이번 소송 승패를 가늠하는 데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삼성이나 애플 모두 배상금보다는 상대방 제품을 판매금지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이 있다. 특히 이런 욕구는 애플 쪽이 더 강하다.
1차 소송 당시에도 애플은 배심원 평결 직후 곧바로 특허 침해한 삼성 제품을 판매금지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하지만 당시 루시 고 판사는 애플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의 특허 침해는 인정하지만 시장에서 퇴출시킬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역시 애플이 삼성 제품을 판매금지시키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배심원들은 평결을 통해 삼성의 모든 스마트폰이 애플 데이터 태핑 특허(647)를 침해한 것으로 평결했다. 하지만 ▲단어 자동 완성(특허번호 172) ▲통합 검색(959) ▲데이터 동기화(414) ▲밀어서 잠금 해제(721) 등 나머지 특허권에 대해선 일부 제품만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이번에도 애플이 삼성의 특허 침해 제품을 판매금지시키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징벌적 제재’ 수준의 배상 평결을 받았던 1차 소송 때에 비해 훨씬 얕은 수준의 제재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에서 애플은 표면적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패배한 삼성은 승리 못지 않은 실리를 챙겼다는 분석도 가능할 것 같다.
김익현기자 [email protected]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