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삼성과 애플이 2차 특허소송 초반부터 때아닌 ‘특허 활용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삼성이 "애플은 활용하지도 않은 특허로 소송을 걸었다"고 포문을 열자 애플 측이 “거짓 주장으로 사안을 호도한다"고 맞섰다.
특히 애플은 삼성이 지난 1일(이하 현지 시간) 모두진술에서 잘못된 주장으로 배심원들을 미혹케했다면서 자신들도 반박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애플은 3일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 루시 고 판사에게 이번 재판에서 쟁점이 된 5개 특허권 중 3개 활용 사례를 설명할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애플은 총 11쪽 분량 문건을 통해 삼성의 잘못된 주장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더불어 ▲단어 자동 완성(특허번호 172)을 비롯해 ▲시리 통합 검색(959) ▲데이터 동기화(414) 등 세 개 특허권을 자신들의 제품에 실제 적용한 증거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루시 고 판사는 애플 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포스페이턴츠가 전했다. 대신 루시 고 판사는 양측에 두 쪽짜리 보충 문건을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애플 "삼성이 모두 진술 때 규칙 위반했다"
이번 공방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선 소송 시작 전 양측과 루시 고 판사가 합의한 사항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원 제출 문건에 따르면 루시 고 판사는 삼성, 애플 양측과 몇 가지 사항을 합의했다. 이에 따라 애플은 ▲세 개 특허권(414, 172, 959)을 발명한 부분에 대한 얘기는 할 수 있는 반면 ▲특허권 활용 사례를 갖고 공방을 벌이지 않기로 했다.
이 같은 조치는 재판 진행 절차를 좀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제한된 시간 내에 많은 쟁점을 다뤄야 하는 재판 성격상 큰 맥락에서 벗어나는 부분을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애플은 왜 사전 합의된 사항을 뒤집고 새로운 요구를 들고 나온 걸까? 이를 위해선 지난 1일 열린 공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공판에서 삼성 측 변호인들이 모두 발언에서 ‘규칙 위반’을 했다는 게 애플 측 주장이다.
애플은 3일 제출한 문건에서 이 부분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애플이 문제 삼은 것은 “애플 측이 이번 소송 쟁점이 된 5개 특허권 중 세 개는 아이폰에 사용된 적이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삼성 측 모두 진술이다. 애플에 따르면 삼성측 변호인은 또 “애플은 (세 개 특허권이) 사용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애플 측은 삼성이 모두 진술에서 총 8차례나 비슷한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애플 주장에 따르면 삼성은 “아이폰에는 172 특허권이 사용된 적도 없으며” “414 특허권도 아이폰에 등장한 적이 없고” “959 특허권도 아이폰에 사용된 적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애플 측은 삼성의 이런 주장이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애플, "특허 활용 증거 제출 기회달라" 주장
애플은 또 삼성이 모두 진술에서 “고객들이 (쟁점이 된) 애플 5개 특허권 중 4개는 애플 스마트폰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용된 적이 없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특히 애플은 삼성 측이 “애플도 다섯 개 중 세 개 특허권은 사용한 적 없다는 점에 동의했다(They agree as to three)”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 강하게 문제 제기했다.
애플 주장은 간단하다. 자신들은 재판 시작 전 규칙을 그대로 지켰는데 삼성 측이 반칙을 했다는 것. 따라서 루시 고 판사에게 ‘금지명령’을 풀고 특허권 활용 부분에 대해 소명할 기회를 줄 것을 요청했다.
애플은 “우리는 414, 172, 959 특허권을 사용한 적 없다는 부분에 동의한 적도 없고, 또 할 수도 없었다”면서 “왜냐하면 그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근거를 토대로 애플은 “삼성이 재판 첫날 법원 명령의 한계를 교묘하게 이용해 (배심원들에게) 의도적으로 그릇된 인상을 심어줬다”고 주장했다.
애플은 또 “상대방이 (금지된) 증거를 소개하거나 잘못된 주장을 할 경우 법원이 금지한 증거를 제출할 수 있다”는 판례를 근거로 내세웠다. 삼성이 잘못된 주장으로 사안을 호도했기 때문에 자신들도 관련 증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 애플 측 주장이다.
이에 따라 애플은 ▲세 특허권 활용 관련 증거 제출 허용 ▲삼성의 거짓 진술 반대 ▲교정적 설시(curative instructions) 명령 발동 등 세 가지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교정적 설시란 증거 능력 없는 증인이나 증언을 배척해 배심원들이 그릇된 정보에 호도되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애플, 자칫하면 '특허괴물'로 몰릴까 우려하는 듯
법원 문건대로라면 삼성은 애플이 “제품에 구현하지도 않은 특허권으로 소송을 했다”고 주장한 셈이다. 무슨 얘기인가? 듣기에 따라선 애플이 ‘특허괴물’들과 비슷한 행위를 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잘 아는 것처럼 특허괴물이란 자신들은 활용하지도 않는 특허권으로 소송을 거는 기업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특허괴물은 최근 IT 혁신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장애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는 올 들어 ‘특허괴물과의 전쟁’을 본격적으로 선언할 정도로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애플 입장에선 삼성 주장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배심원들이 자신들을 특허괴물이라고 생각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단 얘기다. 그럴 경우 최종 평결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삼성이 재판 초반 애플의 특허권 활용 문제를 이슈화한 것은 소송 전략 면에선 괜찮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 부분이 쟁점으로 부각될 경우 배심원들의 마음을 얻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과 애플은 지난 달 31일과 지난 1일 두 차례 공판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제시했다. 특히 애플은 20억 달러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배상액을 요구했다.
4일 열리게 될 세 번째 공판에선 애플 특허권 문제가 쟁점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루시 고 판사가 애플 측 요구를 기각하긴 했지만 두 쪽 분량의 소명서을 제출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김익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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